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자기 Feb 10. 2021

루틴이 중요해

슬럼프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매년 이맘때는 내 생업 최대 비수기다. 물론 일거리가 없으면 언제나 비수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유독 이 시기는 일거리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아예 마음을 비우고 미리 다가올 비수기를 준비하는 편이 좋다. 그래서 마치 겨울잠 준비하는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 돈 버는 동안 미리 차곡차곡 이 시기를 버틸 생활비를 모아놓는다.


비수기에는 일이 없다. 고로 좋게 말하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독이 되어 슬럼프로 빠지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작년 9월에 나는 잠깐 슬럼프를 겪었는데, 이 시기에도 안정적인 일거리를 구하지 못한 상태였고 그나마 구한 일거리도 사전 미팅부터 뭔가 싸하더니 결국 사후 입금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다행히 10월부터는 3개월짜리 일거리를 찾아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이 끝난 올해 1월부터 여느 때처럼 비수기가 시작되었다. '음... 이맘때면 슬럼프가 찾아오겠지' 하며 마음의 준비도 같이 하고 있었는데, 1달이 지난 지금까지 하루 이틀 고비가 있던 날을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왜 그렇지? 이유를 생각해보니 지난 1달 동안 생업은 잠시 쉬고 있었지만 매일 아침부터 잠잘 때까지 할 거리가 빡빡히 짜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즉, 루틴대로 살고 있었다.


사실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루틴대로 사는 삶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매일매일 정해진 일과대로 사는 것이 답답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리랜서로 마치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왔다갔다 그때그때 받은 일을 하고, 이 일 끝나면 저 일 하러 떠나는 생활을 하다 보니 루틴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불안정한 삶은 몸도 마음도 생활습관도 무너지기 쉬운데 이를 지탱해주는 것이 바로 루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기마다 다르지만 하루 중 짧은 시간이라도 루틴을 만들어 지키려고 했다. 예를 들어 '일 끝나고 집에 오면 씻고 잠깐 잤다가 일어나서 저녁을 먹고 작업을 한다.'는 식이다. 이 루틴은 생업과 작업을 잠을 통해 구분하고 조금이라도 피로를 회복하고 작업에 들어가기 위해서 만들었다. 하지만 생업에 한창 종사하는 와중에는 하루 중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루틴을 만들더라도 지키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일 끝나고 집에 오면 너무 피곤했다.


그러나 비수기는 다르다. 하루 중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시간량이 절대적으로 많아지기 때문에 매일매일 루틴을 정하고 실천하기 딱 좋다. 그래서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대략 다음과 같은 루틴으로 살았다.


1. 기상

2. 아침밥 먹으며 SNS 확인하기

3. 러시아어 공부

4. 만화 작업

5. 점심 식사

6. 밖에 나갈 일처리, 산책, 가사, 기타 등등

7. 저녁 식사

8. 독서(하루 1권 읽기 챌린지)

9. 10분 스트레칭

10. 영상 콘텐츠 시청

11. 취침


머릿속으로만 정해서 실천하던 것을 번호를 매기며 써보니 생각보다 가짓수가 많다. 그래서 하루가 훌쩍 갔구나.... 그럼 이제 이중 중요한 루틴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2. 아침밥 먹으며 SNS 확인하기

넷플릭스에서 <소셜 딜레마>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이후 SNS 사용 시간을 의식적으로 줄이고 있다. 스크린 타임을 설정해서 하루에 총 40분 이하로 쓰려고 노력하고, 그 대부분의 시간을 바로 이때 사용한다. 아침을 먹으며 지난밤에 지나간 타임라인을 훑어본다.


3. 러시아어 공부

덕질을 위해 하는 공부. 이제 시작한 지 딱 2년이 되었는데, 실력은 잘 모르겠고 철저히 독해 위주로 공부하고 있어서 과연 실생활에서 유용한지도 의문이다. 그런데 사실 러시아어를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쓰려고 공부하는 건 아니잖아?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인데 내 마음대로 할 거다. 

"이거 해서 뭐해?"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생기면 그냥 뿌리째 뽑아버려... (feat. 체홉 <갈매기> 속 마샤의 대사)


4. 만화 작업

고지가 눈앞이다. 이것만 하면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만화는 시작한 지 2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올해 완성이 목표다. 

사실 매일 작업량이 많진 않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그림을 조금만 많이 그리면 바로 손목이 아파서이고, 두 번째로 이 만화의 내용 특성상 하루에 많은 양을 훌훌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만화는 완성하고 나면 작업 과정을 글로 써서 공개할 예정인데 그때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기로.


8. 독서(하루 1권 읽기 챌린지)

이번 겨울 목표는 특정 분야의 책 30권 읽기였다. 이 분야는 러시아 어쩌고는 아니다. 작년에는 온통 러시아 어쩌고 책만 잔뜩 읽었는데, 올 1월에 모종의 사유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보기로 결심했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이 분야 초보자는 관련 도서를 30권 읽어보라는 조언이 있었고, 또 이 분야 책은 정독하지 말고 앉은자리에서 다 읽겠다는 생각으로 술술 읽으라는 조언이 있어서 그럼 이번 겨울에 매일 1권씩 총 30권을 읽겠어!라고 결심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기준으로 현재 25권을 읽었다. 지금 약간 한계치에 도달한 느낌이 있는데 조금만 더 힘내서 30권을 다 읽고 후기를 쓸 계획이다.




이렇게 아침에 눈 뜬 뒤 2~8까지 루틴들을 처리하고 나면 거의 밤 11시가 된다. 그러면 간단히 스트레칭 후 열심히 하루를 보낸 나에게 보상으로 영상 콘텐츠를 몇 개 보다가 잠들면 끝이다. 


매일매일 계획한 루틴대로 사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아침밥 먹고 책상에 앉기 전 벌써 답답~한 마음이 한편에 자리 잡는다. 하지만 하나씩 처리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 먹고, 다시 책 읽기 전에 또 한 번의 고비가 찾아오지만 또 술~술~ 읽다 보면 어느새 잠잘 때가 된다.


이렇게 산 지 거의 1달이 다 되어간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건 아니고 슬슬 다시 생업에 종사하러 가야 하지만 비수기에는 무엇보다 루틴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지난 한 달 동안 절실히 깨달았다. 루틴을 정해놓으면 생각보다 일단 행동하게 되기 때문에 비수기면 어김없이 기분이 가라앉고 초조해지던 일이 확실히 덜해졌다. 하루에 해야 할 일들이 이만큼인데! 매일매일 팽이 치듯 루틴을 돌리면 사실 상념에 잡힐 시간도 부족하다. 뭔가 멜랑꼴리한 감정이 문득 고개를 쳐든다? -> 오늘 이 책 다 읽어야 돼...


 또한 이 루틴은 다른 누가 정해서 하는 것이 아닌, 내가 내 필요와 상황에 맞추어 가장 적절하게 정한 것이다. 러시아어 공부도, 만화 작업도, 독서도 당위성이 나 자신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매일매일 시작하기 전에 '이걸 언제 다하지?'하고 좀 막막하긴 하지만 그래도 큰 스트레스받지 않고 하게 된다.


그래서 또 어김없이 찾아올 비수기를 대비해 생활비와 함께 스스로 깨달은 루틴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글을 남긴다. 미래의 나야, 루틴은 중요하다. 언제 어디서나 네가 스스로 정한 루틴을 만들어서 돌려~



도자기

2021.02.08.

매거진의 이전글 걷고 또 걷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