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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자기 Jun 03. 2019

우리에게 필요한 건 커다란 웃음이야!

쇼스타코비치의 <반형식주의자 라요크>에 대하여

쇼스타코비치가 사망하고 십여 년이 흐른 1989년 1월,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던 어떤 곡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곡의 제목은 <반형식주의자 라요크>. 작곡 이후 수십 년간 쇼스타코비치의 친한 지인들만 존재를 알고 있던 이 곡이 마침내 로스트로포비치의 지휘로 초연된 것입니다.

쇼스타코비치 <반형식주의자 라요크> 세계 초연 앨범, 로스트로포비치 지휘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반형식주의자 라요크>. 도대체 어떤 곡일까요?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반형식주의자 라요크>는 '라요크'라는 형식의 성악 풍자 음악입니다. '반형식주의자'라는 단어가 붙은 배경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서 살펴보도록 하고, 우선 '라요크'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라요크'란 일종의 러시아판 요지경 상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라요크

위의 그림처럼 볼거리가 들어있는 구멍이 뚫린 상자 안을 사람들이 들여다보고, 이때 '라요시닉'이라는 인물이 해학적인 운율을 넣은 말장난을 보태는 여흥 거리였지요. 영화도, 애니메이션도 없고, 그렇다고 연극이나 기타 공연들을 보러 쉽게 극장에 찾아갈 수 없었던 서민들에게 좋은 오락이었던 셈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놀이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있었으니 그림을 보시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라요시닉'이라는 인물이 쓰던 운율이 있는 라요크의 언어는 어린 쇼스타코비치를 사로잡았습니다. 이는 다음 편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셰발리시키(셰발린)와 미시키(미샤)는 어때? - 마지막 두 단어에 대해서는 용서해줘. 지금 나는 라요크의 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거든."
- 레프 오보린에게 보내는 편지, 1925년 9월 26일



쇼스타코비치가 라요크에 이끌린 또 다른 이유로는 무소르그스키가 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러시아의 작곡가 무소르그스키가 바로 이 라요크라는 형식으로 곡을 썼기 때문입니다.

1950년 렌필름이 제작한 영화 <무소르그스키> 중 '라요크' 장면

무소르그스키가 쓴 <라요크> 역시 풍자 음악입니다. 이 곡에서 무소르그스키는 자신의 음악을 공격했던 사람들의 특징을 잡아 비꼬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풍자의 대상이 당시 유명했던 이탈리아의 오페라 가수 '아델리나 파티'를 찬미했던 점을 들어 아주 길고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내지요. 


"오 파티, 파티, 오 파-파 파티,

경이로운 파티, 멋진 파티,

오 파티, 파티, 오 파-파 파티,

경이로운 파티, 멋진 파티,

경이롭고, 사랑스러운, 경이롭고, 아름다운,

하-하 하-하 하-하 하-하 하-하

티-티, 티-티, 티-티, 티-티,

파-파 파티, 파-파 티-티!

오-- 오---

파-파-파 파티,

오 신성한 파티!"

-무소르그스키 <라요크> 중


이 부분은 노래로만 들어도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물론 무소르그스키의 <라요크>를 듣던 당시 사람들은 그가 노래를 통해 누구를 공격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고는 크게 웃었겠지요. 


이렇게 '라요크'는 기본적으로 운율을 넣은 풍자적인 오락거리입니다. 그렇다면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라요크에서 무엇을 풍자하고 있었을까요?




쇼스타코비치가 <반형식주의자 라요크>에서 풍자하는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48년 소련 음악계를 뒤흔든 한 가지 사건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1948년 2월 10일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무라델리의 오페라 '위대한 우정'에 대하여>라는 결의문을 발표합니다. 이 결의문에서 당 중앙위원회는 1947년 초연된 무라델리의 오페라 <위대한 우정>을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 러시아 고전 오페라의 전통 무시, 역사적으로 잘못된 대본 등을 이유로 들어 반예술적인 작품으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가 바로 소련 작곡가들 사이에 퍼져있는 형식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하지요.


 오페라, 형식주의, 비판... 이때쯤 하나 떠오르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1936년 1월 28일 <프라우다>에 실린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를 강하게 비난한 기사 '음악 대신 혼돈'이지요.

'음악 대신 혼돈 -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에 대하여', 1936년 1월 28일, 프라우다


1948년 당 중앙위원회의 결의문 역시 12년 전 이 사건을 언급합니다. 이어서 결의문은 본래의 목적을 드러냅니다. 당이 공격하고 싶었던 대상은 그저 무라델리 한 사람만이 아니었거든요.

"특별히 나쁜 것은 형식주의적 반민족적 운동에 집착하는 작곡가들과 관련된 교향곡과 오페라 생산의 상태들이다. 이 운동은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 하차투리안, 셰발린, 포포프, 미야코프스키 같은 작곡가들의 작품에서 그 최악의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 '무라델리의 오페라 <위대한 우정>에 대하여', 1948년 2월 10일, 공산당 중앙위원회


결의문에서 언급된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 하차투리안, 셰발린, 포포프, 미야코프스키 모두 당시 소련 음악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을 형식주의, 반민족적 운동에 집착한다고 비난함으로써 당은 소련 음악계 전체를 대상으로 반형식주의 운동을 결의한 셈이지요.


물론 이러한 반형식주의 운동은 그저 음악계만을 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스탈린은 즈다노프를 문화 이데올로기의 감독으로 임명하며, 문화 전반에 대한 억압 정책이 다시 강화됩니다.

안드레이 즈다노프 (1896-1948)

그 첫 시작은 문학계를 대상으로 한 1946년 8월 14일 '저널 <즈베즈다>와 <레닌그라드>에 관하여'라는 결의문으로, 특별히 작가 조셴코와 아흐마토바를 공격하며 두 사람은 소련 작가동맹에서 축출됩니다. 이어서 당 중앙위원회는 연극, 영화계를 겨냥한 결의문을 차례로 발표하고 1948년 2월 10일에는 그 과녁이 음악계로 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1948년 2월 10일 당 중앙위원회의 결의문에서 형식주의, 반민족적이라고 지목당한 쇼스타코비치는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시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던 쇼스타코비치는 두 음악원 모두에서 해고당합니다. 1948년 <소련 음악>지에는 젊은 음악도들에게 미치는 쇼스타코비치의 영향을 두 음악원을 나온 음악가들이 모두 쇼스타코비치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캐리커처를 내며 비판하기도 하지요.

이 책의 표지로 쓰인 그림이 바로 1948년 <소련 음악>지에 실린 캐리커쳐.


또한 쇼스타코비치의 많은 곡들이 공연 금지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금지곡으로는 교향곡 6번, 8번, 9번, 피아노 협주곡 1번, 현악 8중주를 위한 두 개의 곡, 피아노 소나타 2번 등등이 있으며 오직 소수의 곡들만이 공연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쇼스타코비치가 당에 의해 공개적으로 형식주의자로 비난받은 상황에서 금지곡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더라도 그의 곡을 기꺼이 연주하려는 음악가들은 적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조금 짐작이 되시나요?

쇼스타코비치의 <반형식주의자 라요크>가 담고 있는 배경은 바로 이 상황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반형식주의자 라요크>에서는 쇼스타코비치를 형식주의자라고 비난했던 실제 인물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바로 스탈린과 즈다노프입니다.




<반형식주의자 라요크>는 '음악에서의 리얼리즘과 형식주의'에 관해 토론하는 회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요 등장인물은 총 네 명으로 사회자와 넘버 원, 넘버 투, 넘버 쓰리라는 이름의 인물이 등장하며 이 세 사람은 모두 특정 인물을 풍자합니다. 


자, 이제 사회자가 소개하는 넘버 원부터 단상 위로 올라옵니다. 넘버 원의 말을 들어볼까요?

"동지들! 인민의 작곡가들은 리얼리즘 음악을 쓰는 반면, 반인민 작곡가들은 형식주의 음악을 씁니다. 왜 인민의 작곡가들이 리얼리즘 음악을 쓰고, 반인민 작곡가들이 형식주의 음악을 쓰냐고요? 왜냐하면 동지들, 인민의 작곡가들은 날 때부터 리얼리스트였기 때문에, 리얼리즘 음악을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반인민 작곡가들은 날 때부터 형식주의자였기 때문에, 형식주의 음악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거죠!"
- 쇼스타코비치, <반형식주의자 라요크> 중 '넘버 원'의 가사


어떤가요? 

넘버 원의 가장 큰 특징은 질문-대답 형식의 발언, 그리고 질문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며 답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실제 스탈린의 연설에서 자주 나타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넘버 원은 바로 스탈린을 풍자한 인물입니다. 

넘버 원, 그는 바로 스탈린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넘버 투의 말을 들어봅시다.

"우리는 아름답고, 우아한 음악을 추구해야 합니다. 서정적이고, 미적이고, 조화롭지 않은 음악은.... 그런 음악은... 치과 드릴입니다! 아니면, 아니면... 음악의 가스실입니다!"
- 쇼스타코비치, <반형식주의자 라요크> 중 '넘버 투'의 가사


넘버 투의 가사에서 가장 큰 힌트는 치과 드릴, 음악의 가스실이라는 단어입니다. 기괴하기까지 한 이 단어는 실제로 안드레이 즈다노프가 1948년 음악가들의 회의에서 한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넘버 투가 바로 즈다노프를 풍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넘버 투의 말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동지들, 코카서스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는 진짜 레즈긴카 춤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진짜 레즈긴카 말이죠. 코카서스 오페라의 레즈긴카는 반드시 간단하고, 용감하고, 전통적이고, 유명하고, 코카서스의 것이어야 합니다. 반드시 진짜, 반드시 진짜, 오직, 그래요, 오직 진짜,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진짜여야 합니다."
- 쇼스타코비치, <반형식주의자 라요크> 중 '넘버 투'의 가사


다소 정신없는 이 가사 역시 1948년 소련 음악계를 휩쓴 사건을 직접적으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바로 1948년 2월 10일 당 중앙위원회가 발표한 <무라델리의 오페라 '위대한 우정'에 관하여> 결의문이죠. 위 가사에서 넘버 투가 언급하고 있는 '코카서스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가 바로 무라델리의 오페라 <위대한 우정>입니다. 실제로 오페라 <위대한 우정>이 비난받은 이유 중 하나가 이 오페라에 등장한 코카서스 레즈긴 지방의 전통 춤인 레즈긴카가 원래 있던 레즈긴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 아닌, 무라델리가 작곡한 레즈긴카 스타일의 곡이었기 때문입니다. 코카서스 조지아 출신이었던 스탈린은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레즈긴카, 바실리 베레샤긴의 그림 (1867)



자, 그러면 마지막 넘버 쓰리의 말로 가볼까요.

"동지들, 우리는 반드시 고전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모든 것이 고전적이어야죠. 그래요! 글린카, 차이코프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그들은 음악적이고, 우아합니다. 글린카, 차이콥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그들은 서정적이고, 우아하고, 듣기 좋죠."
- 쇼스타코비치, <반형식주의자 라요크> 중 '넘버 쓰리'의 가사


이렇게 넘버 쓰리는 글린카, 차이코프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라는 당시 사회주의 리얼리즘 음악의 모범으로 꼽히던 작곡가들의 이름을 나열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강세입니다. 넘버 쓰리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이름을 발음할 때, 그는 림스키-코르코프(굵은 글씨 부분에 강세)라고 발음합니다. 그러나 실제 정확한 발음은 림스키-르사코프입니다. 넘버 쓰리는 초보적인 발음 실수를 한 것이죠.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드미트리 셰필로프입니다. 1957년 봄, 모스크바에선 제2차 작곡가 동맹 총회가 열립니다. 당 서기 드미트리 셰필로프는 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로 이 총회에 참여합니다. 마치 1948년 즈다노프가 그랬듯이 말이지요. 물론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의 비밀연설 등 정치적 폭풍을 겪은 이때에 셰필로프의 역할은 즈다노프의 것보다는 한층 누그러지긴 했습니다. 그러나 당의 전반적인 견해는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음악에서는 단 하나이자 최고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방식으로 작곡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셰필로프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가장 위대한 사례인 글린카, 차이코프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이름을 나열합니다.


그러나 이때 셰필로프는 발음의 실수를 합니다. 바로 림스키-르사코프가 아닌 림스키-코르코프라고 말한 것이죠. 이것은 회의장에 있던 쇼스타코비치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는 이렇게 <반형식주의자 라요크>에서 볼 수 있지요.


글린카, 차이코프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그 외에도 쇼스타코비치의 <반형식주의자 라요크>는 수많은 풍자를 담고 있습니다. 가사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음악도 주목해볼 만합니다. 예를 들어 넘버 쓰리의 노래 중에는 유명한 <칼린카>의 가사를 교묘하게 바꿔서 부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원래 가사인 '칼린카, 칼린카, 칼린카' 대신 '글린카, 제르진카, 찌신카' 로 바꾸는 식이죠. 여기에서 사용된 이름 역시 모두 러시아의 작곡가들입니다. (제르진카 - 오페라 <고요한 돈 강>을 쓴 이반 제르진스키, 찌신카 - 작곡가 찌혼 흐렌니코프)


또한 넘버 쓰리의 마지막 장면은 그 독기에 숨이 멎을 정도입니다.

"누구든지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다면, 아주 오랫동안 가둬버릴 거야! 노동 수용소로! 그리고 아주 혹독하게 다룰 거야! 가둬버려! 가둬!"
- 쇼스타코비치, <반형식주의자 라요크> 중 '넘버 쓰리'의 가사
 <반형식주의자 라요크> 중 '넘버 쓰리' 장면, 1993




쇼스타코비치는 <반형식주의자 라요크>의 악보에 다른 곡처럼 작곡한 날짜를 적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곡이 정확히 쓰인 시기를 놓고는 1948년, 1950년대, 1960년대까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저 곡에 담긴 내용을 보아 제2차 소련 작곡가 동맹 총회가 열린 1957년에 일정 부분이 쓰인 것만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쇼스타코비치가 이 곡을 통해서 그를 형식주의자라고 비판했던 사람들을 날카롭게 풍자했다는 것입니다. 곡의 가사를 읽어 나가다 보면 그 날카로움에 마치 쇼스타코비치가 독을 품었다는 느낌이 들기까지 합니다. '음악에서의 리얼리즘과 형식주의'에 대한 회의를 배경으로 한 것부터 제목 <반형식주의자 라요크>까지 곡의 모든 것이 풍자를 위해 존재합니다. 


쇼스타코비치의 날카로운 유머에 우리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지만 그래도 이 곡을 웃음을 위한 곡입니다!

누구의 말처럼 웃음은 신이 내린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반형식주의자 라요크>를 들으며 한 번 크게 웃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넘버 원, 넘버 투, 넘버 쓰리의 바보 같은 행동에 하하하! 크게 웃어주는 겁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커다란 웃음이니까요!


<반형식주의자 라요크>의 넘버 원(스탈린), 넘버 투(즈다노프), 넘버 쓰리(셰필로프)



참고 자료

- Gregory Grabowski, "Anti-Formalist Rayok - Shostakovich, Socialist Realism, and satire", DSCH Journal Nr.50 (2019.01)

- 솔로몬 볼코프 엮음, 김병화 옮김, <증언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고록>, 온다프레스, 2019

- Elizabeth Wilson, Shotakovich - A Life Remembered,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6

-문성호, "소련의 음악정책과 사회주의 리얼리즘",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예술전문사 석사학위논문(2001)

- 다큐멘터리 영화 <Шостакович смеётся>, А.БАТРАКОВА, 1993

- 영화 <Мусоргский>, Григорий Рошаль,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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