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개론(2012)
스무 살 승민(이제훈)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첫사랑 서연(수지)을 만납니다. 함께 과제를 하면서 서로 좋은 관계로 발전하지만 작은 오해로 멀어지죠.
15년 뒤 승민(엄태웅)의 건축사무소를 찾은 서연(한가인)은 자신의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제주도 서귀포에 서연의 집이 점점 완성될수록 지나간 첫사랑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영화는 20대의 승민(이제훈)과 30대의 승민(엄태웅)의 정서를 중심으로 보여줍니다. 20대의 풋풋한 대학생 승민과 30대의 직장인 승민의 달라진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과거의 그때를 기억하냐고 묻는 질문에 대답합니다.
내가 그랬었나?
우리는 세월이 지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얼굴 모양이 변하고 사회와 사람을 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십 년 전에 생각도 못했던 내가 돼서 사람을 만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겁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이중적이어서 그런지 한 편으론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전과는 몰라보게 변한 외모를 바라보며 십 년 전과 비교해봐도 달라진 게 없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니까요. 우습지만 그것 역시 사실입니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정말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벽하게 교집합 되는 지점이 있으니까요.
영화 건축학개론에 등장하는 20대의 승민과 30대의 승민 역시 변한 것 같지만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보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첫사랑이 머물러 있는 곳은 같았기 때문이죠.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들도 있고요. 왜 그럴까요? 무엇 때문에 잊히고, 무엇 때문에 더 선명해질까요?
영화 건축학개론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그 이유와 20대 연애와 30대의 연애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특히 건축학개론에선 20대에서 30대로 넘어오는 남자들의 연애관에 대한 변화가 자세하게 묘사돼있습니다. 남자들의 마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20대의 남자들의 연애는 즉흥적이고 말초적인 쾌락에 꽂혀 있습니다. 좋아하는 상대가 생기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죠. 상대와 가까워질수록 스킨십을 통해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고요.
과선배 재욱(유연석)은 승민에게 여자는 일단 술을 마시면 넘어오게 돼있다는 말을 합니다. 20대 남자들의 연애관을 파악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20대 남자들은 사귀는 여자와 잠자리를 함께 한 것에 대해 어마어마한 의미를 둡니다.
잠자리=내 여자라는 등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는 겁니다. 단순하고 바보 같아 보이지만 그것이 20대 남자의 한계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로지 육체적인 관계에 집착하는 모양이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마치 발정 난 강아지가 낑낑대는 모양입니다.
게다가 혼자만의 착각과 자격지심까지 작동을 합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나 혼자서 착각하고 있는 거죠. 나를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나에게 반한 거야. 나 정도면 완벽하지. 그럼 그렇고 말고. 무아지경의 단계에 이르면 아무도 막을 수 없게 되고 결국 병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서툴고 부족한 20대 남자의 연애는 오해와 용기 없음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게 됩니다. 건축학개론의 승민(이제훈)이 서연(수지)을 오해했던 것처럼요. 좋아한다고 용기 있게 고백만 했어도 둘의 관계는 달라졌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엔 연애를 많이 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육체적인 관계에 집착하던 감성적인 관계에 집착하건 상관없이요. 20대에 연애를 많이 하면 할수록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되니까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이런 모양이었구나. 이것 때문에 마음이 아프구나. 최소한의 반성과 성찰이 없이 20대를 넘긴 남자들은 30대에 위험한 사랑에 빠질 수 있으니까요.
30대를 넘긴 남자들의 연애는 20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연애와 결혼을 동일시하는 까닭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수컷 본능은 20대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단지 직장생활과 현실의 무게가 그 마음을 누르고 있는 것이죠.
당장에 직면한 먹고사는 문제와 결혼 등의 고민으로 연애와 이별이 쉽지 않습니다. 이 여자다 싶으면 계속해서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인지 생각하게 되고 다른 여자와 비교하게 됩니다. 20대처럼 쉽게 이별할 수도 없게 됩니다. 이별 후 찾아올 상실감과 그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불안해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부모님의 본격적인 잔소리로 결혼 문제를 고민하는 때이기도 해서 연애=결혼이란 등식이 서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와 연애에 대한 고민으로 20대보다 오히려 소극적으로 변하는 남자들도 있습니다. 그만큼 압박감이 크기 때문일 겁니다. 도망칠 수 없는 현실과 내가 원하는 사랑은 이게 아니었는데 하고 느끼는 남자들이 생겨나는 거죠.
만약 20대에 사랑을 많이 못해본 30대 남자가 결혼까지 약속했던 상대와 이별을 했다면 억울한 심정이 될 겁니다.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나 하는 자괴감까지 들겠죠. 이런 남자들 중에 어떤 부류는 대리 만족할 만한 여러 가지 것들을 찾다 유흥과 도박 등에 빠지기도 합니다.
성숙한 30대 남자라면 연애를 더 이상 육체적인 관계로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연애 실패와 상처는 아픔만을 남기지 않으니까요. 성찰과 반성의 시간도 흘렀습니다. 연애라는 게 원래 끝없는 노력과 배려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20대 남자들의 주된 관심사는 연애입니다. 연애를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게 됩니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승민이 서연과 좋은 관계가 되기 전 승민의 친구 납뜩이는 승민에게 소개팅을 제안합니다.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과 연인이 된다. 소개팅은 20대 남자들의 연애에서 빠질 수 없는 키워드 일 것입니다. 연애의 시작과 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대 남자들이 꺼내들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수단이 소개팅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소개팅이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100번을 만나서 100번을 실패하는 사람도 있고, 한 번의 소개팅으로 평생의 짝을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20대 남자들은 대게 소개팅 자리에서 본인이 모든 것을 리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함께 만나서 이야기하고 밥 먹고 작은 것을 알아가는 게 관계의 시작이라는 것을 모르는 남자들이 절반 이상입니다. 그럼에도 소개팅에 나오는 20대 남자들의 가장 큰 미덕은 미래에 대한 무한 긍정입니다. 꿈과 이상이 큰 20대 남자라면 더더욱 소개팅에서 인기를 얻습니다. 미래에 대해 전전긍긍 불안한 모습보다 불확실하더라도 당당하고 확신에 찬 모습은 반하기에 충분하니까요. 허무맹랑한 허세라면 정반대의 상황이 되겠지만요.
20대 중반을 넘긴 남자들은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마초적이고 잘난척하는 남자가 될지, 남의 말을 잘 듣고 소소한 것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남자로 거듭날지의 갈림길입니다.
소개팅 자리에선 어떨까요? 마초적이고 잘난척하는 남자들은 보는 눈만 높아서 마음에 안 드는 상대에게 매너 없는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허풍과 허세에 소개팅 상대를 질리게 만듭니다. 반대로 남의 이야기를 잘 듣고 대화가 통하는 남자의 경우는 당장 연인이 안 되어도 좋은 친구가 됩니다.
30대 남자의 소개팅은 진지합니다. 단순하게 연애만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개팅 상대와 결혼도 생각해 보게 되는 거죠. 가벼운 만남과 가벼운 이별은 더 이상 그만하고 싶은 마음도 큽니다.
소개팅에서 상대에 대한 매너와 배려도 20대 남자와는 그 격이 다릅니다.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애씁니다. 다만 소개팅에 나온 30대 남자들은 직업인으로서의 질문에 예민해합니다. 20대엔 소개팅 자리에서도 꿈과 이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여자를 선택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20대에 꿈과 이상을 위해 노력하던 남자들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들 중 꿈을 이룬 사람은 극소수이기 때문입니다. 꿈과 이상은 과거의 유물이 된 30대의 남자들은 현실을 바라봅니다. 나와 함께 살 수 있는 여자를 우선순위에 둡니다.
설렘과 기대로 소개팅 자리에 나가지 않습니다. 함께 편할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됩니다. 성격이 맞고 대화가 될 수 있는 짝을 선호합니다. 경제적인 부분도 이해가 맞는지 따집니다.
꿈과 이상을 말해도 소개팅 자리에서 유쾌했던 20대의 소개팅과는 그 결과 차원이 다릅니다. 현실적이고 진지한 연애를 고민하는 게 30대 남자 소개팅의 특징입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합니다. 20대의 철없고 순진했던 남자는 30대가 되면서 현실의 남자로 변합니다. 여전히 실수투성이고 부족하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돼있습니다. 지나간 세월이 우리를 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우리 스스로 변한 까닭입니다.
20대에 만났던 첫사랑을 아련하게 기억하기도 하지만 30대가 된 지금은 현실의 짝과 새로운 미래를 기약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잊을 수도 없겠죠. 다만 우리는 또 다른 사랑을 할 것입니다.
※ 이 매거진의 모든 글을 보려면 #영화처럼연애하기 를 검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