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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닉 Sep 12. 2017

연애상담일기 - 모태솔로와의 이별






그는 삼십삼년째 싱글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간절히 연애를 원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지나가던 여자가 눈길만 줘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물었고, 소개팅이 잡히면 선약도 취소했다.


그렇게 십 년을 노력했지만 그는 여전히 싱글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적극적으로 주변의 좋은 사람을 소개해줬지만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는 여자 앞에서 5분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수많은 조언과 지도편달이 있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십 년 동안 같은 패턴이 반복되자, 연애가 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 사람들은 한 마디로 답했다.

 

"말로만 연애하고 싶지. 정말 마음이 있기는 한 거야? 절실하지도 않은 거 같고!"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주던 사람들도 떨어져 나가고 모두가 지쳐있던 때였다.


그가 연애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행복한 커플이 됐다는 굿뉴스였다.

그렇게 반년이 흘렀고, 그가 나를 찾아왔다.



"사람들이 너 부럽다고 하더라."


"뭐가 부러워요?"


"연애하고 있다는 소식 들었어. 둘 사이가 정말 좋아 보여서 샘이 난다고. 부럽다고 이야기를 들었어."


"그러게요. 아무래도 제가 모태솔로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까 더 가깝게 지냈던 것 같아요. 외로웠던 지난날의 보상이라도 바란 걸까요?"


"말투가 왜 그래? 이별이라도 한 사람처럼."


"떠났어요. 그 친구..."


"떠나다니 어디로?"


"떠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캐나다로 떠났어요. 저도 같이 가겠다고 했는데... 거절했어요."


"같이 가자고 했는데 거절했다고?"


"내가 자기를 숨 막히게 한데요. 힘들게 하고."


"저런 어쩌다가..."


"삼십 년 넘게 모태솔로였어요. 십 년 동안 노력해도 안 생기던 여자 친구가 생겼을 때 눈물이 나더라고요. 너무 좋아서요. 나도 이제 남들처럼 애인과 함께 데이트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에요. 손잡고 애인과 함께 데이트하는데 삼십 년을 넘게 기다렸다니 감개무량하더라고요."


"소식 듣고 나도 정말 기뻤어. 잘 되길 바랐는데..."


"그 친구도 저처럼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커뮤니티에서 만났어요. 오래전부터 정보를 주고받던 사이였는데 어느 날 제가 게시판에 글을 올린 게 계기가 됐어요. 쪽지를 주고 받았는데 정말 잘 통했어요. 만나서 이야기해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여자 앞에서는 말이 막혀서 어색하게 만드는 게 제 특기잖아요. 그런데 이 친구와는 처음부터 막힘이 없었어요. 왜 이제야 만났을까 하고 원망했을 정도로 잘 맞았어요."


"그런데 왜 헤어진 거야?"


"저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학원 강사를 하고 있었고, 그 친구는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었어요. 둘 다 똑같이 영어선생이었어요. 우습죠. 똑같은 교과서를 가르치고 있어도 우린 다른 시간에 살고 있었으니까요. 그 친구가 수업이 끝나면 제 수업이 시작되니까요."


"평일은 시간이 잘 안 맞았겠구나. 주말은 자주 만났니?"


"주말엔 각자 임용고시를 준비했어요. 정교사가 되면 매일 만나자는 다짐으로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틈만 나면 카톡을 보내고 수시로 전화를 했어요."


"상황이 그렇게 됐구나."


"사귀는데 얼굴 한번 제대로 볼 수 없으니까 답답했어요. 그 마음을 달래 보려고 자주 연락을 한다는 게 집착이 됐나 봐요."


"그 친구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연락을 했구나."


"그저 짬나는 대로 보낸 건데...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스토커 같다고. 부담스럽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했는데 그때부터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왜? 뭐 때문에 더 심해진 거야?"


"나도 모르게 의심이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병처럼 여자 친구를 감시하게 되고 집착이 더 심해졌어요. 그때를 돌이켜 보면 제가 생각해도 환자 같았어요. 그게 여자 친구가 떠나는 결정적인 계기였어요. 임용고시도 저 때문에 망치고..."


"그랬구나. 오랫동안 솔로로 생활하다가 생긴 인연인데... 마음이 아프네."


"이 나이 먹도록 연애 한번 못해 본 제 잘못이죠. 전 아무래도 하자가 있는 것 같아요."


"무슨 그런 말을... 그저 아직 서투르고 미숙해서 그런 것뿐이야. 네 마음 충분히 이해해."


"모르겠어요. 정말 힘들 게 만난 사람이었는데... 제가 다 망쳐 버렸어요. 그런 사람을 제 평생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전 평생 혼자 살 팔자인가 봐요."


"혼자 같은 소리 하네. 이제 한 사람을 만나 봤으니 더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정말 연애가 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저보고 간절하지도 절실하지도 않다고 말했어요. 제 마음도 모르고요. 제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하고 노력을 했었는지도 모르면서... 노력해도 잘 안 되는 사람도 있잖아요. 모두가 다 잘 되는데 저는 천 번을 노력해도 될까 말까 하는 그런 게 있더라고요. 그 친구에는 그렇게 노력해도 잘 안돼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되더라고요. 말도 행동도 표정까지 도요."


"네가 그만큼 노력해서 잘 된 거야. 너무 자책하지마."


"그 친구에게 같이 가게 해 달라고 울면서 부탁했어요. 제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같이 캐나다에 가고 싶다고..."


"그랬구나. 같이 떠나고 싶었구나."


"그 사람이 내 인생에 들어오고 나서 모든 게 달라졌어요. 그 사람 없는 인생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바람처럼 사라졌어요. 저는 다른 사람하고 달라요.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일반적인 사람하고는 달라요. 모태솔로였던 사람에게 한 사람이 생긴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네가 힘든 거 알고 있어. 오랫동안 싱글로 살아왔던 네 모습을 예전부터 지켜봤으니까. 그런데 넌 그 모태솔로라는 말에 너무 갇혀 있는 거 같아. 넌 단지 늦게 인연을 만났던 거뿐이잖아."


"늦어도 너무 늦었죠. 이제는 평생 아무하고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고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왜 그렇게 부정적이야! 지금 힘든 건 충분히 이해해. 내가 하나만 물을게. 그 친구랑 처음에 사귀기 시작했을 때, 어땠어? 좋았어? 행복했어?"


"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어요. 그래서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그것뿐이었어요."


"그 행복이 사라질 까 봐 두려웠구나?"


"지금 와 생각해 보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고 무서웠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너를 무섭게 했구나."


"맞아요. 너무 무섭더라고요. 잠도 설칠 정도였어요. 새벽에도 문자를 보내고 틈만 나면 계속 사랑을 확인했어요. 그게 그 친구를 질리게 만들 줄은 상상도 못했고요."


"누구나 처음은 서툴러. 네가 잘못한 건 없어. 단지 마음이 불안했던 거 같아."


"다시는 그런 사람 못 만날 거에요."


"맞아 다시는 그런 사람은 못 만날 거야. 더 좋은 사람을 만나겠지."


"아니에요. 그럴 일은 없을 거에요. 저 같은 게 그럴 일이 있겠어요."


"사랑하고 이별하는 게 전혀 사랑해 보지 않은 것보다 훨씬 나아. 넌 한 사람을 사랑해 봤고, 심지어 집착도 해 봤어. 그래서 알았지. 사랑은 집착하는 게 아니라는 걸. 집착하게 되면 바람처럼 날아가 버린 다는 것도. 사랑은 집착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거라는 것도 알게 된 거야. 그러니까 더 좋은 연애를 할 수 있게 된 거야! 안 그래?"


"그게 말처럼 쉽게 될까요? 더 집착하면 어쩌죠?"


"실패를 하면 할수록 더 잘 알게 되겠지. 그렇게 하면 결과가 좋지 않다는 걸.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시행착오를 겪을수록 같은 실수가 줄어들 거야. 그러다 보면 성숙한 연애를 할 수 있어."


"정말 제가 다른 사람도 만나게 될까요? 그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을요? 저 같은 모태솔로가?"


"모태솔로라는 말은 이제부터 머릿속에서 지워버려. 좋은 말이 아니야. 그리고 넌 사랑도 해 봤잖아. 더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3개월 뒤에 그의 메시지를 받았다.


이제 모태솔로와는 완벽하게 이별했어요. 그리고 다시 연애를 시작해보려고요. 용기를 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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