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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자기 May 27. 2019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본 쇼스타코비치

솔로몬 볼코프의 <증언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고록>에 대하여

사람은 자기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없다.

자신의 얼굴을 보기 위에서는 거울, 잔잔한 수면, 유리 등에 얼굴을 비추어 보아야 한다.

물론 카메라를 활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카메라 렌즈를 통과해 맺힌 상을 보는 것이다. 즉,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보는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기억은 어떨까?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 속에 묻히고 잊힌 자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데에는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솔로몬 볼코프의 <증언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고록>에서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방법으로 타인이라는 거울을 이용하고 있다. 그에게 자신의 과거를 직접 회상하는 일은 너무나도 슬프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시체, 시체뿐이다. 쇼스타코비치는 말한다. 기억하는 것 자체가 싫었다고.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것은 한 권의 책이다. 책의 제목은 이렇다.

<증언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고록>


<증언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고록>, 솔로몬 볼코프 엮음, 김병화 옮김, 온다프레스, 2019




기억하는 것 자체가 싫었던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은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일까?


이 책을 엮은 솔로몬 볼코프가 선택한 방식은 쇼스타코비치가 자기 자신에 대해 회상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 회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쇼스타코비치도 조금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볼코프의 생각이었다.


 쇼스타코비치 역시 이렇게 말한다.

"아무튼 나는 이 지면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니까. 내 음악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물론 아니다." - <증언> 279쪽


타인이라는 거울을 쥔 쇼스타코비치는 수많은 인물들에 대해 말한다. 화가 쿠스토디예프부터 작곡가 글라주노프, 림스키 코르사코프, 무소르그스키, 연출가 메이예르홀트, 시인 마야콥스키, 작가 조셴코, 체호프, 투하쳅스키, 스탈린까지... 수많은 이들이 쇼스타코비치의 거울 속에 등장했다 사라진다.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에 등장하는 사람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쿠스토디예프, 메이예르홀트, 마야콥스키, 투하쳅스키, 안톤 체호프, 림스키-코르사코프, 무소르그스키, 글라주노프)


그러나 거울 속에 비친 이는 타인들만이 아니다. 거울을 손에 쥐고 들여다본다면 결국 자기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결국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회고록이 된다.




그렇다면 쇼스타코비치의 거울 속에 비친 사람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첫 번째로 주목할만한 사람은 바로 글라주노프이다. 

일리야 레핀이 그린 글라주노프의 초상화

글라주노프는 쇼스타코비치가 페트로그라드 음악원 (현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다닐 당시 음악원의 원장이자  뛰어난 기량을 가진 작곡가였다.


음악을 생각하는데 자신의 모든 시간을 바치는 글라주노프의 지식은 놀랄만한 것이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음악도 열 번은 들어서 이해하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음악을 들어달라는 수많은 청들을 거절하지 않았다. 또한 글라주노프는 당시 경제적 형편이 어렵던 쇼스타코비치를 위해 정부에 여러 번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음악가로서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딘 어린 쇼스타코비치에게 글라주노프는 어떤 음악가가 되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존재였을 것이다.


림스키-코르사코프, 무소르그스키 등의 실제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글라주노프는 19세기 러시아 음악과의 마지막 고리라고 할 수 있었다. 쇼스타코비치는 림스키 코르사코프 학파의 정신을 직접적으로 계승하진 않았지만, 과거 러시아 음악과의 연대가 그에게 중요한 요소였음은 틀림없다. 러시아 음악의 특징, 서방 세계의 음악과는 다른 러시아 음악만의 무언가는 이 책에서 중요하게 언급된다. 이것은 무소르그스키라는 또 다른 거울로 이어진다.


일리야 레핀이 그린 무소르그스키의 초상화

쇼스타코비치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무소르그스키와 자신을 비교하길 좋아했다. <증언>에서 그는 무소르그스키와 자신의 닮은 점을 즐겁게 나열한다. 쇼스타코비치는 <보리스 고두노프>, <죽음의 노래와 춤> 등 무소르그스키의 곡들을 오케스트레이션 했고, 무소르그스키의 작품이 영향을 준 곡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자신과 무소르그스키의 유사성을 탐구할 미래의 음악학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땀 좀 흘리라고 하지.'


림스키 코르사코프와 함께 러시아 5인조 중 한 명이었던 무소르그스키의 별명은 '백치'였다. 사람들은 그를 유로지비 작곡가로도 부른다. 유로지비란 '바보 성자', 즉 진실을 말하면서도 바보 행세를 하는 사람을 일컫는 러시아의 특별한 개념이다. 쇼스타코비치를 두고도 그가 유로지비인지에 관한 논란이 있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는 무소르그스키야말로 진정한 유로지비 작곡가라고 말한다. 


유로지비가 등장하는 무소르그스키의 작품이 있다.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이다. 차르의 아들 드미트리를 죽이고 새로운 차르가 된 보리스 고두노프가 결국 민중의 마음을 잃고 파멸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지배자와 억압받는 민중의 갈등이라는 <보리스 고두노프>의 플롯에서 무소르그스키가 초점을 둔 곳은 민중이다. 쇼스타코비치는 그의 관점에 동의한다. 이것은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민 사이의 불신은 시간을 거듭하여 쇼스타코비치가 사는 소련으로까지 이어진다. 그것은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숙청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소련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숙청되었다. 그중 한 사람은 바로 연출가 메이예르홀트이다.

연출가 프세볼로트 메이예르홀트

메이예르홀트는 매우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 <세묜 코트코> 공연을 준비하고 있던 1939년의 어느 날 사라졌고, 사람들은 더 이상 메이예르홀트라는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다. 


쇼스타코비치에게 메이예르홀트의 삶은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유명 연출가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나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아무도 당신을 찾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당신을 도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쇼스타코비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쇼스타코비치는 체포되지 않았지만 그가 형식주의자라고 공격받을 때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무섭다는 것은 신문을 펴 들다가 당신더러 인민의 적이라고 규탄하는 글을 읽게 될 때 느끼는 기분이다. 명예를 회복할 방법은 하나도 없고 아무도 당신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며 옹호해줄 사람도 아무도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든 사람이 바로 그 신문을 펴 들고 있으며 모두 당신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당신이 무슨 말이든 하려고 하면 모두들 몸을 돌린다. 당신 말이 들리지 않는다. 자, 정말 무서운 것은 이런 것이다."
 - <증언>, 567쪽


위의 말은 1936년 1월 28일 일간지 <프라우다>에 실린 '음악 대신 혼돈'(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를 비난하는 기사)을 읽던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 것 같다.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이 사망하고 난 뒤에야 메이예르홀트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게 된다. 그는 메이예르홀트의 복권을 위해 노력하고, 메이예르홀트는 복권된다. 그러나 이미 죽은 이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일까?




이처럼 쇼스타코비치와 주변 인물들의 인생은 비극적이었다. 그러나 인생에는 비극만 존재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는 쇼스타코비치에게 아주 중요한 작품이다. 초연 후 2년 만인 1936년, 일간지 <프라우다>에 이 작품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기사가 실린 유명한 사건은 뒤로하고, <레이디 맥베스>가 어떤 작품이었는지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이 작품은 쇼스타코비치 음악의 중요한 두 가지 특징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오페라가 비극적 풍자 오페라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가 처한 러시아의 답답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 있는 풍자 오페라이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고, 남편에 순종할 것을 강요하는 늙은 시아버지는 한편에서는 며느리를 탐내며 자신이 조금이라도 젊었으면 수작을 걸었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신부는 술을 탐하고, 경찰들은 부패하고, 남자들은 여자를 강간하려 한다.  

동시에 이것은 한 여성이 파멸해가는 모습을 담고 있는 비극적 오페라이다. 사랑에 눈을 뜨고, 사랑을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는 결국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난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하는 세르게이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카테리나의 인생은 점점 더 큰 비극으로 향한다.



어떻게 비극과 풍자가 공존할 수 있는지 묻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작가 조셴코의 이야기를 보라.

작가 미하일 조셴코

풍자 소설을 쓴 조셴코의 삶이 실제로는 우울증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쇼스타코비치의 회고처럼, 작품이 커다란 웃음을 만든다고 해서 작가의 인생 역시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광대를 보고 웃지만, 정작 광대의 얼굴에는 눈물이 그려져 있는 것처럼 누군가의 웃음이 되려면 자신의 울고 있어야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웃음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삶은 지독히도 슬플 것이다. 




이처럼 <증언>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지나간다. 

쇼스타코비치는 이것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지만 독자는 알 수 있다. 이것은 쇼스타코비치가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추어본 자신의 회고록이며, 지독히도 슬픈 인생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솔로몬 볼코프의 <증언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고록>이 세상에 처음 공개된 지 어느새 40년이 되었다.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증언>이라는 책이 갖고 있는 힘은 아직도 줄지 않았다. <증언>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들과 관심이 그 사실을 보여준다. 


이 책에 나온 쇼스타코비치의 모습이 진실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다. 우리는 쇼스타코비치의 실제 모습을 보지 못했고, 구소련에서의 삶에 대해서도 쉽게 상상할 수 없다. 그럼에도 왜 <증언>을 읽고, 쇼스타코비치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증언>에 나오는 아래 유명한 구절이 떠오른다.

"작곡가에게 가장 큰 위험은 믿음의 상실이다. 음악 및 예술 일반은 냉소적이어서는 안 된다. 음악은 씁쓸한 것도 있고 절망적인 것도 있을 수 있지만 냉소적일 수는 없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냉소와 절망을 흔히 혼동한다....(중략)... 그러나 절망과 냉소는 불안과 냉소가 다른 만큼이나 서로 다른 것이다. 어떤 사람이 절망에 빠져 있다면 그것은 그가 아직 무언가를 믿고 있음을 의미한다." - <증언> 407-408쪽


회색빛 가득한 슬픈 인생을 살았고, 때때로 작곡가로서 창작을 계속해나갈 수 있을지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했지만 쇼스타코비치는 멈추지 않았다. 만약 당신이 때때로 절망에 빠진다면 쇼스타코비치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절망에 빠져 있다면, 당신은 아직 무언가를 믿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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