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파란 병과 오렌지(2)
지난번 마지막 작업을 마친 모습이다. 원래 피사체의 모습을 지금 비교할 순 없지만 마치 재해석한 것 같은 일러스트처럼 보인다. (스스로 포장을 잘하는 타입)
"선생님. 병목을 얇게 수정하려면 하얀색으로 덮어도 되는 걸까요?” 지난번에 병목을 두껍게 그렸기 때문에 수정 없이 귀여운 이미지로 밀고 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아직 나는 창작의 묘미보단 똑같이 구현해봄에 뜻이 깊은 초초보 유화 입문자인 것이었다. 선생님의 답변은 “하얀색 아니고 바탕색으로 수정.” 아차차. 이렇게 초보의 사고는 언제나 수정은 단순하게 ‘하얀색 바탕’이고 ‘하얀색 젯소’였던 것이었다. 빨리 수정을 하고 싶어서 성급하게 비슷한 색을 만들어서 병목을 가늘게 보이도록 파란 병의 목을 덮었다.
드디어 내가 그리고 있는 피사체가 나타났다. (뭘 보며 그리고 있었냐면요...)
그림엔 '못생김 단계'라는 것이 있다. 절대 한 번의 붓질이나 색칠로는 불가능한 것. 이 과정이 나는 참 재미있다. 어눌하고 못생기고 서툴지만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여러 겹의 레이어드.
얼추 비슷한 색을 찾아 사진처럼 보이는 피사체를 최대한 단순하게 조각내어 대충 구현해봤다. 한 가지 계통의 색이지만 조각을 내어보니 약 다섯 가지로 색이 나눠진다.
이런 기분 혹시 아실까. 마음속에서 색을 질러 보는 맛이 있다. ‘아마도 초록과 딥블루 계열이 들어갔을 거야. 두 가지를 섞으면 가장 깊어질 거야. 여기서 회색을 섞으면 흰색보다는 덜 쨍할 거야..’ 글로 쓰자니 전략 혹은 계산 같아 보이지만 팔레트 위에서 붓이 움직이는 순간은 ‘에라 잇!’하고 색과 색을 휘저어 캔버스 위에 살짝 칠해보는 이 순간만큼은 작은 ‘일탈’이다.
바닥도 메꾼다. 회색인 듯 회색 아닌 보라색이 가미된 테이블과 ‘일단 따라 그려보는’ 그림자. 그저 그림자처럼 보이는 ‘어둠’을 찾아 비슷한 위치에 칠해본다. 선생님은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다가 그림의 ‘논리’를 잃는다고 했다. 그렇다. 복사하듯 그리는 것을 좇으면 그림이 생동감을 잃는다. 조금 다르더라도 말이 되게 하는 그림 (따라 그리는 그림에서)으로 만드는 것이 실력 향상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어쨌든 나는 그림 그리는 과정에서 있는 그대로 보고 따라 그려보는 이 과정이 참 매력적이다. ‘왜곡을 줄일 것’, ‘객관적으로 볼 것’. 인생의 중요한 덕목과도 비슷하지 않은가.
바닥 색과 오렌지의 경계,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얇은 그림자를 인지하고 들뜬 캔버스의 하얀 부분을 칠해본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오렌지 색을 입힌다. 그러고 나니 오렌지가 후숙이 좀 된 것 같다.
마르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유화. 그림 마무리 시간이 다가오자 선생님은 내 붓통을 보더니 '펜 붓'이라는 부채꼴 모양의 붓을 꺼내 준다. 이 붓으로 바탕에 깐 여러 색을 가볍게 치면서 경계를 풀라고 한다. 시범을 보여준다. 아직 마르지 않은 바닥색이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바탕색이 섞인다. 미세하게 남색이 에메랄드색으로 실처럼 올라오고 짙은 남색으로 민트색이 침범한다. '어, 적당해야 할 텐데....' 손의 움직임이 과감해지지 못한다. '붓을 가볍게'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럼에도 부드럽게 바탕이 경계를 허물었다. 우선 이 날의 작업은 여기까지.
펜붓의 기능이 너무 신기해서 이렇게 사진을 찍은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