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미닉 Sep 26. 2017

연애상담일기 - 자연인이 되고 싶은 남자친구




대학을 졸업 후 5년 동안 은행원으로 근무했던 그녀는 계산적이고 빈틈없는 삶에 지쳤다. 그녀는 은행일을 그만두고 액세서리 가게를 열었다. 비즈공예 등의 원데이 클래스 강좌가 인기가 좋았다. 그녀의 공방에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무렵 공방에 물건을 대주던 그를 만났다.


그녀는 그의 소탈함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계산적이지 않고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그가 정말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느껴지는 맑은 에너지, 그녀의 유쾌한 기운이 보는 이들까지 기분 좋게 만들어 버렸다.  


오랜만에 그녀의 공방을 들렸다. 시들기 전의 꽃처럼 그녀가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어디 아파? 얼굴이 창백해!"


"아파요."


"어디가 아픈데? 병원에 가봤어?"


"아니요. 병원에 가도 소용없어요."


"무슨 소리야? 소용이 없다니..."


"그 사람하고 말다툼을 했어요."


"그랬구나. 심하게 다퉜니?"


"자연인이 되고 싶대요!"


"자연인? 그게 뭐야?"


"티브이에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프로가 있어요. 거기에 나오는 사람처럼 살고 싶대요. 가게며 집이며 다 정리해서 자연에 들어가서 같이 살 재요."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하고 나이가 안 맞는다. 그런데 평소에도 그런 이야기를 자주 했어?"


"결혼하면 어디에서 살지 일은 어떻게 할지 이야기하다 그랬어요. 평소에는 그냥 그런 방송을 좋아하는 줄만 알았어요. 제가 삼시세끼를 좋아하는 것처럼요. 그냥 취향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그 사람들처럼 자연에 들어가서 살고 싶을지는 몰랐어요."


"결혼해서 함께 가자고 그랬다고?"


"맞아요. 결혼과 동시에 다 정리하고 산으로 들어가자는 말이었어요."


"그래서 넌 뭐라고 했어?"


"진짜 자연인처럼 전기도 없고 가전제품도 없이 살 수 있을 거 같냐고 말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진짜 이유가 뭐냐고 따져 물었고요."


"그러다가 다투게 됐구나."


"맞아요. 인터넷에 티브이도 없이 게다가 세탁기에 냉장고도 없는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없잖아요. 혹시나 산짐승이 나오면 어쩌려고요. 전 등산도 싫어한다고요. 순전히 그 사람이 욕심이에요. 나이도 젊은 사람이 대체 왜 그런 건지 알 수 없어요."


"그랬구나. 충분히 이해해. 네 말처럼 나 역시 전기와 전자제품 없이 자급자족하면서 산다는 건 상상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정말 독특하네. 보통은 정년 퇴임하거나 이혼, 졸혼한 남자들이 산에 들어가 혼자 사는 거잖아. 아직도 나이도 젊고 일 욕심도 있을 텐데. 결혼해서 산으로 들어가자니?"


"맞아요. 저도 그 사람 때문에 그 프로그램 자주 봤거든요. 큰 병에 걸리거나 사업 실패한 남자들이 자연에 들어가 잘 살고 있다 정도로 이해하고 가볍게 봤는데... 제가 당사자가 돼서 고민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어요."


"그 사람도 그 프로그램에 나왔던 사람들처럼 특별한 사연이 있니?"


"몸은 건강해요. 마음에 큰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다만.."


"도시 생활이 지친대요. 계속 도시에 있다가는 숨 막혀 죽을 거 같다고..."


"그 남자 시골 출신이라고 했었지?"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고등학교까지 있었어요. 우습죠? 그 사람 처음 봤을 때 그 순박함이 마음에 들었어요. 도시생활을 오래 했던 저와는 다른 느낌이 좋았는데..."


"시골 생활을 했던 사람이 도시생활을 경험하면 그 편리함에 반해서 다시 촌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적다고 들었어. 네 말처럼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자연인처럼 살고 싶다는 건 정말 도시생활이 힘든가 보다."


"저도 그 마음 모르는 건 아니에요. 은행원 시절에 제가 느꼈던 답답함 하고 비슷하겠죠. 감옥에 있는 기분이었어요. 동료와 경쟁해야 하고 성과가 없으면 무시당하고... 그 사람도 비슷할 거예요. 그래서 도시를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일 거예요. 저도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다들 그렇게 살잖아요. 왜 혼자 유난을 떠는지 모르겠어요. 그걸 저에게까지 강요하는지도 모르겠고요."


"너를 포기할 수 없어서 그러겠지. 너와 함께 있고 싶어서 더 그럴 테고."


"저도 그 사람과 같이 있고 싶어요."


"나이 먹고 함께 들어가는 게 아니고 지금부터 자연인처럼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물어봤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시작하고 싶대요. 그게 더 행복할 거 같대요. 도시에서 전전긍긍하고 스트레스받는 삶은 충분히 살아봤으니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도시에서 키우고 싶지 않다고 했고요.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 같았어요."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되네. 시골생활에 대해서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도시생활도 충분히 한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니까. 짧은 생각에 무작정 도망치고 싶어서 하는 말로는 들리지 않네."


"맞아요. 저에게 이해를 구하면서 이야기했어요. 정말로 자연인처럼 살자는 건 아니라고 시골집을 보수해서 살면서 원하는 집을 짓고 싶대요. 홍삼을 키워서 돈도 벌거라고 했고요. 무작정 고생하면서 살자는 건 아니었어요. 그 사람 입장에선 상식적인 말이었어요. 그런데 겁이 났어요. 겁이 나더라고요. 갑자기 낯선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아는 사람도 없고... 고생하고 싶지 않았어요."


"고생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게 고생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하는 거겠지. 그리고 겁나는 건 당연해. 나라도 겁이 나겠다!"


"어쩌죠? 뭐라고 해야 하죠?"


"네 마음은 어떤데?"


"모르겠어요.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은 변함없었어."


"그럼 한 번 살아봐. 그런 경험은 아무나 못하는 거니까. 결혼해서 자연인처럼 살아봐!"


"제가 그렇게 살 수 있을 까요? 자신 없어요."


"대신 함께 살기 전에 분명히 말해. 언제든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나겠다고. 함께 행복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는 거니까. 그 남자만 행복하고 네가 불행하다면 당장 그만두고 돌아와. 네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네 남자 친구의 말처럼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해보는 게 나쁘지 않을 거 같아서야.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거 같아. 그 사람과의 생활이 좋을지 또 그런 생활이 나에게 맞을지에 대해서 알 수 있잖아."


"그래서 안 맞으면요?"


"당장 결단을 내려야지.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 은행원 그만두고 공방일 시작했던 것처럼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그건 너무 불안하지 않아요?"


"살아가는 게 항상 그렇잖아. 매 순간 겁나고 힘들지. 아닌 것 같은 순간까지도. 그러니까 후회될 거 같으면 당장 해보는 게 좋아. 그 과정에서 내가 가장 행복한 걸 찾을 수 있잖아. 행여 실패하더라도 거울삼을 수 있고. 인생을 길게 보면 어려울 것도 없어."


"말 참 쉽게 해요."


"말만 한 건 아니야. 나도 많이 실패했고 반성도 했어. 성급한 결정, 어설픈 말과 행동들이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워. 그런데 그러면서 배웠어. 행복해지는 법에 대해서."


"좋아요. 한 번 가볍게 생각해 보죠.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사람과 앞으로 어떤 관계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너무 무겁지 않게 생각해 볼게요. 내가 가장 행복해질 길을 말이에요."


"그래. 가장 행복해지는 길을 찾길 바라!"   



※ 이 매거진의 모든 글을 보려면 #연애상담일기 를 검색하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연애상담일기 - 참을 수 없는 추석 스트레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