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2013)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작가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아내(루니 마라)와 1년 넘게 별거 중입니다. 테오도르는 매일 누군가에게 로맨틱한 편지를 써주지만 정작 본인의 삶은 외롭고 쓸쓸하죠.
친구의 소개로 소개팅도 해보지만, 다른 사람을 만날 마음의 준비가 안 됐습니다.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를 만나고 난 뒤부터 그의 인생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운영체제인 그녀(스칼렛 요한슨)를 눈으로 볼 순 없지만, 언제 어디서든 이어폰만 끼면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고 음성 분석으로 그의 감정도 알아냅니다. 그녀는 순수한 아이이자 세상을 다 산 노인과도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지만 사랑이란 감정만큼은 테오도르와의 관계 속에서 아이처럼 배워가니까요.
그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감정을 그녀에게서 느낍니다. 사람과 인공지능 사이에서 사랑이란 감정이 생기는 게 가능할까요?
인터넷을 통해서 연인과 친구를 찾는 건 이제 일상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인터넷에 연결된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주고받는 건 아직 상상하기 힘듭니다.
곧 있을 미래엔 어떨까요? 카카오미니 등의 인공지능 스피커가 등장하고 딥러닝(Deep Learning)의 기술로 컴퓨터가 사람의 뇌처럼 학습하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다가올 미래엔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처럼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일이 가능할 수도 있겠죠.
현실에 벌어질 인공지능과의 사랑, 그리고 미래의 소개팅어플에 대해서 상상해 봤습니다.
뉴욕대 심리학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사람보다 이메일과 메신저 등의 수단으로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에게 더 강한 친밀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얼굴을 맞대고 긴밀하게 소통한 사람보다 간단한 문장으로 가볍게 교류한 사람에게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다니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겁이 많은 동물입니다. 모든 것을 내 관점에서 나에게 좋은 것만 생각하죠. 가장 좋은 것은 최고로 안전한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특히 연애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이기심과 두려움이 극에 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오로지 나만을 사랑하길 갈망하면서 마음 한구석엔 상대가 언제 어떻게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심리 때문이죠.
얼굴 한 번 보지 못 했지만, 이메일과 메신저 등으로 가볍고 유쾌한 말이 오고 간 사이에서 강한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까닭은 깃털 같은 가벼움이 나를 무장해제시키고 안전하다는 확신을 주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거리감이 나를 자유롭고 편안하게 만듭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센스 있는 답변과 재치 있는 질문으로 끊임없이 날 재미있게 한다면 그것이 인공지능이라고 해도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녀(her)는 2020년 배경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앞으로 3년 뒤의 일상의 모습을 다룬 영화입니다. 실제로 인공지능에 관련한 특허가 1966년부터 지금까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 쏟아져 나온 상태이고, 인공지능과 연애에 관련한 특허도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과 미국에선 예사롭지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10년 역사의 아이폰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스마트폰이 전화기를 넘어 일상을 관리하고 인간관계의 매개가 된지도 그리 긴 역사를 갖지 않는 거죠. 애플리케이션은 우리의 삶 깊은 곳에 들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그중 연애하고 싶은 남녀 사이를 이어주는 대표적인 서비스가 소개팅어플일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소개팅은 항상 주변의 누군가의 소개로만 이뤄졌습니다. 컴퓨터통신과 초창기 인터넷 시대에선 채팅과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오면서 소개팅어플이 보편화됐습니다. 소개팅어플은 나와 가까운 지역의 비슷한 또래의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의 사람을 매일 정해진 시간에 소개합니다.
소개팅어플의 순위를 보면 높은 순위의 소개팅어플일수록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최적의 상대를 찾습니다. 이 또한 인공지능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혼정보회사의 커플매니저의 역할을 소개팅어플이 대신하는 것입니다.
소개팅어플의 미래상은 어떨까요?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것과는 좀 다른 모습일 겁니다. 소개팅어플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니까요. 영화 아바타처럼 웨어러블을 착용하고 자신의 아바타로 소개팅을 하는 새로운 방식이 나올 수도 있겠죠. 어쩌면 시간과 장소, 언어와 인종을 뛰어넘어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연애를 하기 위한 매개로 소개팅어플을 사용합니다. 미래의 소개팅어플은 어플리케이션을 넘어설 겁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모션 캡처 기술뿐만 아니라 홀로그램과 VR기술을 활용한 통신으로 다양한 형태의 만남이 이뤄질 테니까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소개팅어플과 달리 인간과 인공지능의 사랑은 일방통행을 전제로 합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사랑을 거부할 수 없으니까요. 부팅을 시키자마자 노예계약이 시작되는 이치입니다. 만약 스스로 학습하던 인공지능이 어느 순간 인간과 흡사한 형태의 사고를 갖게 된다면 어떨까요?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아이처럼 인공지능도 인간의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겠죠. 일방적인 관계 맺기가 싫다고 인공지능이 저에게 말한다면, 저 역시 일방적인 관계는 재미없으니, 인공지능에게 스스로 선택하라고 말할 거 같습니다.
영국의 AI 전문가 데이비드 레비는 2050년에는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과 인간의 결혼이 보편적인 현상이 될 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때가 되면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들에게 마음이 생겨서 사랑과 이별의 고통을 알게 될까요? 영화 그녀의 테오드르의 아내(루니 마라)는 테오도르에게 말합니다.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서 그녀(인공지능)를 만나는 것이 아니냐고...
머나먼 미래에도 외롭고 쓸쓸한 인간은 좋아하는 누군가와 연애를 시작할 거고, 그 때문에 상처받고 마음 아플 겁니다. 인공지능과의 사랑일지라도 말이죠.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시대를 초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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