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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독 Oct 18. 2023

고통 vs 50억 받고 감정 잃기

공포증, 이 자의식아!

   본인이 큰 위험에 처한 모습을 3자 시선에서 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의 왼쪽 손목 전역에는 점차 번져가는 흉터. 무사히 잘 살아남았다고 말해주는 듯한 영광의 화상 자국이 있다.     


   아득히 사라진 계절을 낡은 테이프의 기억력을 빌려서 되돌아보았다. 시간은 돌 이틀 뒤 저녁인 1996년 12월 13일 19시 46분. 4:3 비율의 비디오에서는 제목을 알 수 없는 클래식 피아노 선율이 흘렀고, 붉은색 조끼를 입은 엄마가 부엌 가스레인지 앞에서 요리하고 계셨다. 아빠는 거실에서 뒤뚱거리는 나를 촬영하셨는데, 그때 하늘색 배바지를 여미고 옹알거리는 내가 화면에 등장했다. 나는 몸통만 한 숟가락을 들고 부엌과 거실을 종횡무진 누비다가 음식 냄새를 맡았는지 어기적어기적 식탁으로 향했고, 국그릇에 미역국을 뜨고 계시던 엄마와 눈을 마주쳤다. 그에 고개를 갸우뚱한 엄마는 코를 찡긋하며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앗 뜨거워-”

   그렇게 번갈아 두리번대던 엄마가 가스레인지로 완전히 시선을 옮기고는 8초가 지났을 때였다. 식탁 위로 손을 뻗어 필사적인 숟가락 삽질을 하던 나로 인해 국그릇이 아래로 대차게 쏟아졌다. 곧바로 울려 퍼진 힘찬 울음과 덜컹대는 비디오, 고개 돌린 엄마의 비명까지. 불과 21초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정말로 앗 뜨거워.

   ‘삐……’

   다음 장면은 며칠 후였다. 머리 크기만 한 붕대를 왼 손목에 두른 나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카메라를 향해 맑게 웃었다. 그날 미역국은 다행히(?) 얼굴을 피해 온몸에 쏟아졌고, 왼 손목에만 살 껍질이 벗겨져 흉터가 생겼다. 그 모습이 속상하고 미안했던 엄마는 요즘도 엉덩이 살을 떼서 흉터에 붙이라고 하신다. 그게 더 무섭지 않나…? 사라지면 허전할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어릴 적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부딪히고, 다치고 몸이 성할 날이 없었다.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 응급실은 기본, 머리도 3번이나 깨지고, 턱도 깨지고, 치아도 2개 넘게 날아갔으니 말이다. 턱이 깨졌다는 것도 턱 왼쪽 아래에 있는 점을 구경하다가 옆에 흉터가 있어서 알게 됐다.     

   여러 공포증을 안고 있는 이유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태생적 겁쟁이거나 아팠던 기억들 때문이거나. 어릴 적에는 혼자 남겨진 어둑한 방이 무서웠고, 태권도 수업을 마친 밤에는 어둠 따라 걷는 길이 무서웠다. 또 누군가 곁을 떠날까 봐, 놀이기구 타다가 살아남지 못할까 봐, 나를 나쁜 사람으로 볼까 봐 두려웠다.

   공포는 자신에게 해가 되는 대상에게서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생존법이라고 한다. 대상이 실존하지 않아도 이미지를 상상하고 부풀려서 예방하는 거랄까. 특히 위협을 느낀 상황에 분노를 제대로 배설하지 못하면 여러 신체화 증상으로 드러나기도 하는데, 그중 하나가 공포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어둠이 무서웠던 건 세상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었고, 무서워하는 대상이 많다는 건 그만큼 억압된 분노가 많아서였다. 겁쟁이라서 회피하고 억압하게 되는 순서가 아니라, 잔뜩 억압하다 보니 어느새 겁쟁이였다. 실제로 외적 상처와 내적 상처는 비슷한 효과를 발휘한다. 발신자가 신용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했더라도 추후엔 메시지만 기억에 남으며, 보이지 않는 상처는 아물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처럼 사람은 사소하게 상처받고 기억하는데, 유독 우리는 보이지 않는 상처에 관대하다. 위협을 막을 만큼 단단하지 못했던 우리는 예민한 것도 속이 좁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어릴 적 나는 힘들 걸 알아봐 달라며 일부러 소리 내어 울곤 했다. 울음은 돌봄이 필요한 상태라는 걸 알리는 행동이기도 한데, 그 시절 나를 달래준 건 음악이 유일했고, 그때부터 음악을 곁에 두었다. 그런데 눈치 보는 거에 더불어 노래하기까지 무서워졌다. 우리 엄마도 똑같으시다. 그만치 노력도 하시는데 그게 잘 안된다. 노래를 부르면 아빠는 무슨 연유인지 음치라면서 우리를 놀리셨고, 딱히 음치가 아니었음에도 두 사람은 조금씩 목소리를 잃어갔다. 비디오는 연도를 넘어갈수록 얌전해진 나를 담고 있었는데, 사실 내가 위험에 처했던 순간은 화상을 입던 찰나가 아니라 나로서 존재하지 못하게 된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보고 음치라고 하면 어떡하지?’

   대신 기타나 다른 악기를 배웠지만, 점점 나오지 않는 목소리 탓에 악기에도 흥미를 잃었다. 나도 사람들 앞에 기타치고, 건반을 두드리며 노래하고는 싶은데. 아빠는 그런 나를 발견하는 순간 놀렸고, 누가 연습하는 소리를 들으면 어쩌지. 끝없는 불안과 초조함에 시들시들한 흥얼거림마저 포기하였다. 그 이후 사람들 앞에 서는 것까지 두려워지면서 주목 공포증까지 화려한 신고식을 맞이했다. 노래방에 갈 때면 혹여 분위기를 망치면 어쩌나. 시한폭탄 돌리듯이 리모컨이 내게로 오는 게 불안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잘 부르지 않아도 당당히 노래하는 친구를 부러움으로 바라봤달까.     


   군대 마지막 휴가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훈련소 동기를 만나러 대구에 갔다가, 클럽에 들른 적이 있었다. 짐도 한가득 들고 있었고, 클럽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도 있었지만, 한 번쯤 궁금한 마음과 유명 가수가 오늘 공연을 온다는 회유로 클럽을 경험했다. 이명이 오도록 울렁였다. 모르는 이들 사이에서 다들 흐느적댄다. 2층 난간에 붙어 나는 처음 온 사람답게 크로스백을 끌어안고 1층을 내려다보았다. 신기했던 건 난간에 서 있으면 낯도 안 가리는지 사람들이 들러붙는데, 기분이 참 이상했다. 인사라도 해야 하나. 나도 저들처럼 주변 신경 안 쓰고 뛰어 놀아보고는 싶은데 이미 굳은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친구에게 미안함만 커졌다.

   기쁠 때 온전히 기뻐 본 적이 없고, 신날 때 온전히 신나본 적이 없다. 커서는 슬플 때도 울고 싶다고 발을 동동거릴 뿐이었다. 아니 어떤 감정이 억눌렸는지조차 모르겠다. 다가오는 것과 상관없이 주변 파동을 입자로 바꾸기에 십상이었으니. 다행히 가끔 들리는 칭찬은 감춰진 목소리를 찬찬히 해소하게 했고, 이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제 발로 노래방에 들어섰다. 그렇게 동생 주도로 십여 년 만에 가족들과 노래방에 간 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아빠께서는 놀릴 준비를 하시다가 지난 영향에 살짝 무책임한 듯 몇십 년의 일을 한 마디로 종결시키셨다.

   “이제 음치 아니네?”

   달라진 건 실력이 아니라 약간은 나아진 자신감뿐이었는데. 어느새 나는 주관적 잣대를 들이대던 그들을 동일시하였다. 동일시는 타인의 어떠한 모습을 무의식에 닮아가는 걸 말하는데, 두려워하는 대상의 특징을 가져와 두려움을 해소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도 남을 지켜보면서 은근하게 평가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렇게 결핍이 대물림 되는 걸까. 이후 투사적 동일시까지 되어 말대꾸를 싫어하는 아빠처럼 누군가 말에 반박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불안하고 힘들어져서 그냥 모르는 척했다. 그 순간 아빠도 자신이 틀렸을지 모른다는 검열에 불안한 거였을까. 아빠는 모든 초점이 가족에게 맞춰져 있는 유머러스하고 조건 없는 지지를 해주는 감사한 존재였지만, 저 찰나만큼은 마음속 어린아이를 품은 한 사람일 뿐이었다.     


   오늘도 지나가는 구급차에 무사함을 빈다. ‘혹시 실수로 바닥에 개미를 밟으면 어떡하지?’ 누군가에게는 뜬구름 잡는 걱정이지만, 불안에 두리번두리번 살피고 피해 다니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다행히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고 느끼지만, 숨 쉬지 않는 물건에도 연신 사과하는 나는 그대로일지도 모른다. 해코지당할지 모르는 고즈넉한 밤거리가 무섭고, 언제라도 죽음을 맞이할까 상황에 대비하는 나는 상상으로 부풀려진 후천적인 겁쟁이였다. 이 영화마저 꾸준히 여러 곳에 뿌리면서 다 쓰고만 죽게 해달라고 소원해왔다. 그것들과 더불어 ‘표현의 억압’ ‘습관적 평가’까지. 안타깝게 어른이라는 관찰자가 남긴 결핍은 아이가 혼자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겨졌다.

   순간에 빠질 줄 아는 사람이 부럽다.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인지. 기억해야 할 건 노래를 부를 때 행복하다는 현상이었고, 겁은 나를 지키는 정도로만 활용하기로 했다. 환상에 갇혀 나까지 잃을 필요는 없었다. 지난 환상은 낡은 테이프 속에 묻어두고 다음 여정은 정말 필요한 짐만을 품어 조금 가볍게 떠나보기로 했다.    

  

   나는 농담 4, 진담 6 이런 말을 한다.

   “혹시 내가 갑자기 죽으면 그건 무조건 타살이야.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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