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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아름다운>에 대한 단상

고통을 마주할 때 시작되는 회복

by 도유


천국보다 아름다운 포스터2.jpg 출처 : Netflix

⚠️ 스포일러 포함

살다 보면 이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새로운 경험이 쌓여 새로운 관점을 얻거나 몰랐던 진실을 마주할 때 우리는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게 된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 해숙은 죽음 이후 자신이 살아온 삶의 진실을 보게 되고, 자신의 인생을 다시 해석하게 된다.


해숙은 천국에서 남편 낙준과 재회한다. 해숙은 '지금이 가장 예쁘다.'라는 남편의 말을 떠올려 80세의 모습으로 천국에 갔지만, 낙준은 30대의 모습으로 젊어져 있었다. 어느 날 해숙과 낙준의 집에 젊은 여자 솜이가 낙준을 찾아온다. 낙준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솜이를 보며, 해숙은 불편함을 느낀다.


솜이는 해숙이 생존을 위해 스스로 잘라낸 기억과 감정이었다. 해숙은 아들 은호가 다섯 살 때 아들을 잃어버렸다. 아들을 잃은 고통으로 일상이 무너진 상태에서 남편까지 사고를 당하자, 해숙은 아들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다. 천국 센터장은 솜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거부당하고 외면당한 기억들은 잠재의식의 가장 아래쪽에 남게 된다.'라고 말한다. 해숙을 고통스럽게 하는 기억과 감정은 억압되었지만, 솜이의 모습으로 해숙에게 돌아왔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된 것의 귀환(Return of the Repressed)'은 억압된 것이 무의식에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억압은 의식에 불쾌감을 주는 것을 의식에 떠오르지 않도록 막는다. 따라서 억압된 것이 돌아올 때 두려운 감정을 느낀다. 해숙이 솜이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불편한 감정은 늙은 자신과 다르게 남편과 비슷한 나이의 젊은 여성에 대한 질투로 나타나지만, 본질적으로 억압된 것의 회귀에서 온 불쾌함이었을 수 있다.


천국 센터장은 솜이가 해숙의 이해와 사랑을 통해 정화되는 형태로 소멸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기억과 감정을 직면해야 한다는 뜻이다. 해숙은 아들을 잃어버린 기억과 감정을 마주한다. 자기 잘못으로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과 아들을 잊은 자신에 대한 분노를 느낀다. 스스로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은 솜이가 해숙을 해치려는 자기 파괴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이때 아들 은호는 자기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기를 놓고 엄마도 편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해숙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게 돕는다. 해숙이 고통을 받아들이고, 자신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보이자, 솜이는 소멸되었다.


우리는 삶의 고통이 남긴 상처로부터 회복을 바란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에는 살아 있는 동안 치유되지 못한 고통이 죽음 이후라도 회복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있다. 회복은 고통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마주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자기에 대한 수용과 자비의 태도는 고통이 회복으로 나아가게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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