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뒤에 다시 찾아올 그 대회
6월 29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갈라 콘서트를 끝으로 13일 동안의 제16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가 막을 내렸다. 4년 주기로 돌아오는 이 콩쿠르의 다음 대회는 2023년에 열린다.
이번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목관과 금관 부문의 신설 등 그 물적 확장이 단연 돋보이는 대회였다. 제16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그 과정과 결과는 어떠했을지 세 가지 키워드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장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2011년 제14회 대회부터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두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대공연장에서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가장 중요한 피아노 부문이 진행된다. 같은 음악원의 소공연장에서는 바이올린 부문의 본선 1, 2차 심사가 이루어지고, 바이올린 부문의 결선은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홀에서 열린다.
첼로 부문의 본선 1, 2차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아 소공연장에서 결선은 필하모니아 대공연장에서 진행되었다. 성악은 마린스키 신관 5층에 위치한 무소르그스키 홀에서, 결선은 같은 건물 대공연장에서 열렸다.
이렇듯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두 도시의 중요한 공연장이 총동원된 이번 대회에서 목관 부문 본선 1, 2차가 열린 레피노 콘서트 홀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레피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30km 떨어진 지역이다. 이곳에 거주했던 러시아의 유명한 화가 일리야 레핀의 이름을 붙인 레피노에는 러시아의 작곡가들을 위한 휴양 시설이 마련되기도 했다. 쇼스타코비치도 한때 이곳에 머물며 작곡하였다.
2017년 5월 개관된 레피노 콘서트 홀은 목재가 그대로 드러나는 내부 구조가 두드러진다. 특히 무대 바로 뒤편에는 커다란 창문이 나 있는데, 창문을 통해 그림같이 보이는 나무들은 연주 장면과 어우러져 인상적이다.
모스크바 갈라 콘서트가 열린 자랴지예 콘서트 홀 역시 눈길을 끌었다. 2017년 문을 연 자랴지예 공원에 위치한 이 공연장은 클래식 음악 이외에도 재즈, 동시대 음악 등 다양한 공연을 위해 설계되었다고 한다. 특히 크렘린, 모스크바 강변과 인접한 관광에 최적인 위치와, 마치 물결치는 것 같은 유선형의 흰 난간이 무대의 사방을 감싸는 형태의 객석 구조가 인상적이다.
2. 사람
그렇다면 제16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수상한 이들은 누구일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는 피아노 부문의 수상자와 이외 부문에서 주목할만한 이들을 살펴보자.
제16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의 우승자는 프랑스에서 온 알렉산드르 칸토로프이다. 결선 지정곡으로 유일하게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선택한 그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함께 연주했다. 특유의 이완된 자세와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서정적인 선율은 결선 진출자 중 단연 돋보였다. 이번 대회의 그랑프리상 역시 수상한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장-자크 칸토로프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밖에 피아노 부문에서는 일본의 마오 후지타, 러시아의 드미트리 시쉬킨이 공동 2위를, 미국의 케니스 브로베르크와 러시아의 알렉세이 멜니코프, 콘스탄틴 이멜랴노프가 공동 3위를, 중국의 안 티엔쉬(安天旭)가 4위를 차지했다. 이번 대회 피아노 부문의 결과에서는 2, 3위의 공동 수상이 눈에 띈다.
올해 열린 제1회 중국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2위를 수상한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말로페예프의 참가 역시 대회가 시작하기 전부터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말로페예프는 다소 불안정한 연주를 보였고, 본선 1차에서 탈락했다.
바이올린 부문의 우승자는 러시아의 세르게이 도가딘이다. 한국의 김동현은 바이올린 부문 3위를 수상하였다. 첼로 부문에서도 한국인 수상자가 있다. 바로 4위를 차지한 문태국이다. 그 밖에도 성악 남성 부문에서는 김기훈이 2위를, 이번 대회에서 신설된 금관 부문에서는 프렌치 호른을 연주하는 유해리가 7위를 수상한 것도 주목해볼 만하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참가자는 첼로 부문에서 2위를 수상한 산티아고 카뇬 발렌시아였다. 양손에 반지를 두세 개씩 끼며 등장한 그는 본선 1차 무대에서 히나스테라의 첼로 소나타를 연주하는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그의 결선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 출신국인 콜롬비아의 국기를 흔드는 관객들의 모습도 불 수 있었다. 갈라 콘서트에서 역시 그의 연주가 끝나고 콜롬비아 국기를 볼 수 있었다. 이번에 국기를 흔든 사람은 오케스트라의 더블베이스 연주자였다. 이렇게 많은 주목을 받은 그는 메디치 tv에서 진행한 온라인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3. 사고
제16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총 6개 부문이 동시에 진행되는 매우 큰 대회였지만 전반적으로 무사히 막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장면에서 발생한 몇 번의 사고는 연주자와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중 하나는 결선 첫째 날, 중국인 참가자 안 티엔쉬의 무대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는 결선곡으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먼저 연주하고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연주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오케스트라에게 전달된 악보의 순서는 라흐마니노프의 곡이 먼저였고, 지휘자는 이 순서대로 연주를 시작했다.
당연히 차이코프스키의 곡이 먼저 시작될 것으로 알고 준비하고 있던 안 티엔쉬가 갑자기 라흐마니노프의 곡이 시작하자 깜짝 놀라 연주 시작 부분을 놓치고, 당황하는 표정은 중계 영상에 그대로 담겼다.
결선 연주가 끝나자 심사위원 측은 만장일치로 안 티엔쉬에게 다시 연주할 기회를 준다고 전했지만 그는 이를 거절했다. 결국 오케스트라는 해당 잘못을 저지른 직원을 해고했고, 안 티엔쉬는 피아노 부문 4위 이외에도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 사고는 이번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가장 큰 사고로 참가자 본인과 이를 지켜보던 전 세계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사고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이틀 뒤, 피아노 부문 마지막 결선 연주자인 미국의 케니스 브로베르크는 안 티엔쉬와 같은 곡(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과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할 예정이었다. 무대 위로 올라온 브로베르크는 연주를 시작하기 전, 지휘자를 향해 라흐마니노프를 먼저 하는 것이 맞냐고 확인하였다. 관객들은 이 모습을 보고 웃었지만, 사고 당사자인 안 티엔쉬가 직접 겪은 일은 얼마나 끔찍했을까. 개인적으로 이번 대회 피아노 부문에서 2위가 두 명, 3위가 세 명으로 다소 많은 공동 수상자가 나온 것은 참가자들의 실력 이외에도 안 티엔쉬의 사고와 완전히 무관하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한국인 참가자 김동현의 바이올린 결선에서 일어난 일이다. 결선 무대에서 김동현은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4번>에 이어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문제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먼저 시작되고 잠시 뒤, 김동현이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객석에서 누군가가 몇 초간 고함을 지른 것이다. 김동현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연주는 차분히 계속되었고, 다시 보기 영상은 객석의 고함 소리가 완전히 삭제된 상태로 게시되었다. 해당 영상에서는 당시 상황을 알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이다. 김동현은 바이올린 부문에서 3위를 수상했다.
6월 마지막 2주간 새벽잠을 들지 못하게 만든 차이코프스키 콩쿠르가 끝났다. 1차, 2차, 결선까지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의 대회는 실시간 중계 영상을 보는 것만도 고된 일이었다. 심지어 이번 대회에서 처음 도입된 금관 부문은 6월 25일 하루 동안 2차 본선이 이루어지고 딱 하루를 쉰 뒤, 바로 27일에 결선이 진행되는 일정이었다. 과연 이 대회를 준비하는 당사자들의 노고는 얼마 날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제16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열기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수상자들의 연주회가 남은 것이다. 대표적으로 올해 10월 27일 카네기 홀 연주회에서 이번 콩쿠르의 조직위원장이었던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콩쿠르 수상자들을 소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 이외에도 많은 연주회들이 예정되어 있는데, 한국에서는 10월 15일 예술의 전당에서 피아노 부문 우승자 알렉산드르 칸토로프, 바이올린 부문 우승자 세르게이 도가딘, 첼로 부문 2위 산티아고 카뇬 발렌시아가 연주하는 갈라 콘서트가 열린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바르샤바의 쇼팽 콩쿠르,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불린다. 이런 말을 접할 때마다 나는 콩쿠르의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묻게 된다. 대회의 권위란 콩쿠르 조직위원회와 심사위원단을 구성하는 유명인들의 이름에서 나오는 것일까, 콩쿠르의 규모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콩쿠르를 거쳐간 역대 수상자들의 이름에서 나온 것일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한다. 1958년 대회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조직위원장은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였고,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찬 러시아의 유명 연주자들(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레오니드 코간,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에밀 길렐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등)이 콩쿠르의 역대 심사위원석을 채웠다. 그것은 이번 대회 역시 다르지 않았다.
콩쿠르의 규모는 어떠한가? 제16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새로 추가된 목관과 금관 부문을 포함하여 총 6개 부문이 동시에 진행된다. 대회가 열리는 장소, 결선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이름만 훑어봐도 이 대회에 얼마나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이 투입되는지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다. 나날이 팽창해가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규모는 솔직히 두려울 정도이다.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쇼팽 콩쿠르는 피아노 부문만 진행되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2015년 이후로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성악 4개 부문이 매해 하나씩 번갈아 가면서 열리고 있다. 규모면에서만 본다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세계 최고이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를 거쳐간 수상자들의 명단 역시 화려하다. 제1회 대회 피아노 부문에서 수상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반 클라이번으로 시작하여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기돈 크레머,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정명훈, 안드라스 쉬프, 미로슬라프 꿀띠쉐프, 다닐 트리포노프, 뤼카 드바르그 등.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꾸준히 실력 있고, 스타성도 갖춘 수상자들을 배출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눈길을 끌만한 연주자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점들을 살펴보면 앞으로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명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콩쿠르의 명성이라는 단어는 항상 찝찝한 무언가를 남긴다. 그 뒤에는 콩쿠르에 참가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수많은 젊은 음악가들의 노고, 콩쿠르 수상 뒤에도 보장되지 않는 미래, 그리고 이렇게 큰 대회를 만들기까지 작용했을 권력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대회를 넘어 하나의 축제로까지 나아가고 있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를 대할 때, 항상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다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2023년 제17회 대회로 찾아온다. 나날이 규모를 키우는 이 대회는 다음번에는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까. 4년 뒤의 모습이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