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하는 여자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음악 영화를 찾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모차르트를 시기한 살리에리가 그를 죽게 만들었다는 픽션을 마치 현실처럼 믿게 만든 영화 <아마데우스>부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던 피아니스트가 정신질환에 걸리는 영화 <샤인>, 유럽 대륙과 미국을 가로지르는 배에서 평생을 산 피아니스트 ‘1900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까지. 실제와 가상을 넘나드는 음악가의 삶은 흥미로운 영화 소재이다. 음악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다. 바로 충청북도 제천에서 매년 여름 열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다.
1. 유리 천장은 깨졌을까 - 영화 <더 컨덕터>
음악, 특히 클래식 음악계는 철저한 남성 중심 사회이다. 수백 년을 이어온 클래식 음악의 역사는 작곡가, 지휘자, 연주자를 비롯해 이 시스템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 모두 철저히 여성을 배제해왔다. 20세기에 들어서야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여 21세기에는 교향악단에서 여성 연주자의 비중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고, 여성 솔로이스트 역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명성과 영향력을 가진 음악인은 대다수 남성이다. 사회의 여타 분야와 마찬가지로 클래식 음악계에는 단단하고 오래된 유리 천장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정말 여성 음악가는 없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책 한 권을 소개하고 싶다. 1981년 출간된 아론 코헨의 <세계 여성 작곡가 백과사전>이다. 이 책에는 무려 5천 명이 넘는 여성 작곡가가 소개되어있다. 1987년 나온 2판에서는 그 수가 6천 명에 달한다. 기원전 7세기 고대 그리스의 사포부터 한국의 진은숙까지. 여성 작곡가, 음악가는 분명히 존재했다.
영화 <더 컨덕터>는 음악계 권력의 핵심 축인 지휘자에 도전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주인공은 1938년 여성으로서 뉴욕 필하모닉을 최초로 지휘한 안토니아 브리코이다.
1926년 뉴욕에서 시작하는 영화 속 브리코의 여정은 순탄치 않다. 네덜란드 이민자 출신인 브리코는 입양아로 양부모에게 받은 ‘윌리’를 자신의 이름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는 양부모 몰래 바에서 일해 개인 교습비를 대며 겨우 음악원에 입학하지만, 교수의 성추문으로 정작 피해자인 브리코가 자퇴하게 된다. 이후 그는 베를린에 가 지휘자 칼 무크를 만나 베를린 국립 아카데미에서 지휘 공부를 하게 되고, 1930년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하며 데뷔한다. 이후 브리코는 유럽의 여타 오케스트라와도 성공적인 공연을 치른다.
만약 이 이야기가 남성 지휘자의 이야기였다면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탄탄히 이어가며 역사에 길이 남을 마에스트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뉴욕에서 공연을 준비하던 안토니아 브리코가 자신에게 불만을 보이는 악장에게 털어놓는 말은 여성 지휘자가 맞닥뜨린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 년에 공연 몇 번 있는지 아세요? 한 번이에요.
다른 남자 동료들은 어떨까요?
한 달에 네 다섯 번. 일 년 내내 그렇죠.
이외에도 브리코는 수많은 이들로부터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아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그는 애인 톰슨의 청혼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한다.
지휘자 멩겔베르크씨의 부인은 뛰어난 성악가였어.
그러나 결혼한 뒤로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잖아.
이후 영화는 브리코가 뉴욕에서 여성 연주자들을 모아 여성 교향악단을 만들기까지의 이야기를 숨 가쁘게 그려내고 있다. <더 컨덕터>는 곳곳에 유머와 로맨스가 들어있어 그리 무겁지 않고 대중성을 갖춘 영화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공연 기획자 톰슨과의 로맨스는 영화가 자칫 신데렐라 서사로 나아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갖게 했지만, 결국 브리코는 그의 청혼을 거절한다. 또한 실제 트랜스젠더 남성 연주자인 스콧 터너 스코필드가 맡은 로빈 역은 브리코의 굳건한 지지자로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한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나온 몇 줄의 자막은 “과연 이 유리 천장이 깨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안토니아 브리코는 세계 유명 악단의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지만 상임 지휘자가 된 적은 없다.
<그라모폰지>는 2008년 세계에서 뛰어난 교향악단 20을 뽑지만 그중 여성 상임 지휘자가 있는 교향악단은 없다. 또한 <그라모폰지>는 2018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휘자 50명을 뽑지만 그중 여성은 0퍼센트이다.”
여성 지휘자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었던 20세기 초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안토니아 브리코의 여정은 통쾌하다. 그러나 브리코가 성공하는 과정에서 영향력을 갖고 도움을 준 사람이 대부분 남성이었다는 점은 아쉬움과 동시에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 부분이었다. 브리코의 서사가 그저 한 개인의 성공담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변화로 이어져야 진정한 의미에서 ‘유리 천장이 깨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 나는 다시 큰 물로 가고 싶어 - 영화 <바이올린 연주자>
<더 컨덕터>가 클래식 음악계의 유리 천장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영화라면 영화 <바이올린 연주자>는 상대적으로 그 체감도가 덜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카린은 재능과 지위, 가족까지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성공한 바이올리니스트 카린은 교통사고를 당해 더 이상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못한다. 그는 내키지 않지만 교수로 일하기 시작하고, 제자 안티를 만난다. 카린의 지인들은 그에게 가르치는 일이 맞다고 하지만 카린은 더 큰 물로 나가고 싶어 한다. 바로 지휘다. 카린은 에이전트를 통해 다시 지휘봉을 잡으려고 하지만 일은 순탄치 않다. 이 과정에서 카린과 안티의 관계는 점점 더 깊어진다.
영화 속 핵심이 되는 곡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이다. 시종일관 흘러나오는 이 곡은 카린의 전 애인이자 유명 지휘자 대런이 나타나면서 중요한 계기를 맞게 된다. 그가 지휘할 공연의 독주자가 전염병으로 연주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연주곡이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는 걸 알게 된 카린은 그에게 제자들의 연주를 들어보라고 한다. 연주를 들은 대런은 안티의 애인인 소피아를 선택하려 하지만 카린은 그가 안티를 선택하도록 설득한다.
그러나 연주를 위해 도착한 코펜하겐에서 카린과 안티 두 사람의 욕망은 엇갈린다. 안티는 카린의 사랑과 연주자로서 성공, 정확히는 ‘평범해지지 않기’를 원한다. 반면 카린은 지휘자로서 다시 큰 무대에서 활동하려 하고, 동시에 가족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영화가 끝날 때 이들은 자신의 욕망 중 무언가를 잃게 되고, 무언가를 얻게 된다. 객석에서 안티의 드레스 리허설을 지켜보던 카린이 마치 지휘하는 것처럼 손을 움직이는 마지막 장면은 두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욕망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보여준다.
영화 전반에서 연주되는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귓가를 울린다. 한국 영화관에선 쉽게 접할 수 없던 핀란드어의 투박하면서도 직설적인 어조나 카린이 얼어붙은 호수 위를 걸어오는 롱테이크 씬 역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무엇보다도 영화 <바이올린 연주자>에서는 긴장감을 조성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사고로 바이올린을 다시 연주하지 못하게 된 카린이 같은 운지를 반복적으로 짚는 모습은 지독히도 강박적이다. 오케스트라와 리허설 장면에서 지휘자가 안티에게 음정을 잘못짚었다고 반복해 지적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쌓아 올린 긴장감은 관계의 붕괴라는 위기를 맞게 되지만 이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이 폭력적이지 않고 두 사람이 각자의 방법으로 성장하였음을 보여주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3. 낙천적인 음악가 - <이다 헨델, 삶의 변주곡>
이다 헨델은 1928년 폴란드 출신 영국 바이올리니스트로 현재 미국 마이애미에 산다. 신동으로 이름을 날린 헨델의 개는 모두 ‘데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가 9살이던 때, 그의 연주를 녹음하고 싶었던 레코딩 회사 데카에서 이다의 소원이 강아지를 갖는 것이라는 걸 알고 강아지를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이다 헨델은 지극히도 낙천적이고 사교적이다. 결혼하지 않고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과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이다 헨델은 외로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는 나이, 성별, 직업을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젊은 음악가를 가르칠 때에도 그는 유머를 잃지 않는다. 손녀 뻘 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외동이라고 하자, 이제부터 자기가 언니가 되어주겠다고 하는 장면은 그의 따뜻한 성품을 보여준다.
이다 헨델의 아버지는 화가였다. 폴란드의 작은 마을에 살던 아버지는 열네 살에 고향을 도망쳐 전업 화가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고 모델을 구하는 일조차 어려웠다. 마이애미에 있는 이다 헨델의 집 곳곳에는 아버지가 그린 그림이 있다. 그는 이다 헨델을 지켜준 보호막이기도 하다.
바이올린 재능을 타고 난 이다 헨델은 폴란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세계 무대로 나간다. 런던으로 거주를 옮긴 이다 헨델 가족은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는다. 그러나 폴란드에 남은 그의 친척은 모두 죽는다. 이후 이다 헨델은 세계적인 연주자, 지휘자들과 공연을 하며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된다.
<이다 헨델, 삶의 변주곡>은 2009년부터 2017년 사이에 촬영된 영상을 모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여든이 넘은 이다 헨델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특히 그가 음악에 대해 하는 말들은 그 자체만으로 참고할 만하다. 예를 들어 이다 헨델은 젊은 음악가들에게 연주하기 전 무엇을 생각하냐고 묻는다. 연주자마다 대답이 다르지만 헨델은 바로 ‘템포’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곡이 몇 박자인지 말이다. 음악에서도 2/4, 4/4와 같이 박자가 있는 것처럼 삶의 모든 일에도 템포와 리듬이 있다.
이 영화는 단순히 한 거장의 삶을 반추하는 작품이 아니다. 현재 이다 헨델의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문득 그의 삶을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 막바지가 되어서는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이다 헨델의 언니가 사망한 것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이다 헨델은 자신의 낙천성을 내려놓는다. 그는 더 이상 이전처럼 활발히 사람들과 대화하지 않고 자신의 곁에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생각할 일이 많아 외롭지 않다고 말했던 이다 헨델은 이제 외롭다고 말한다. 헨델이 인용한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배우이며, 영화 초반 이다 헨델의 모습은 그저 낙천성을 연기하던 것이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영화 초반 낙천적이고 사교적인 모습도, 영화가 끝날 무렵 외로워하는 모습도 모두 이다 헨델이다. 한 사람 안에는 여러 면이 존재하며, 이다 헨델의 안에 있던 낙천성은 지독한 슬픔 속에 모습을 감추었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끝까지 낙천적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음악 영화 중 여성 음악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영화는 그다지 많지 않다.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만난 세 영화는 여성 음악가를 주인공으로 하면서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더 컨덕터>는 20세기 초 여성 지휘자 안토니아 브리코를 통해 클래식 음악계 내의 유리 천장을, <바이올린 연주자>는 하나의 욕망이 꺾이고 또 다른 욕망을 꿈꾸는 바이올린 연주자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이다 헨델>은 바이올리니스트 이다 헨델의 모습을 통해 한 인간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측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여성 음악가의 존재는 묻히거나 남성 예술가의 뮤즈 정도로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여성 음악가 역시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으며, 어쩌면 이를 성별에 대한 언급 없이 한 인간의 이야기로 풀어나갈 수 있을 때 진정한 평등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1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여성 음악가를 주인공으로 서로 다른 결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세 작품을 만난 것을 즐거운 일이었다. 이후에도 더 많은 여성 음악가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길 바란다.
제1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일시 : 2019년 8월 8일(목) - 8월 13일(화)
장소 : 충청북도 제천시 일대
공식 홈페이지 : http://www.jimff.org/kor/default.asp
이 글은 2019년 8월 13일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