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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닉 Aug 30. 2017

연애상담일기 - 장거리 연애





사랑하는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것만큼 위안을 주는 것도 없다.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는 5년 동안 준비한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대학 졸업도 미뤄둔 상태였다. 최종 면접까지 합격을 하고 난 뒤에야 안심이 됐는지 그때부터 연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에게 연애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머릿속에서 잠시 지워뒀던 단어였다. 이제는 안정된 직장의 남자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팅을 시켜달라고 안달이 나있었다.


연애는 고사하고 일에 치이던 그 여름, 생각지도 못한 인연이 그에게 찾아왔다. 휴가 때 갔던 속초해수장욕장에서 그녀를 만난 것이다.


그는 뭔가 홀린 사람처럼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고 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던 건 처음이었다고, 만약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 갔다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을 거라고 말했다.


둘은 그 여름 커플이 됐고, 본격적으로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커플이 된지 일 년이 지났을 무렵, 그가 나를 찾아왔다.



"공무원 생활은 할 만해?"


"생활이 너무 힘들어요."


"그러고 보니 얼굴살이 많이 빠졌네. 일이 정말 힘들구나. 연애는 잘 돼가?"


"일은 그냥저냥 괜찮은데... 연애가 너무 힘들어요."


"왜 잘 안 맞아?"


"아니요. 반대에요. 평생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만큼 잘 맞아요."


"잘됐다. 그런데 뭐가 힘들어?"


"제가 집이 당산동이에요. 그 친구 집은 서면에 있고요."


"서면이면 부산 서면이야?"


"부산만 되었어도 좋았겠네요. 기차 타고 3시간이면 가니까. 제 여자 친구는 울릉도 서면이에요."


"서울에서 울릉도까진 얼마나 걸려?"


"차 끌고 묵호항까지 5시간 잡고 묵호에서 울릉도까지 대기시간 합쳐서 3시간 잡으면 돼요. 물론 서울에서 막히면 플러스 한두 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나고요. 게다가 태풍이나 비가 많이 올 때 묵호에서 울릉도까지 대기시간은 한도 없구요. 심지어 다시 서울로 돌아 올 때도 있었으니까요."


"짧아도 8시간이나 걸리는구나. 왕복 16시간이면 정말 만만한 거리는 아니네. 그럼 지금까지 네가 울릉도를 가거나 여자 친구가 서울로 왔던 거야?"


"대부분 제가 갔어요. 내가 조금만 힘들면 된다고 했죠. 여행 가는 기분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점점 힘이 드네요."


"그 친구가 울릉도에서 나오면 안 되니?"


"그 친구도 저처럼 공무원이에요. 둘 다 주민센터에서 일해요. 지역이 다를 뿐이죠. 작년에 제가 공무원에 합격했을 때, 그 친구도 그 해에 공무원이 됐던 거라서 공감대가 많았어요."


"둘 다 일을 그만 둘 순 없는 거네."


"그 지역에서 공무원을 하려면 다시 시험을 봐야겠죠. 다시 시험을 보는 건 둘 다 상상도 못 할 일이고요."


"사정을 알겠네. 그럼 지금까지 계속 서울에서 울릉도를 다닌 거야? 많이 힘들었겠다."


"부끄럽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용도 무시 못하겠더라고요. 묵호항에서 배를 타면 왕복 10만 원이에요. 묵호까지 기름값이며 톨비, 밥값, 여자 친구에게 줄 선물까지... 말단 공무원 월급으론 사치일 수도 있어요."


"사치까진 아니라고 해도 부담스럽긴 하겠다."


"실수령액이 백사십만 원이 좀 안 돼요. 게다가 집세도 만만치 않고요. 받는 돈의 반을 여자 친구 만나는데 쓰고 있는 거죠."


"남들이 보면 둘 다 공무원에 완벽한 커플이라고 할 텐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쉽지가 않구나."


"정말 좋아요. 멀리 떨어져 있는 거 하나만 빼면요. 실은 올해 그 친구에게 청혼하려고 해요. 그것 때문에 상담받으려고 온 거에요."


"결혼할 마음도 먹었구나. 잘 됐음 좋겠네."


"결혼해도 지금처럼 살아야 할까요?"


"그렇구나. 결혼을 해도 둘 중 하나가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한 지금처럼 만나는 수밖에 없구나."


"맞아요. 지금처럼 살아야 해요. 그 친구는 울릉도가 고향이에요. 아이를 낳아도 울릉도에서 키우고 싶다고 했어요."


"결혼을 해도 자주 볼 수 없네."


"저도 당장 직장을 그만둘 수 없고요. 그 고생을 해서 간신히 얻은 직장이라서 더 그런가 봐요. 사람마음이 간사하죠..."


"충분히 이해해. 두 사람 다 이해가 돼. 그런데 앞으로 계속 먼 거리를 다니는 게 힘들진 않겠니?"


"힘들긴 해요. 처음엔 다니는 재미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재미는 없어지고 짜증이 날때가 많아요. 행여 그 친구에게 짜증낼까 봐 조심하게 되고요."


"한 달에 몇 번이나 가니?"


"매주 빠지지 않고 가고 있어요."


"그렇게 자주."


"보고 싶기도 하고 달리 할 것도 없으니까요."


"비행기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더 그렇구나. 장시간 운전하는 것도 피곤할 텐데."


"그래서요. 여쭤보려고 온 거에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방법을 묻는다면 지금처럼 다니는 수밖에 없는 거 같아. 대신에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하면 어떨까 해."


"어떤 방식이요?"


"앞으로 울릉도에 갈 때는 계속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거야. 여행작가라고 생각하고 기록을 남기는 거지. 계절의 변화도 볼 거고, 여자 친구에서 아내로 또 엄마로 변하는 모습도 보게 될 거야. 그런 일상의 변화를 꾸준히 기록으로 남기는 거야. 마음에 있는 말을 글로 쓰고 아름다운 풍광도 찍고, 그럼 평소에 보지 못했던 걸 보고, 새로운 느낌에 가는 길이 훨씬 즐거워질 거야."


"전 작가도 아닌걸요!"


"처음부터 작가인 사람은 없잖아. 계속 쓰다 보면 작가가 되는 거지. 안 그래?"


"정말요. 갑자기 울릉도에 가고 싶네요."


"둘 다 어렵게 공무원에 합격했고,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거 알고 있어. 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마음이라도 변하면 편해질 거야. 혹시 또 알아 위대한 작가가 탄생할지. 팬사인회면 돈방석에 앉을 수도 있어. 그럼 공무원은 당장 그만둬도 되고."


"그러게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지금부터 멋진 작품을 기대해 주세요."


"그래."



거리가 가까워 질 수는 없어도 마음이 변하면 먼거리도 즐거워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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