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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자기 Jul 20. 2019

바비 야르 위에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3번> '바비 야르' (1)

 1961년 9월 19일 소련의 문학지 '문학 신문'에는 <바비 야르>라는 제목의 시가 실립니다. 당시 29살이던 시인 예브게니 옙투셴코가 쓴 이 시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러시아 주간 문학지 <문학 신문> (2005)

 <바비 야르>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바비 야르 위에는 그 어떤 기념비도 없다. 
가파른 협곡은 마치 묘비와도 같다. 
나는 두렵다. 
오늘 나는  
유대 민족만큼 늙었다. 

- 예브게니 옙투셴코, <바비 야르> 중


 그 어떤 기념비도 없이 마치 묘비와도 같은 협곡 바비 야르. 옙투셴코는 왜 이 장소에 관한 시를 썼을까요? 그리고 이 곳은 유대인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 장소일까요?




 바비 야르는 우크라이나 키예프 외곽의 협곡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이 일어난 장소입니다. 사건은 1941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61년 6월 독소전쟁이 발발한 이후 그해 9월 19일, 독일군은 키예프에 주둔하게 됩니다. 그러나 곧이어 키예프 도심의 건물에서 폭발물들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는 소련 비밀경찰 NKVD이 꾸민 일이었지만, 독일군은 이 일에 대한 보복으로 키예프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을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그리하여 9월 28일, 키예프에는 다음과 같은 독일군의 명령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습니다.

"키예프와 인근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들은 9월 29일 월요일 아침 8시에 멜니코바 거리와 독테리브스카야 거리의 모퉁이로 집합하라. 서류와 돈, 귀중품, 그리고 따뜻한 옷가지 등을 지참하라. 이 명령에 따르지 않는 유대인은 발견 즉시 사살될 것이다. 유대인이 살았던 건물에 들어가거나 그 안에 있는 물건을 이용하는 시민 또한 사살될 것이다."
1941년 9월 28일 키예프에 붙은 명령문 (사진 : 위키)


 그리고 9월 29일, 지정된 장소에 모인 유대인들은 작은 그룹으로 나뉘어 모든 소지품들을 두고 차례차례 바비 야르 협곡으로 끌려가 사살당합니다. 1941년 9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간 바비 야르에서 벌어진 학살에서는 무려 33,771명의 유대인이 살해당합니다. 참으로 끔찍하고 엄청난 숫자입니다. 이후에도 1941년부터 1943년까지 바비 야르에서는 대략 7만에서 10만여 명의 유대인,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등이 학살당했다고 전해집니다.


바비 야르 협곡




 그러나 전쟁 후 바비 야르 학살 사건은 소련에서 한동안 공론화되지 못합니다. 스탈린 사망 직전 발생한 '의사들의 음모' 사건을 비롯하여 소련 역시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이는 스탈린의 사망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서 1961년 옙투셴코가 시 <바비 야르>를 발표했을 때 거센 폭풍이 불었습니다. 소련 각지에서 옙투셴코에게 보내는 전보와 편지가 쇄도했고, 사람들은 그에게 꽃을 보내거나, 반대로 공공연하게 그를 비난했습니다. 대조국 전쟁(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소련의 전쟁을 러시아에서 부르는 명칭)에서 러시아인들이 흘린 수많은 피를 잊고 유대인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 유대인의 고통을 러시아인의 고통보다 위에 두었다 등의 내용이었지요. 


 그러던 1962년의 어느 날, 옙투셴코의 집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이 전화는 시 <바비 야르>에게 또 한 번의 전환점이 됩니다.




 옙투셴코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였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옙투셴코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사진 : 위키)
"예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문학 신문'에 실린 당신의 시 <바비 야르>를 읽었습니다. 아주 훌륭한 시더군요. 내가 이 시로 곡을 써도 될까요?"


쇼스타코비치의 말을 들은 옙투셴코는 기뻐하며 바로 수락합니다. 그러자 쇼스타코비치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정말 잘됐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음악은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제가 있는 곳으로 올 수 있나요?"


 쇼스타코비치의 친구 이작 글리크만의 회고에 따르면 쇼스타코비치는 이미 시 <바비 야르>가 처음 발표된 1961년 9월, 바로 곡을 쓸 의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시 <바비 야르>를 베이스 독창, 베이스 합창, 오케스트라로 구성된 교향시의 형태로 작곡합니다. <바비 야르>의 피아노 악보는 1962년 3월 27일, 오케스트라 총보는 4월 21일 완성됩니다.




 그렇다면 <바비 야르>의 내용은 어떨까요?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바비 야르>는 옙투셴코의 시 <바비 야르>를 거의 그대로 사용합니다. 


먼저 <바비 야르>는 베이스 합창의 다음과 같은 가사로 시작합니다.

  바비 야르 위에는 그 어떤 기념비도 없다.
가파른 협곡은 마치 묘비와도 같다.

 

이어서 독창자가 등장해 노래합니다.

나는 두렵다.
오늘 나는 
 유대 민족만큼 늙었다.

    

 독창자는 바비 야르에서 학살당한 유대인 이외에도 드레퓌스 사건, 제정 러시아 시기 폴란드 비아위스토크에서 발생한 유대인 학살 사건, 그리고 안네 프랑크의 일을 언급합니다. 이렇게 주로 희생자의 입장에서 고통을 표현하는 독창자와 달리, 합창은 주로 학살이 벌어지던 끔찍한 상황을 묘사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합창자들은 '유대인을 죽여라, 러시아를 구하라'라는 학살자의 말을 외칩니다. 반면 독창자는 러시아인들에게 그대들은 원래 국제주의자였으며, 반유대주의자들이 러시아 인민을 사칭하고 다닌다고 규탄합니다. 이렇게 독창과 합창의 구도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과 함께 팽팽하게 이어지지요.


안네 프랑크, 1940년 (사진 : 위키)

 

 이어서 등장하는 것은 바로 안네 프랑크입니다. 나치를 피해 숨은 어두운 방 안에서 만질 수 없는 잎사귀와 더 이상 볼 수 없는 하늘을 말하는 장면이 지나면, '바비 야르'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합니다. 바로 이 장면입니다.


'누군가 오고 있어.'

'두려워하지 마. 이건 봄이 오는 소리야. 

 내게로 와. 어서, 너의 입술을 주렴.'

'그들이 문을 부수고 있어!'

'아니야, 이건 얼음이 녹는 소리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3번 '바비 야르' 앨범 커버 - 사용된 그림은 1962년 소련 반전 포스터 '전쟁은 필요 없다'


 음악은 마치 생명을 잔혹하게 짓밟는 것처럼 불길하고 강하게 울려 퍼집니다. '바비 야르'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이 지나면 한층 가라앉은 음악과 함께 장면은 다시 바비 야르로 돌아옵니다. 독창자는 자신이 바비 야르에서 총살당한 노인과 아이 한 사람 한 사람이라며 반유대주의를 강하게 규탄하고 막이 내립니다. 



 만약 이야기가 여기에서 멈추었다면 우리는 아마 교향시 <바비 야르>를 듣게 되었겠지요.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곡은 교향시가 아닌, 교향곡이 됩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바비 야르>를 들은 옙투셴코는 쇼스타코비치에게 자신의 새로운 시집 "A Wave of the Hand"를 선물합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책에서 <유머>, <상점에서>, <출세>라는 세 개의 시를 더 골라 곡을 쓰지요. 또한 그는 옙투셴코에게 <공포>라는 새로운 시를 부탁합니다. 이렇게 <바비 야르>로 출발한 작품은 총 5개의 악장으로 된 교향곡의 형태를 갖춰나갑니다. 곧 이 곡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3번>이 됩니다.




 그렇다면 1악장 '바비 야르' 이외에 <교향곡 13번>에 쓰인 나머지 네 악장은 어떤 내용일까요?


 2악장은 '유머'입니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악장은 '바비 야르'와 크게 대조되는 밝고 쾌활한 춤곡 느낌입니다. '유머'는 차르, 왕, 황제, 세계의 지배자들은 사열을 명령하지만 유머에게는 그럴 없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이솝, 나스레딘과 같은 우화를 남긴 인물들을 언급하고는, 지배자들은 유머를 죽이려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이 악장의 핵심 내용으로 들어갑니다. 지배자들은 다른 죄수들처럼 유머를 감옥에 가두고, 사형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유머라는 것은 죽일 수 있을까요?


 아니요, 유머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살아남습니다. 유머를 죽였다고 잠시 착각한 지배자를 향해 유머는 "나 여기 있어!"하고 손을 흔들고 다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시종일관 밝고 유쾌한 분위기의 '유머'가 저는 너무나도 좋습니다. 비극성이 극대화된 1악장 '바비 야르' 직후 등장하는 풍자적인 2악장 '유머'는 그 구성과 서사에 있어서 마치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모두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서 중요한 요소이지요.



 이어지는 3악장은 '가게에서'입니다. 다시 무거운 분위기로 돌아오는 3악장은 가게 앞에 빵을 구하기 위해 길게 줄 서있는 러시아 여성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소련에서는 배급을 받고,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은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얻을 수 있던 것들은 너무나도 형편없었습니다. 3악장 '가게에서'는 이러한 일상적인 경험을 다루며, 오랜 시간 줄 서 기다린 사람들에게 향해 가격을 속이고, 물건을 속이는 파렴치한 일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빵을 얻기 위해 줄 선 사람들


 4악장은 '공포'에서는 소련 시절 누구도 벗어날 수 없었던, 쇼스타코비치 자신도 지독히 시달린 공포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침묵해야 할 때 소리 지르게 만드는 두려움, 반대로 소리 질러야 할 때 침묵하게 만드는 두려움, 밀고의 두려움, 한밤중 누군가 당신의 집 문을 두드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아내에게 말할 때에도,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할 때조차 미친 듯이 엄습하는 두려움 말이지요. 그림자처럼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이런 두려움은 조용히 사람들을 갉아먹습니다. 음산하게 연주되는 현과 금관, 그리고 조용히 경고하듯 울리는 타악기 소리들은 이러한 공포를 극대화합니다.


한밤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공포를 표현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4번> 앨범 커버

 4악장 '공포'는 "공포는 러시아에서 소멸되고 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3번> 4악장을 들어보면, 그리고 <교향곡 13번>이 쓰인 1962년의 일들을 떠올려보기만 해도 우리는 공포가 아직 러시아에서 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우리에게도 침묵해야 할 때 소리 지르게 만드는, 혹은 소리 질러야 할 때 침묵하게 만드는 공포가 존재하지 않을까요?



 마지막 5악장은 '출세'입니다. 2악장 '유머'와 비슷하게 경쾌하게 시작하는 이 악장에는 한 명의 유명인사가 등장합니다. 바로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입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교황청의 종교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결국 더 이상 지동설을 옹호하지 않겠다고 서약한 갈릴레이. '출세'에서는 갈릴레이와 동시대에 살았던 또 다른 과학자 역시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가족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갈릴레이를 배신한 또 다른 과학자는 자신의 출세를 확신했지만 결국 역사 속에 남은 것은 갈릴레이입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이외에도 '출세'에서는 셰익스피어, 파스퇴르, 뉴턴, 톨스토이의 이름을 대며 진정한 출세란 무엇인지 묻습니다. 이들에게 저주를 퍼붓던 이들은 모두 잊혔지만, 저주를 받았던 이들은 후대에 이름을 남기고 있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나는 출세하지 않는 것으로 출세한다."는 말로 5악장 '출세'는 끝맺습니다.




 이렇게 바비 야르 - 유머 - 가게에서 - 공포 - 출세 다섯 악장을 거치며 비극과 공포, 분노, 그리고 풍자와 유머를 넘나드는 <교향곡 13번>은 짧은 기간 동안 쓰입니다. 먼저 쓰인 '바비 야르'를 제외하고 나머지 네 악장은 모두 쇼스타코비치가 오른손을 치료받기 위해 입원한 병원에서 작곡됩니다. 1962년 6월 말, 입원한 쇼스타코비치는 2악장 '유머'는 7월 5일, 3악장 '상점에서'는 7월 9일, 4악장 '공포'는 7월 16일, 그리고 5악장 '출세'는 7월 20일에 완성합니다. 1962년 7월 20일, 쇼스타코비치는 마침내 <교향곡 13번>을 완성한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초연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병원에서 이미 이 곡의 초연을 준비하기 위한 계획을 차곡차곡 준비합니다. 베이스 독창자와 지휘자를 구하고, 지인들에게 새 곡을 들려줄 계획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습니다. 

초연을 향한 길은 어렵다. '바비 야르'는 특히 더...


 그러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3번>의 초연을 향한 과정은 험난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것은 시 <바비 야르>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반유대주의적인 비판과 함께, 1962년 소련의 예술계를 강타했던 또 다른 사건과도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3번>의 초연 과정은 어땠을까요? 이 이야기는 두 번째 글에서 풀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참고 자료

- Elizabeth Wilson, Shotakovich : A Life Remembered,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6

- Laurel E. Fay, Shostakovich : A Life,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 음악지우사 편, 음악세계 옮김, 쇼스타코비치, 음악세계, 2002

- 알렉산드르 블로끄 외,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 - 러시아 현대대표시선>, 이명현 엮고 옮김, 창비, 2014

- 웹사이트 http://babynyar.or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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