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부터 다시 배우는 중이다. 킥판을 잡고 팔 휘두르기와 발차기로 몇차례 자유영법을 베이스로 돌았다. 예전과 다르게 팔을 휘두르니 어깨가 아팠다. 킥판을 차며 수영을 하는 것은 정말 재미가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배운 영법이 꽤 되어서 그러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킥판을 빼고 해보라고 하셨다. 어렸을 때 배웠으면 몸이 기억해서 금방 호흡을 찾는다고 했다. 그렇게 자유형을 킥판 없이 했다. 호흡이 달려서 왼손과 팔이 머무르는 시간 오른손 물살 가르기가 불안정했다. 되긴 되어도 자세 지적이 몇 차례 있었다. 나는 계속 시작점으로 돌아오면 다시 출발, 다시 출발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이 숨차는 것이 정말 그리웠다. 친구가 말했던 수영예찬 내용들이 떠올랐다. 신나서 계속 헤엄쳤다.
선생님이 물었다. “안 힘들어요?”
나는 해맑게 웃으면서 헉헉대면서 대답했다. “너무 힘들어요!”
"어렸을 때 수영을 배운 사람들은 수영을 쉬지 않고 돌 줄 알아요. 어릴 때 수영 배우는 방식은 꽤나 스파르타식이었으니까. 성인수영하는 사람들은 수영 하다가 힘들면 중간에 서서 쉬더라고요."
어릴 적 배워서 쓸모있는 것이 있나? 가끔 그런 자문을 한 적이있었는데 이번에 선생님이 하는 얘기를 듣고 어렸을 때 수영 배우길 정말 잘했지 싶었다. 체력이 되어서 내가 계속 헤엄치는 것이 아니라, 등산이나 런닝이랑은 다른 ‘개운한 숨차오름’이 뭔지 알기에 계속 폐활량에 대한 시도 하는 것이었다.
헤엄치는데 앞에서 계속 서버리는 초보라인의 다른 수강생분들과 나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리고 그 분들도 나를 에이스라고 불러서 부담스러웠다. 그들은 나에게 레일을 천천히 돌라고 말한다. 계속해서 힘들지 않냐고 묻는다. 나는 아직 팔돌리기가 편하게 되지는 않지만 이 속도(계속 먼저 멈추는 것이)가 성에 차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 나보다 더 먼저 가고 싶다고 말하는 분위기가 좋고, 나는 조금 쉬었다 가겠노라 말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수영장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수영복을 입고 몸매를 드러내는 이런 그림이 피로해서, 싫어서 오래 주저하면서 수영을 미뤄왔다고 짐작이 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수영’은 나의 번거로움을 잊을 만큼 오래되었지만 새로울 긍정의 신호탄이란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 중에 ‘약간의 거리를 둔다’라는 것이 있는데 그 책 표지가 수영장 모습이다.
어쩌면 나의 삶의 패턴과 호흡을 알아가는 과정이 ‘수영’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