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올 7월 11일부터 14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는 국립오페라단의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공연이 진행되었다.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각본을 쓰고 쿠르트 바일이 작곡한 오페라로 한국에서는 이번에 초연되는 작품이다.
한국 청중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그 내용과,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공연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들을 살펴보자.
1. 마하고니의 시작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27년이다. 작곡가 쿠르트 바일은 1927년 바덴바덴 음악제에 낼 작품을 위촉받고, 브레히트의 <가정기도서(1927)>에서 고른 다섯 개의 시와 마지막에 '대단원'을 추가한 20분짜리 극을 만든다. 이 작품은 성공적으로 공연되고, 이후 바일과 브레히트는 바로 오페라 <마하고니>의 제작에 들어간다.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은 1930년 3월 9일 라이프치히 노이에스 테아터(Neues Theater)에서 초연된다.
그러나 1930년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마하고니>의 초연 도중 나치 돌격대가 극장 안에서 난동을 일으키고, 이후 다른 도시에서의 공연 역시 비슷한 일이 벌어지거나 공연이 취소된다. 또한 <마하고니>의 자본주의 비판과 무정부주의적인 내용 역시 많은 공격을 받는다. 결국 각본에서 비난의 대상이 된 부분을 다소 수정한 버전이 1931년 12월 베를린에서 공연된다.
2.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의 시작은 도시의 형성이다. 경찰에게서 도망치고 있던 사기꾼 베그빅 부인과 모세, 패티는 자동차가 고장 나자 멈춰 선 곳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 그들은 새 도시의 이름을 '마하고니'로 정하고, 이 도시는 그물망 도시라고 말한다. 왜 마하고니는 그물망 도시인가? 바로 그물처럼 먹이를 낚아채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마하고니의 먹이는 주머니 두둑하고 욕망을 품고 있는 남자들이다.
이처럼 마하고니는 스스로 생산하여 돈을 버는 도시가 아니다. 마하고니는 이미 돈 있는 남자들이 찾아와 욕망을 충족하는데 소비함으로써 기능하고, 존재하는 도시이다. 남자들의 가장 대표적인 욕망은 바로 술, 그리고 여자이다. 따라서 마하고니에는 욕망을 채워줄 여자들이 필요하다. 제니와 여섯 명의 여자들이 부르는 유명한 노래 '알라바마 송'이 여기에서 등장한다.
'오, 가까운 위스키 바를 알려줘요.
이유는 묻지 마세요! 이유는요!
우린 가까운 위스키 바를 찾아야 해요
빨리 위스키 바를 못 찾으면
우린 죽을 수밖에 없거든요!
알라바마의 달님이여!
이제 작별할 시간이네요
우린 맘 좋은 엄마를 잃었어요
그래서 위스키를 마셔야 해요. 이유는 아시잖아요.'
- '알라바마 송' 중,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중
무엇보다 마하고니에는 욕망을 충족하는데 돈을 쓸 남자들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극에서는 알래스카에서 7년간 벌목꾼으로 일해 많은 돈을 벌어온 지미, 잭, 빌, 조 네 사람이 등장한다. 마하고니에 도착한 그들은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고른다. 벌목꾼 지미는 제니를 고르지만, 오래지 않아 마하고니에서의 삶에서 채울 수 없는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와중 마하고니에 허리케인이 다가온다. 려움에 떠는 마하고니 사람들 속에서 지미는 역설적으로 행복의 법칙을 발견한다. 바로 '네 맘대로 해'이다. 어차피 허리케인이 모든 걸 다 부숴버릴 바에는 자신이 먼저 부수겠다며, 모든 금지와 법을 파괴하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살자는 것이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난다. 바로 허리케인이 마하고니를 비껴간 것이다. 기뻐하는 마하고니 사람들은 이날 밤 깨닫게 된 새로운 법칙에 따라 살기 시작한다.
첫째, 실컷 먹는 것을 잊지 말자
둘째, 사랑을 나누자
셋째, 권투 구경을 해야 한다
넷째, 실컷 술을 마시자
그리고 명심할 일은
'네 맘대로 하는 것'이다
이 법칙에 따라 마하고니의 사람들은 폭식, 성욕, 권투 구경, 폭음을 즐긴다. 이는 점점 사람들을 파멸로 이끈다. 지미와 함께 알래스카에서 온 잭과 조는 차례차례 폭식과 권투로 죽는다. 그리고 돈이 다 떨어져 술값을 치르지 못한 지미는 결국 법정에 선다. 지구 상에서 존재하는 범죄 중 가장 끔찍한 범죄, 즉 돈이 없는 죄를 저지른 지미는 마하고니의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3. <마하고니>의 음악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은 흔히 떠오르는 <토스카>, <투란도트>, <아이다> 같은 고전 오페라와는 많은 면에서 다르다. 대표적인 차이로는 음악을 들 수 있다. <마하고니>는 클래식 이외에도 재즈를 비롯하여 여러 장르의 곡을 짜깁기 한 것과 같은 구성이다. 특히 청중들에게 익숙한 음악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 오히려 <마하고니>의 음악은 전통 오페라보다 쉽게 즐길 수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마하고니>에서는 아리아가 아닌 송의 사용이 돋보인다. 가장 잘 알려진 송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알라바마 송'이 있다. 데이비드 보위를 비롯하여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알라바마 송'이 바로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 밖에도 '마하고니 송', '버나레스 송', '멘덜리 송' 등 분절적인 송의 사용과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연주해보았을 바다르체프스카의 '소녀의 기도' 역시 중요하게 사용된다.
이렇게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은 기존 오페라 장르에서 통상되던 형식을 여러모로 깨고 있다. 그러나 쿠르트 바일과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 부분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을 갖고 있었다. 바일은 작곡가로서 전통적인 오페라의 형식을 개선하려 하는 입장이었다. 반대로 브레히트는 오페라 장르의 혁신은 무의미하다고 보고 오페라의 파괴를 제안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오페라의 오래된 형식이 아닌, 오페라라는 장르가 기여하는 낡은 사회적 상황 자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4. 국립오페라단의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국립오페라단에서는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공연을 기획하며 크게 두 가지 차별성을 두었다. 첫 번째는 무용의 활용이었고, 두 번째는 극의 시대 배경을 17~18세기 유럽으로 설정한 점이다.
첫 번째로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공연에서 활용한 무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현대적인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극의 거의 대부분 장면에서 등장하여 춤을 추었다. 마치 바일의 음악을 그대로 시각화한 것 같은 유려한 동작들은 음악을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고, <마하고니>를 무용으로는 이렇게 풀어갈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도이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공연이 오페라라는 사실이다.
오페라는 종합예술이다. 단순히 음악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음악과 성악가들의 노래, 연기, 동작, 무대장치들이 서로 어우러져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무용이라는 요소까지 추가했을 때 과연 이것이 다른 요소들과 조화를 이루는가에 대해서 국립오페라단의 제작은 의문점을 갖게 했다.
무용수와 성악가가 함께 나오는 장면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무용수들과 달리 성악가들의 움직임이나 공간 활용은 제한되어 있었다. 따라서 하나의 종합 예술인 오페라를 보는 것이 아닌 한쪽에서는 콘서트 오페라를, 다른 한쪽에서는 현대무용 공연을 동시에 하는 것 같은 단절감이 극의 몰입을 다소 방해했다. 특히 이 의문은 무용수들이 없는 장면들에서 확실히 몰입도가 높아지는 것과 대비되었다. 바일의 음악을 무용으로 시각화하는 시도는 좋았지만, 전체적인 조화를 위해 무용의 비중을 줄이는 것이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두 번째로 국립오페라단에서는 마하고니의 시계를 17~18세기 유럽 절대왕정시기로 돌렸고, 성악가들은 바로크 의상을 입고 나왔다.
공연 시작 전 진행된 해설에서는 국립오페라단이 <마하고니>의 시대 배경을 17~18세기로 설정한 이유는 유럽 열강들이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던 이 시기를 자본주의의 출발점으로 보았기 때문이며, 성악가들이 입고 나오는 바로크 의상은 일종의 기만술, 즉 '역할극 게임', '코스프레'에 불과할 뿐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렇게 시대 배경을 설정하려고 했다면 극 역시 어느 정도 17~18세기에 맞춰 각색되어야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연에서는 브레히트의 각본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바로크식 의상을 입은 성악가들과 달리 무대 장치와 무용수들의 의상은 모두 현대적이었던 점 또한 어울리지 않았다. 성악가들이 입고 나온 바로크 의상은 말 그대로 형식적인 코스프레에 그칠 뿐, 이를 뒷받침하는 시대상이 반영된 내용이나 '역할극 게임'에서 참가자들에게 부여되는 역할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국립오페라단에서 굳이 17~18세기 유럽을 선택해야 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현대 한국 사회에 맞게 각색을 했다면 극의 내용이 더 잘 다가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브레히트는 주인공 이름을 각각 공연되는 나라의 이름으로 바꿀 수 있다고 덧붙이고 있기도 하다.
그 밖에도 한 가지 더 아쉬웠던 점은 도시의 이미지, 특히 도시의 번영 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립오페라단의 <마하고니>에서 도시의 이미지는 오직 모자이크 형식으로 나타나는 영상으로 잠깐 등장한다. 이 영상에서 도시의 형성과 몰락 과정을 어느 정도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함께 진행되는 극의 장면과는 그다지 어우러지지 않았다. 도시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확실하게 보여줄 무대장치나 영상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5. 마하고니가 남긴 것
국립오페라단의 <마하고니>는 연출상 몇몇 아쉬움을 남긴 부분이 있었지만, 분명히 남긴 점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작품의 초연이라는 점 이외에도 공연장에서는 <마하고니>가 관객들에게 미치는 여파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폭식으로 인해 잭이 결국 사망하는 장면에서는 객석에서 웃음이 나왔다. 이 장면은 공연 전 해설에서 드라마트루그가 언급한 것처럼 최근 한국에서 유행하는 먹방과도 연관 지어 볼 만하다. 2019년 한국을 사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고, 이런 삶 속에서 조금이나마 남는 여가 시간에 우리는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자극적인 영상을 찾게 된다. 그중 먹방은 내가 직접 먹지 않더라도 남이 폭식하는 장면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폭식의 끝은 사망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고, 이는 잭의 모습을 통해 극적으로 나타난다. 잭이 사망하고, 접시를 올려두었던 식탁이 관이 되는 장면에서 나왔던 관객의 웃음은 어리석은 욕망에 대한 조소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객석에서는 "첫째, 실컷 먹는 것을 잊지 말자. 둘째, 사랑을 나누자. 셋째, 권투 구경을 해야 한다. 넷째, 실컷 술을 마시자. 그리고 명심할 일은 '네 맘대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반복되자 불만을 드러내는 관객을 볼 수 있었다. 특히 2, 3막으로 갈수록 극의 자본주의 비판이 강해져 누구나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브레히트 역시 <마하고니> 주석에서 극이 선동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했으며, 국립오페라단의 공연에서도 이는 확연히 드러났다.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은 단순히 몰입하고 미식적으로 즐기는 오페라가 아닌 관객을 불쾌하게 만들고, 불쾌한 지점에 대해 토론하게 만드는 오페라이다. 그런 점에서 <마하고니>의 역할이 제대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가장 대범하다고 생각한 장면은 '신의 놀이'가 나오는 부분이다. 지미의 사형 준비가 끝나면 마하고니 신의 놀이가 시작된다. 위스키에 빠진 신이 마하고니에 와서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려고 하는 내용의 노래는 결국 마하고니 자체가 지옥이었으며, 이 도시에 발을 들이는 순간 파멸은 피할 수 없었음을 깨닫게 한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성악가가 주교 옷을 입고 등장하여 직설적인 가사의 효과가 극대화되었다.
다소 무정부주의적이기까지도 한 메시지를 던지며 막을 내리는 <마하고니>를 보며 이 작품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은 그저 즐기기 위한 오페라가 아니며, 선과 악이 구분되거나, 어떠한 직접적인 교훈을 주지도 않는다. 보는 이에게 남는 것은 씁쓸함과 커다란 부조리의 목격이다. 그러나 오페라하우스를 나서는 관객들은 다시 부조리가 가득한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참고 자료
- 베르톨트 브레히트, 김기선 역, <마하고니 시의 번영과 몰락>, 성신여자대학교 출판부, 2003
- 국립오페라단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프로그램북,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