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어느 여름. 집 근처에 괜찮은 수영장이 있다는 정보에, 무료함에, 더위에, 스트레스에 여러 요소가 갖춰지자(?) 수영이 떠올랐다. 배우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자유수영을 해야겠다고 맘먹었다. '개운하게 숨차오르는 그 행위'가 그리웠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꽤 쓸만한 영법을 갖추고 있다는 마음 한구석 믿음이 자유수영에 대한 부담을 덜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 번 자유수영을 다녔는데 할머니들의 텃세가 만만치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처음으로 젊음에 대한 시기 질투를 겪어봤다. 보통 강습을 하면 50분을 하는데, 무진장 열심히 해도 자유수영은 30분은 못 넘기는 것 같았다.
이사를 가고 수영은 또 잊혀졌다. 그러다가 요즘 기분이 장기간 바닥을 치고, 그렇게 좋아하던 요가나 기본 운동조차 하고 싶지 않은 나를 발견했다. 자유수영 하러 갈까? 생각이 떠올랐다. 몇 번이나 주말 자유수영을 가겠노라 스케쥴표에 적었는데 수영을 위한 절차가 피곤하기도 하고(옷갈아입고 몸매를 오픈하는 것에 대한 피로함) 주변에 말해보니 이미 친구는 퇴근 후 수영강습 예찬론자가 되어있었다. 정신건강에 정말 좋다면서. 육체적으로 칼로리 소모가 큰 수영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신건강’과 접목해 수영을 추천하는데 솔깃했다. 친구가 말했다.
“퇴근 후에 수영하잖아? 하루의 피곤함이 물속에 다 녹아. 다 씻고 집에 가잖아? 하루가 엄청 만족스러워.”
내가 안할 이유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거의 생존을 위한 수영을 다시 찾게된 것 과 유사했다. 인명구조와 다를게 없는 진짜 생존.
당장 그 다음날 수영장 강습을 끊었다. 사실 수영의 묘미를 잘 알고 있는 나는, 티켓만 끊었음에도 이미 반은 무언가에 성공한 사람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자유수영보다 50분 채우는 강습이 낫다는 것과, 자세 교정 후 집중하는 것, 화 목반을 하려고 했다가 갑자기 월,수,금 반으로 바꾼 것 등의 소소한 결정이 얼마나 큰 변화의 씨앗일지 느껴졌다.
그렇게 첫 강습시간에 들어갔다. 초,중,고급 라인 중 어디 들어가야 하는지 정하는 건 현장에서 정해진다고 했다. 배우긴 했지만 내 수준을 가늠하기 힘든 나는 우선 초급반에 들어갔다. 선생님에게 어린아이 키를 표현하면서 ‘완전 어릴 때 수영배웠었어요’라고 했더니 '5,6년 전이겠네요?' 하면서 농담을 했다. 곰곰히 세월을 헤어려보았다. 손가락을 접으며 세기도 어려운 무려 25년 전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