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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자기 Apr 26. 2019

이 게임은 매우 안 좋게 끝날 것이다. (1)

쇼스타코비치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에 대하여

 1932년 12월, 26살의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두 번째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를 완성합니다.


 쇼스타코비치는  <레이디 맥베스>를 같은 해 결혼한 아내 니나 바자르에게 헌정하고, 이 작품은 1934년 1월 22일 레닌그라드 말리 극장에서, 곧이어 모스크바의 네미로비치-단첸코 극장에서는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라는 이름으로 공연되며 두 도시 모두 큰 성공을 거둡니다.

(왼쪽부터) 쇼스타코비치, 니나 바자르, 이반 솔레르틴스키, 1932년


 오페라 <레이디 멕베스>는 초연된 첫 해만 해도 말리극장에서는 50번의 공연을, 더 나아가 미국, 아르헨티나, 영국, 스웨덴,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공연되며 국내와 해외 모두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이렇게 오페라가 초연된 1934년 당시 28살, 채 서른이 되지 않은 쇼스타코비치는 소련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가로 그 실력과 명성을 모두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은 바로 2년 뒤인 1936년 1월 28일 일간지  <프라우다>에 실린 한 익명의 기사로 인해 송두리째 바뀌게 됩니다.  기사의 제목은 '음악 대신 혼돈'.  2년 전 초연되고 큰 성공을 거둔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레이디 맥베스>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1936년 1월 28일 프라우다 '음악 대신 혼돈 -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에 관하여'


 이 기사는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멕베스>를 당시 소련 예술의 공격 대상이었던 형식주의 등의 이유를 들어 맹렬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중 일부는 이렇습니다.


 여기에는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음악 대신 '좌파주의자'의 혼돈만이 있다. 대중을 감화시키는 좋은 음악의 힘을 싸구려 광대 짓을 통한 독창성을 창조하려는 쁘띠 부르주아, '형식주의자'의 시도에 의해 희생되었다. 이 게임은 매우 안 좋게 끝날 것이다.
- 1936년 1월 28일, 프라우다 '음악 대신 혼돈' 중


 기사는 익명이었지만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프라우다>에 실린 이상 이것은 당의 입장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이 기사가 나온 이후 오페라 <레이디 맥베스>는 1963년 1월 다시 공연될 때까지 거의 30년 가까이 소련에서 공연되지 않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두 차례에 나누어 갖은 우여곡절을 겪은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과연 이 오페라는 어떤 작품이었길래, 성공하고 비난받고,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까요?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레이디 맥베스>는 러시아의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소설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제목 중 '므첸스크'는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지역의 이름을 가리킵니다. 또한 '레이디 맥베스'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 '맥베스'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소설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


 처음 이 소설을 쇼스타코비치에게 제안한 사람은 작곡가 보리스 아사피에프라고 합니다. 곧이어 쇼스타코비치는 이 소설에 강하게 이끌리게 됩니다. 그는 1930년 말부터 오페라를 작곡하기 시작하며, 리브레토(오페라의 각본)는 쇼스타코비치와 작가 Alexander Preis가 작업합니다.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멕베스>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오페라 <레이디 맥베스> 줄거리는 레스코프의 소설과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주인공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는 이 지역의 부유한 상인 지노비와 결혼해 남편, 그리고 시아버지 보리스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 후 몇 년째 아이를 갖지 못하고 지노비의 아내로 사는 삶도 답답하고 지루하기만 하지요. 시아버지 보리스는 그런 카테리나에게 남편에게 복종해라,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 등등의 재촉을 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 지노비는 댐을 수리해야 한다는 이유로 집을 떠나게 됩니다. 시아버지 보리스는 카테리나에게 남편이 떠난 사이에도 남편에게 순종하겠다고 성상 앞에서 맹세하라고 합니다. 카테리나는 보리스가 시키는 대로 성상 앞에 무릎을 꿇고 맹세하죠.


 지노비가 떠나고 난 뒤, 집에서는 소동이 벌어집니다. 여성편력으로 전 일터에서 잘리고 이즈마일로프 집안의 일꾼으로 새로 들어온 세르게이가 다른 남자들과 함께 여자 하인 악시냐를 강간하려 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게 된 카테리나는 이를 막습니다.


 그리고 카테리나는 여자는 오직 놀리기 위해 존재한다는 세르게이의 말에 여자는 강하고 용감하며, 지혜롭다고 당당하게 반박하지요. 그런 카테리나를 흥미롭게 보던 세르게이는 갑자기 레슬링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영화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 1966년작


 카테리나는 당당히 세르게이의 제안에 응하고 두 사람은 레슬링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영화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 1966년작

 레슬링을 시작하고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릅니다. 이때 카테리나의 시아버지 보리스가 등장합니다. 카테리나는 그저 지나가는 길에 넘어져서 세르게이가 도와준 것이라고 하지만 보리스는 믿지 않지요. 그는 카테리나에게 아들 지노비가 돌아오면 모든 것을 말할 거라 합니다.


 그러나 한 번 시작된 감정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날 밤 자신의 외로움을 털어놓는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의 아리아가 끝나고, 세르게이는 카테리나의 방문을 두드립니다. 카테리나는 망설이지만 결국 세르게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오페라 <레이디 맥베스>의 1막은 이렇게 침대 위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장면으로 끝납니다.


 이 장면의 음악은 두 사람의 감정만큼이나 날카롭고 격정적으로 듣는 이의 귀에 파고듭니다. 극장의 연출 방식마다 차이가 있지만 여기서 사용되는 '침대'는 극에서 중요한 역할로 무대의 정중앙에 자리하기도 합니다. 한편 앞에서 소개해드린 프라우다의 1936년 1월 28일 '음악 대신 혼돈' 기사에서는 바로 이 장면을 아래와 같이 비난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천박하고, 원시적이고, 저속하다. 음악은 사랑의 장면을 가능한 자연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깩깩거리고, 툴툴거리고, 으르렁거린다. 그리고 '사랑'은 오페라 전체에 걸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천박한 방법으로 더럽혀지고 있다. 
- 1936년 1월 28일, 프라우다 '음악 대신 혼돈' 중




 그렇다면 이렇게 시작된 카테리나와 세르게이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요?


 카테리나와 세르게이의 관계를 알게 된 시아버지 보리스는 세르게이를 채찍으로 때립니다. 방에 갇힌 카테리나는 고통스러워하고, 보리스는 세르게이를 채찍으로 때리며 카테리나의 이름을 부르지요. 이 장면 역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과 어우러져 보리스의 잔인한 면모가 더욱 부각됩니다.


 이어서 보리스는 뻔뻔스럽게 덕분에 배가 고프다며 카테리나에게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카테리나는 결국 보리스에게 주는 버섯에 독을 넣습니다.

 독을 넣은 버섯을 먹은 보리스는 속이 탄다며 물을 가져다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카테리나는 끝끝내 보리스에게 물을 주지 않고, 결국 보리스는 죽음을 예감하고 신부를 불러달라고 합니다. 카테리나는 그가 왜 죽었느냐고 묻는 신부에게 태연히 '밤에 버섯을 먹고 죽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듯이 말이다.'라고 말하지요. 


 사랑을 향한 카테리나의 행보는 계속 이어집니다. 남편 지노비가 집에 돌아와 자초지종을 따지자 카테리나는 세르게이와 함께 지노비를 죽이고 시체를 숨깁니다. 드디어 두 사람 사이를 막는 것은 없어 보입니다. 지노비의 시체를 숨긴 직후 그녀는 세르게이에게 "키스를 해줘." "너는 이제 나의 남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카테리나와 세르게이는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영화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 1966년


  그러나 결혼식장에서 카테리나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합니다. 바로 지노비의 시체를 숨겨둔 곳의 문이 열려있는 것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가 시체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고 결국 카테리나와 세르게이는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게 됩니다.


영화 <카테리아 이즈마일로바>, 1966년

 시베리아를 향한 고단한 길. 1 베르스타, 1 베르스타 사슬을 끌고 시체가 누워있는 길을 걷는 장면을 묘사한 음악 역시 인상 깊습니다. 그러나 유형을 떠나는 과정에서도 세르게이를 향한 카테리아의 사랑은 계속됩니다. 그렇다면 세르게이는 어떨까요?  


 함께 유형을 떠난 세르게이의 눈에는 다른 여자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애인을 위해 카테리나를 속여 그녀의 옷가지를 가져가기도 하지요. 이렇게 카테리나의 이야기는 더욱 더 큰 비극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갑니다.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의 마지막 가사는 이렇습니다.


오, 왜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도 우울하고, 끔찍하고, 절망적인 것인가?
우리는 정말로 그런 인생을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인가?


 정말로 그렇습니다.

 답답하고 지루한 결혼 생활 속에서 그토록 바라던 사랑을 접한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에게 돌아온 것은 살인,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의 배신입니다. 이렇게  점점 더 쌓여가는 비극은 쉽게 잊히지 않는 마지막 장면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꼭 오페라나 영화를 통해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우울하고 끔찍하고, 절망적인 삶이죠.




 쇼스타코비치는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 속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라는 인물에 각별한 애정을 두었습니다. 쇼스타코비치가 표현한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는 단순한 살인자가 아닙니다. 이 오페라를 보고 있으면 관객들은 카테리나에게 자신도 모르게 공감하게 됩니다. 왜? 그녀는 살인자인데, 왜 그녀를 비난할 수만은 없을까요?


 주인공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의 행동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이 쓰인 시대 속 여성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1865년에 나온 원작 소설의 작가 레스코프는 형사재판소의 서기로 일하며 여러 가지 사건들을 접하고, 이후에는 러시아의 여러 지역들을 돌아다니며 러시아 민중들의 삶을 직접 경험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레이디 맥베스>에 묘사된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의 삶 역시 레스코프가 직접 보고 접한 민중들, 특히 19세기 중후반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자유와 감정이 억압된 삶을 살던 여성들의 삶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지요.


 그렇다면 쇼스타코비치가 이 작품을 쓰던 1930년대는 어땠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레스코프가 살았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아래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탈린 시대는 여성들에게 특히 '모성'을 요구했다. 어머니는 조국을 의미한다. (중략) 또한 어머니는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이 본성을 조국을 위한 희생으로 치환하여 여성의 존재방식으로 구체화시켰다. 즉 여성들에게 대외적으로는 노동과 사회참여를 통해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안으로는 가정을 지키고 육아를 책임져야 하는 만능인이 될 것을 요구한다.
-최선, "스탈린 문화 속의 여성 - 노래시 장르를 중심으로" <러시아어문학연구논집>, 17(2004) 중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볼 때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레이디 맥베스>에서 묘사된 카테리나의 행동은 그저 개인의 욕망과 잔인성만이 불러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여성의 자유와 감정을 억누른 가부장적인 사회상과 개인의 감정이 갈등하여 터져 나온 결과라고 볼 수 있지요.


 이것은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 속 남성 캐릭터들의 묘사를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시아버지 보리스는 카테리나에게 남편에게 순종할 것을 강조하는 한편, 자신의 젊은 시절 여성편력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카테리나에게 눈독을 들이기까지 합니다. 세르게이를 매질하고난 직후 배가 고프다며 카테리나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달라고 하는 보리스의 모습은 역겹기까지 합니다.


 남편 지노비는 카테리나는 사랑하지 않으며 오직 자신에게 순종할 것을 바랍니다. 카테리나가 사랑한 세르게이 역시 결국 그녀를 배신하고 시베리아 유형길에서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 외에 극 중에 묘사되는 신부, 경찰들, 악시냐를 강간하려는 남성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의 주변에는 제대로 된 남성들이 없으며, 이러한 모습은 레스코프가 살았던 19세기 중반과 쇼스타코비치가 이 오페라를 썼던 1930년대뿐만 아니라 21세기인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의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에 대한 표현은 천박한 욕정, 살인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게 됩니다. 바로 아래와 같이 말이죠.

 일부 비평가들은 상인의 욕정을 미화한 것이 풍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풍자적인 것이 아니다. 작곡가는 음악적, 극적 방법을 총동원해서 그의 청중들을 상인 여성,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의 천박하고 저속한 기호와 행동에 공감하도록 시도했다.
- 1936년 1월 28일, 프라우다 '음악 대신 혼돈' 중

 



 그렇다면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가 1936년 1월 28일 일간지 <프라우다>에서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게 된 전후 상황은 과연 구체적으로 어떠했을까요? 과연 2년 동안 소련 최고의 오페라로 명성을 누리던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는 어떻게 해서 공개적인 공격을 받고 무대 위에서 사라지게 되었을까요? <프라우다>의 공개적인 비판을 받은 쇼스타코비치는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페라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 모스크바 네미로비치-단첸코 극장 북클렛, 1934


 다음 글에서는 1936년 1월 28일 <프라우다>의 '음악 대신 혼돈' 기사가 나오게 된 앞 뒤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 문헌

- 우혜언,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군의 맥베스 부인에 대한 음악사회학적 고찰", <서양음악학>, 17-1(2014)

- 문성호, "소련의 음악정책과 사회주의 리얼리즘",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예술전문사 석사학위논문(2001)

- 최선, "스탈린 문화 속 여성 - 노래시 장르를 중심으로", <러시아어문학연구논집>, 17(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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