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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닉 Sep 19. 2017

연애상담일기 - 참을 수 없는 추석 스트레스




추석이 되면 때때옷을 차려입고 친척들과 즐겁게 놀던 때가 있었다. 머리가 커질수록 추석은 형식적인 단어로 변해갔다. 온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움보다 휴식과 안정을 더 원하게 됐다. 


순수한 마음으로 관계를 맺던 친척들과도 벽이 생겼다. 우린 그때처럼 순진하지도,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었다. 빡빡한 삶 속에서 반갑게 인사라도 할 수 있는 걸 축복이라고 여기는 정도랄까.


명절 때만 되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추석이란 단어만 들어도 기겁을 했다. 대학 때부터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했고, 십 년 넘게 혼자 생활하고 있었다. 추석을 이주 앞두고 그가 나를 찾아왔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


"맨날 똑같죠. 일하고 쉬고 일하고 쉬고. 별로예요."


"일이 많이 힘들구나."


"모르겠어요. 솔직히 힘든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먹고살아야 하니까."


"연애는 하니?"


"연애요? 연애는 생각할 여유도 없어요. 연애는 남 이야기죠. 저랑은 상관없는..."


"그게 무슨 소리야? 남 이야기라니. 인생 다 산 사람처럼."


"글쎄요. 어떤 면에서는 다 산 거 같기도 해요."


"추석 때문에 그러니? 넌 항상 명절만 되면 힘들어 했잖아."


"맞아요. 아마도 그게 제일 큰 문제일 거예요. 올해 추석은 무조건 내려오라는 엄명을 받았거든요. 일 핑계 대고 이번에도 안 내려올 거면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시겠대요. 벌써 2년째 집에 안 내려갔거든요."


"왜 무슨 일 있었어?"


"특별히 무슨 일은 없었어요. 집에 가면 부모님 잔소리부터 친척들 얼굴 보는 게 싫어서 그런 거 같아요."


"원래 그렇잖아. 싫어도 좋은 척하고 없어도 있는 척하면서 사는 거지."


"뭐 그건 저도 알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견디기가 힘들어서요. 가족들이 남보다 못해요. 모두가 너무 일방적이에요."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데?"


"언제까지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면서 살 거냐고... 남들은 번듯한 직장에 결혼도 하는데, 대학을 졸업한 게 언제인데 아직도 그렇게 살 거냐고. 기술이라도 배워서 공장에 들어가는 게 어떠냐는 사람도 있고요. 거기에 부모님까지 합세하면 정말 미칠 거 같아요."


"잔소리는 나도 항상 듣는 걸. 원래 부모님은 잘 돼도 걱정, 안 돼도 걱정이잖아."


"그렇게 걱정이면 왜 남하고 비교해요. 친척 누구는 이렇다더라. 너는 왜 그렇게 못하냐. 이런 소리를 대체 왜 하는 거죠? 제가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 아니잖아요. 제가 못 마땅하고 남보다 잘나지 못해서 자랑할 게 하나도 없어서 그런 거잖아요."


"남하고 비교하면 기분이 안 좋니?"


"당연하죠. 기분이 좋은 사람도 있어요?"


"남하고 비교하면 왜 기분이 안 좋아?"


"지금 저랑 장난해요? 당연히 기분이 안 좋죠. 남들이 잘 나가고 전 지지리도 못났다는 이야기인데... 화가 나요. 머리끝까지 화가 나요!"


"그렇게 많이 화가 나?"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에요. 어떤 때는 추석상을 다 뒤집어 버리고 싶을 정도예요."


"누구한테 화가 나는데?"


"남하고 비교하고 무시하는 사람들한테 다 화가 나죠! 누구한테 화가 나겠어요?"


"남하고 비교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나는구나. 그 사람들이 너에게 화내면서 말해?"


"화는 내지 않죠. 제가 화가 나는 거라니까요. 제가 화를 낸다고요. 지금도 화가 나려고 해요."


"내가 너를 화나게 하려고 말한 거 같아?"


"그건 아닌데 자꾸 제 신경을 건드리고 있잖아요."


"그게 화가 나? 아무도 너에게 화내지 않았는데..."


"맞아요. 아무도 저에게 화내지 않았어요. 그래도 잘못됐잖아요. 위로는 못 해 줄 망정 비교나 하고."


"나도 너랑 말장난하려는 건 아니야. 말꼬리 잡고 늘어지려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화를 내는 건 너잖아. 아무도 너에게 화내지 않았고. 네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너를 화나게 하려는 이야기는 아니잖아." 


"그래도 화가 나요!"


"누가 화가 난 거야?"


"몇 번을 말해요. 제가 화가 난다고요. 제가요."


"그 거봐. 너만 화를 내잖아. 너만 화나고, 너만 불행해지잖아."


"그럼 어떡해요? 저보고 뭘 어떡하란 말이에요? 저도 남들처럼 잘살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잖아요. 대학 졸업하고 이력서도 남들처럼 써봤고, 공무원도 준비해 봤고, 영업도 뛰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봤다고요. 노력해도 안 되는 걸 저보고 어쩌라고요."


"네가 노력한 건 나도 잘 알고 있어. 네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넌 누구보다 잘 살고 있고 매력적인 사람이야. 단지 네가 명절에 힘들어하지 않고,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신경이 쓰여서 미칠 걸 같아요. 저도 모르게 그런 말만 들으면 송곳처럼 날카로워진다고요."


"그럼 이건 어때? 그런 말을 들으면 가볍게 인정해 버려. 만약에 부모님이 남들은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해서 잘 사는데 너는 왜 그러냐고 하면, 제가 남들보다 부족해서 그런다고 말씀드려. 열심히 노력해 봤는데 쉽지 않았다는 말도 하고."


"그런 말을 어떻게 가볍게 해요. 부모님이 실망할 거예요. 잘난 자식인 줄 아시는데 한심한 모습 보여드리기 싫어요."  


"네 말처럼 실망하실 수도 있어. 마음 아파하실 수도 있고. 그래도 그렇게 내려놓고 인정하면 부모님도 남하고 비교하는 말은 하지 않게 될 거야. 오히려 격려하고 위로해 줄 거야. 넌 지금까지 부모님께 솔직하게 마음을 이야기해 본 적도 없잖아."


"그건 부모님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네가 먼저 해야지. 마음을 열고 부모님에게 다가가야지. 남들이 뭐라고 하든 네 부모님이잖아. 너를 사랑하는 세상에 하나뿐인 부모님이잖아."


"그래서 더 화났어요. 남들처럼 잘 나가는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솔직히 가장 화가 나는 건 제 자신이에요. 저요 알아요. 열등감과 자격지심에 몇 년 동안 명절에 내려가지 않았다는 걸."


"괜찮아. 다 그렇지. 다 그렇게 사는 거잖아."


"올 해는 집에 가야겠죠. 올 해도 안 오면 서울로 오시겠다고 했어요."


"올 해는 집에 꼭 가봐. 어머니 아버지 좋아하시는 선물도 사서."


"집에 갔는데 또 남하고 비교하면 어쩌죠?"


"예상 잔소리 하나만 알려줘 봐."


"넌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이 늦었다. 이미 늦었다."


"말씀처럼 이미 늦었습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남들보다 한참 늦었다는 걸. 부모님도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셔야 해요. 그걸 인정해 주셔야 제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이미 늦었지만 조바심 내지 않고 다시 천천히 시작하고 싶다고. 그렇게 살고 싶다고. 말씀드려. 잘나고 싶었는데 자랑거리를 많이 못 드려서 미안하지만 행복하게 살 거라고. 부모님도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거지. 자랑거리가 되길 바라는 건 아니야."


"이게 말처럼 쉽게 될까요?"


"쉽지 않겠지. 그래도 애정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어. 이게 잘 되면 연애도 잘 하게 될 거야. 원리는 다 똑같은 거니까."


"진짜 연애도 잘 하게 되는 거예요?"


"당연하지. 너무 걱정 말고, 추석 때 집에 잘 다녀와."


"네 잘 다녀올게요. 그리고 노력해 볼게요."


"애정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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