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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가 된 남자> 시즌 1에 대한 단상

유한성에서 발견하는 관계의 의미

by 도유


출처 : Netflix

어느 여름밤 산책길에서 할머니들이 모여 수다 떠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내가 할머니가 돼도 함께 이야기할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바란다. 내가 맺는 지금의 관계들이 영원하기를.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노년기가 외로울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산다.


<스파이가 된 남자>는 노년기의 삶을 조명한다. 은퇴한 건축학과 교수인 찰스는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살고 있다. 어느 날 딸 에밀리는 찰스에게 의미 있고, 설렐만한 일을 찾아보라는 제안을 한다. 찰스는 사립 탐정 보조를 모집하는 공고에 지원하여 합격하고, 퍼시픽 뷰 실버타운에 스파이로 잠입하게 된다. 그의 미션은 실버타운 안에서 일어난 루비 목걸이 도난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이다.


찰스는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퍼시픽 뷰 입주민들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입주민들의 삶을 관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서서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했다. 그렇게 찰스는 그의 방식대로 사건의 진실에 다가갔다. 도난 사건의 의뢰인 에번이 자신의 어머니 헬렌이 퍼시픽 뷰에 대해 불평이 많다고 이야기하자 찰스는 어머니가 불평하는 이유는 아들을 보지 못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대부분 노년층에게 가장 큰 위험 요소는 사고나 질병이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퍼시픽 뷰 이사 디디의 말을 인용한다. 의뢰인 에번이 더 관심을 가졌어야 하는 대상은 물건을 훔친 범인이 아니라 어머니였을 수 있다.


찰스 또한 노년기에 딸 에밀리와의 관계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야 했다. 에밀리는 어머니가 정서적인 접착제 역할을 했어서, 어머니가 죽고 나서 자신과 아버지의 사이가 멀어졌다고 말한다. 에밀리는 더 이상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와 소통할 수 없다. 아버지와 갈등이 생겨도 어머니를 통해 해결할 수 없다. 찰스와 에밀리는 아내이자 어머니의 존재 없이 다시 관계 맺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대화의 시간을 통해 서로를 이해해 간다. 찰스는 에밀리와 함께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며, 그동안 묻어두었던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러한 과정 끝에 찰스와 에밀리는 '사랑한다.'라는 말없이도 사랑을 전하는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게 된다.


퍼시픽 뷰 입주민 엘리엇은 노년기에도 사랑이 중요한 가치임을 보여준다. 엘리엇은 암 재발을 알게 된 뒤 버지니아에게 청혼한다. 엘리엇은 버지니아와 결혼했다가 헤어진 경험이 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최고의 짝이라는 것을 알고 다시 시도해 보기로 결단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 우리는 유한성을 알고 있지만, 유한성을 인식하면 불안이 따라오기 때문에 유한성을 잊고 살 때가 많다. 하지만 유한성을 마주할 때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드라마 <굿 플레이스>에는 '인간이 죽음을 알기 때문에 인생에 의미가 생긴다.'는 대사가 나온다. 우리는 함께 하는 것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너에게서 나의 의미를 찾고, 나에게서 너의 의미를 찾는다. 관계에는 끝이 있기 때문에 더해지는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관계가 언제까지 갈지 알지 못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것. 우리의 사랑은 유한하기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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