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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독 Oct 19. 2023

내 이별 트라우마의 시발점

별나면 혼자가 되는 결말

   인생 영화는 보통 해피엔딩이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나쁜 기억은 잊고, 좋은 기억은 간직하려고 한다. 미화된 과거가 그리움으로 남듯이, 시간 지나 추억이 되듯이. 그것들이 재발현되기를 바라면서 내일을 마저 살아가듯이 말이다. 나는 이 영화를 써 내리기에 앞서 모든 기억을 꺼내 나열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 기억이 드문드문한 게 왼쪽 옆통수와 뒤통수 포함 머리가 세 번이나 깨져서 그런 줄 알았는데, 문득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어떤 충격이 있었길래 나는 그들과의 기억을 잃은 걸까.   

  

   초등학교 때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사는 친구가 있었다. 어릴 적 친구 한 명을 이야기하라면 얘부터 떠오른다. 세진과 나는 매일같이 서로의 집에 놀러 갔고, 화장실 거울을 보면서 엎치락뒤치락 누가 더 크나 키 대결을 했다. 그런데 이게 세진과 기억의 끝이다. 그 뒤는 시간이 흘러 잊힌 게 아니라, 그 부분 퍼즐만 빼버린 듯 기억에서 사라졌다. 다만 중학생 때 가족 외식을 나가면서 동생이 아파트 정문에 보이는 범석을 보고 던진 말에 특정 단어가 스쳤다.

   범석은 초등학교 때 전학을 온 친구다. 역시나 같은 아파트에 살았고, 나와는 저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어릴 때나 요즘이나 내 친구들끼리 친해지는 것은 흔한 일인 만큼 범석도 나를 통해 세진을 알게 되었다. 그런 범석을 보며 동생이 뱉은 확신의 한 마디.

   “어! 저 오빠, 오빠 친구 뺏어간 사람이다!”

   순간 ‘배신’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어떤 오해가 있었던 건 아닌지. 도통 모르겠지만, 기억나지 않는 기억을 억누르면서 무언가 부정하고 있음은 분명했다.     


   유난히 친구들을 좋아했다.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을 때, 선뜻 다가왔던 관찰자가 그들이었기 때문일까. 생각해 보면 단 한 번도 내가 먼저 다가가서 관계를 맺은 적은 없었다. 갓난아이에게 엄마의 부재가 큰 위협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엄마와 자신을 아직 하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이는 엄마에게 의존하면서 안정을 느끼고, 주고받는 애착 속에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 그리고 성장 과정에서 엄마와 자연히 분리되면서 장난감과 같은 다른 대상으로 애착을 옮겨가는데, 학창 시절 나에게는 친구들이 그런 존재 아니었을까. 중간 대상은 아이가 상실감을 느끼지 않도록, 새로운 상황과 변화에 적응해 갈 때 안정을 유지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그때의 기억을 잃은 건 단순히 애착을 잃은 충격 때문이었는지. 어떤 무리에도 속하지 않는 것과 속해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도 그와 같은 날들이 쌓여서 그런 것인지. 접점도 없이 전혀 다른 듯한 사건이 알고 보면 인과성을 가진 경우가 있다. 환경에 따라 결핍에 따라 애착도 조금씩 변해가듯, 소원의 부재로 떠오른 열아홉 살 기억이 이별 트라우마의 본질이라 외칠 수는 없겠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하나의 퍼즐임은 틀림없었다.     


   고3 시절 여름이었다. 외동인 사촌 동생에게 형제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걸까. 이모께서는 웬일로 강아지를 키우겠다며, 한 시간쯤 떨어진 어느 시골에서 새끼 파피용 두 마리를 분양받기로 하셨다. 나는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는 궁금증에 이모를 따라나섰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분양소 주인분은 생각지 못한 질문을 던지셨다.

   “혹시 괜찮으시면 한 마리 더 데려갈 생각 없으세요?”

   까분다는 이유로 두 번이나 파양되어 돌아온 비글이었다. 까불이 인생을 사는 존재에게 느껴지는 동병상련이었을까. 엄마께 책임지고 싶다며 바로 허락받았고, 그날 새로운 애착이 생겼다. 무작정 끌렸던 첫 만남에 맑은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이름은 ‘나댐’. 좋아하는 연예인 별명에서 따온 이름이 내 눈에는 너무 이쁜데, 주변에서는 너무 막 지은 거 아니냐고 해서 아직도 미안한 이름이다.

   이모께서 데려온 파피용 형제는 처음 온 날부터 매일 아팠다. 어쩔 수 없이 파피용 형제는 3일 만에 어미에게 돌아갔고, 그날 드라이브는 얼떨결에 우리의 시절인연이 되었다. 오히려 악마 견이라 불리는 비글이라 좋았다. 예뻤고, 까불었다. 특히 깊은 잠을 자다가도 바스락 봉지 소리에 비몽사몽 좀비처럼 걸어오는 식탐마저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나댐과 소중한 시간을 몇 달째 보내고 있을 때였다. 타인의 충동이나 개연성이 개인을 침범하는 경우가 있다. 나의 개연성을 떠나 그들의 개연성이 들이닥치는 순간은 언제나 갑자기 다. 어느 날 계획에서 벗어난, 그러나 나의 묻어남이 나서서 매듭지어야 하는 새로운 결정의 순간이 들이닥쳤다.

   “요 앞 과일가게 아저씨가 주택에 강아지를 여러 마리 키우신다는데 거기 보낼래? 아니면 네가 서울로 데려가서 키울래?”

   몇 달 전 진로를 정한 나는 혼자 서울에 올라가기로 했다. 평소 나댐은 엄마와 내가 돌보았는데, 내가 서울로 가버리면 엄마 혼자 도맡아야 하는 상황에 주어진 급작스러운 선택지였다. 지금이라면 0.1초의 생각조차 필요 없는 고민인데, 그때는 왜 그랬을까. 부모님께 부담드리기 싫다는 이유 하나로 학교 근방에 있는 삼촌 집에 들어가기로 결정을 마친 상태였다. 강아지를 키우던 삼촌께 혹시 나댐을 데려가서 잠깐 키워도 되는지 부탁했지만, 단숨에 거절당했다. 아쉽게도 삼촌 성격상 바뀌시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설득조차 해보지 않았고, 자취도 고려하지 않았다. 이미 나 한 명도 그들에게 짐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얼마 뒤 과일가게 아저씨께서 1층에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순간 알았다. 이렇게 될 줄. 지금 선택이 두고두고 큰 후회가 될 거라는 걸 바로 알았다. 하지만 아저씨도 왔는데 어찌 선택을 바꾸냐며 상황을 자초한 자신을 탓할 뿐이었다. 소원과의 통화에 불안을 느꼈던 것도 이날의 연장선이었을까. 강아지와 절대 뽀뽀하지 않는 나는 15층에서 1층으로 떨어져 내리는 동안 미안함에 울면서 나댐에게 처음 입 맞춰 주었다. 품에서 건네어 주는 순간까지 갈등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나는 집에 올라가 미안하다며 한참을 멈추지 않는 눈물을 훔쳤다. 이것도 투사적 동일시였는지, 아무렇지 않은 가족이 한동안 미웠다. 이미 두 번이나 버림받은 나댐에게 책임지고 사랑을 주겠다며 약속했는데, 겨우 나의 서울행이 나댐에게 세 번째 이별을 선사한 것이다.

   서울살이는 곧바로 시작됐다. 고맙게도 나댐은 입대하기 전까지 일 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꿈에 찾아와 줬다. 그때마다 후회 섞인 자책을 반복하면서 사죄의 눈물을 흘렸다. 나댐과 함께였다면 무채색 겨울은 변함없는 나의 계절이었을까. 보내지 말걸. 그냥 자취할걸. 더 좋은 주인과 함께 뛰어놀 친구들 곁에서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 선택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8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끄적이며 흘리는 눈물조차 염치없다. 이기적이지만 오늘도 나댐이 나를 완전히 잊은 채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빈다. 산책하다가 강아지를 보면 나댐의 표정을 떠올리고, 어떻게 지내는지 죄책감을 느끼고는 하는데, 이는 언젠간 무뎌질 줄 알았던 마음이었다. 아니 전혀. 평생에 걸쳐 나는 변치 않는 계절을 살았다.     


   나는 말할 때 서론이 길다. 서론이 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납득시켜야 할 것 같다. 어떻게 비칠까 두려워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설명한다. 오해해서 떠날까 봐. 싫어질까 봐. 모든 관계에서 불안하다. 이야기하는 대상이 나에게 소중한 존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첫째라는 이유로, 어쩌면 무책임을 반복하기 싫다는 불안으로. 단지 떠나는 게 내가 별로인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고, 애초에 크게 마음 나눠야 할 관계는 여러 조건 핑계 삼아 회피하는 사람이 되었다. 묵혀둔 분노들 또한 떠나지 않을 것 같은 가족 앞에서만 겨우 터지고는 했다. 나한테 필요한 게 무엇인 줄도 모르고, 인생의 초점이 언제 떠날지 모르는 그들에게 맞춰진 거다.

   가방 속 물건이 사라졌나, 잘하고 있는 게 맞나, 끝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확인하는 강박도 거세졌다. 때로는 그런 마음이 모두에게 최선을 다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기대에 못 미쳐 상처받고, 참견에 미움받을 때도 있었다. 모두에게 사랑받기 위한 사람은 정작 누군가에게 필요한 한 사람이 되기는 어려웠다. 차라리 상처받았을 때 선이라도 그었으면 다행이었을까. 계속해서 나와 닮은 진심들을 찾아다니다가 무미건조한 바다 위에 고립돼 조금씩 사라져갔다.

   그제야 알았다. 나에게는 수많은 관찰자가 아닌 존재를 느끼게 해줄 단 하나의 관찰자가 필요했다는 걸. 그날 이후 눈물이 멈춘 건 어디에도 기댈 수 없다고 단정했기 때문일까. 이럴 때 우리는 현실에서 벗어난 초월적인 존재나 특정 사상을 한풀의 지푸라기 잡듯이 찾거나 만들어 낸다. 믿는 것에는 언제나 안정되고픈 욕구가 깃들어 있었으며, 두터워질수록 신뢰라는 가치는 중요도를 키워갔다. 그러나 확립된 신뢰가 절대 현상을 삼켜서는 안 됐다. 때때로 숲으로 뒤덮인 사찰에 들러 안정을 느낄 때도 있지만, 한 종교를 맹신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누군가 신을 봤다면, 그들에게는 신이 존재하고, 그 영향으로 안정을 느낄 수 있다고도 믿는다. 더불어 <인사이드 아웃> 주인공 라일리의 상상 속 친구 ‘빙봉’처럼 긍정적인 영향이라면 실존 여부 따위는 중요치 않다.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이 힘들 때, 의지할 곳이 어디에도 없을 때 자신을 안정되게 만들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일까.


   상처는 보이지 않아도 무의식에 남고, 일관되지 못한 사랑으로 얻어진 생존법은 현상으로써 평생을 따라간다. 그렇게 우리는 쫓기듯 투사, 분노, 억압의 순서를 반복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평생에 걸쳐 스스로 관찰자가 되어줄 수 있다는 진실조차 알지를 못하고 순간 자기 존재를 확인해 줄 외부 관찰자만 좇았다. 그들이 나를 앗아갈 바닷물인 줄도 모르고, 유달리 외로웠던 자신을 탓하기에 열중했다. 나도 모르는 내가 왜 그랬었는지 알기 전까지. 오래도록 쭉. 그렇게 눈먼 인정 중독자가 되어 그만한 삶을 살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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