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일을 줄여주지 않는 이유

by 아이엠

“회의 한 번 더 하고 결정하죠.”


조직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 중 하나다. 문제는 그 회의가 실제 결정을 위해 열리는 경우가 드물다는 데 있다. 대부분은 책임을 분산하기 위한 장치다. 한 번의 판단을 위해 사전 회의, 중간 공유, 최종 보고가 반복된다. 그 사이에서 시간은 조용히 소모된다.


최근 접한 한 강연은 이 구조를 아주 단순하게 정리했다. 우리가 그동안 협업이라고 불러왔던 많은 과정은 사실 결정 유예의 기술이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이 구조를 압축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그 유예는 유지되기 어렵다. AI와 인간이 동시에 초안을 만들고, 시뮬레이션하고, 비교하면 ‘다음 회의’는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다. 결정이 빨라지면, 조직은 가벼워진다. 그리고 가벼워진 조직은 경쟁에서 유리해진다.


자동화가 늘어날수록, 개인의 부담은 줄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AI를 ‘업무를 줄여주는 기술’로 기대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AI가 초안을 만들어주고, 정리를 대신해 주면, 인간은 더 많은 판단을 요구받는다. 예전에는 “자료가 늦었습니다”라는 말이 통했지만, 이제는 “왜 이 결론을 선택했는가”가 질문이 된다.


특히 교육이나 연구 현장에서 이 변화는 분명하다. 과거에는 강의 자료 제작, 예시 정리, 시각 자료 구성, 평가 문항 설계가 분리된 작업이었다. 지금은 한 사람이 AI를 활용해 모두를 처리할 수 있다. 그 결과, 작업량은 줄지 않는다. 대신 결정의 밀도가 높아진다. 무엇을 쓰고, 무엇을 버릴지 스스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분업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축소된다


산업사회는 역할을 나누며 성장해 왔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변화는 분업의 붕괴가 아니라 분업의 압축에 가깝다. AI가 각 역할의 ‘평균값’을 처리하면서, 인간은 다시 전체 흐름을 책임지는 위치로 이동하고 있다.


콘텐츠 제작을 예로 들어보자.


과거에는 기획자, 집필자, 편집자, 디자이너가 분리되어 있었다. 지금은 한 사람이 AI를 활용해 기획안을 만들고, 초안을 쓰고, 시각 자료를 생성한 뒤 최종 선택을 한다. 역할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한 사람 안으로 접혀 들어왔다. 내가 연구해 온 AI 기반 학습 시스템 설계에서도 동일한 변화가 나타난다. 예전에는 커리큘럼 설계, 학습 자료 제작, 실습 도구 개발이 각각 다른 전문 영역이었다. 지금은 연구자가 직접 AI를 활용해 설계–실험–수정–배포까지 연결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역량은 특정 도구의 숙련도가 아니라, 전체 구조를 한 번에 바라보는 사고다. 그리고 결과물을 선택, 취합하는 판단력이다.


이제 경쟁력은 속도가 아니라 완결성에 있다.
하나의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과정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가.

분업의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라, ‘혼자서도 완결할 수 있는 인간’이 기준이 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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