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 팔자 상팔자네.
방석에서 노곤한 기운을 사방으로 내뿜으며 자는 리지를 보고, 재택근무를 하다 남편에게 말했다. 매주를 노동을 하는 ‘월화수목금’과 쉬는 ‘토일’로 나누어 보내는 나와 달리, 리지의 매주는 ‘토토토토토토토’ 또는 ‘일일일일일일일’이다. 참 부러운 느슨한 일상이다.
그런데 ‘캔 값’을 벌러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보다 내가 리지를 더 부러워하는 것이 있다. 바로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것. 걱정이란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까지 불안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려야 하는 강도 높은 정신노동이기 때문이다. 사실 걱정이란 SNS상에서 보이는 ‘육묘’에선 드러나지 않는, 실제 육묘의 가장 큰 산이기도 하다. 소위 ‘랜선 집사’일 땐 나도 이불에 폭 파묻힌 까무러치게 귀여운 고양이나 집사에게 솜방망이를 날리는 짓궂은 고양이를 보며 육묘 판타지에 푹 빠져있었다. 하지만 리지를 키워보니 실제 육묘는 그 귀여움과 짓궂음을 탈 없이 유지하기 위한 치열한 걱정의 현장이었다. 특히 말이 서로 통하지 않기 때문에, 리지가 조금이라도 아파 보이거나, 나중에 건강에 안 좋을 수 있는 행동을 할 때면 내 기분엔 쉽게 먹구름이 드리웠다.
걱정의 대상도 실로 무궁무진하다. 대표적인 걱정은 바로 음수량, 물을 마시는 양이다. 고양이의 하루 적정 음수량은 몸무게 kg당 40-50ml. 리지는 약 5kg이므로 하루 적정 음수량은 250ml다. 고양이가 물을 적게 마시면 방광염, 신부전, 요로결석에 걸릴 수 있단 걸 알고부턴 난 물을 잘 안 마시는 리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리지는 매일 육수가 있는 습식 캔을 2개 먹지만, 습식으로 채울 수 있는 음수량은 100ml 남짓. 남은 150ml를 어떻게 잘 마시게 하지? 남편과 나는 자주 골머리를 앓았다. 우린 먼저 리지가 물을 잘 안 마시는 이유를 고민했다. 물이 신선하지 않아서인가 싶어 작은 분수가 달린 정수기를 사 봤다. 리지는 처음엔 흥미를 보이며 물을 잘 마셨지만, 금세 정수기를 인테리어 소품 취급하며 지나쳤다. 패스. 그럼 물이 맛이 없어서인가? 우리는 물에 캣닢 티백을 차처럼 우려 주었다. 하지만 평소 캣닢에 별로 열광하지 않는 리지는 물 냄새만 킁킁 맡을 뿐, 물에 입을 대진 않았다. 또 패스. 물그릇이 적어서 눈에 잘 안 띄나? 우린 물그릇을 더 사서 안방에 하나, 거실에 두 개 배치했다. 소용이 없었다. 또 패스. 음수량을 정확히,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고양이가 물을 마실 때마다 마신 양과 시간이 자동으로 앱 알림으로 오는 물그릇까지 사 봤지만, 알림은 도통 울리질 않았다. 또 패스. 어휴.
그러다 애정하는 유튜브 채널, <미야옹철의 냥냥펀치>를 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삼시육끼 고양이편(부제 : 수의사네 고양이들은 뭘 먹을까?)’에서 김명철 수의사님이 파우치를 고양이에게 급여할 때 습식을 숟가락으로 밥그릇에 거의 다 덜어낸 다음, 파우치 안에 물을 조금 부은 후, 파우치 끝을 접고 흔들어 파우치 벽에 붙어있던 남은 습식을 남김없이 비워내면서, 물까지 추가로 급여하는 1석 2조의 방법을 쓰고 계신 걸 봤기 때문이다. 이거다! 난 바로 따라 했다. 그런데 난 손이 크다. 물을 펑펑 붓는 바람에 리지에게 종종 ‘잠수 습식(?)’을 주었는데, 물에 푹 잠긴 습식을 리지는 처음 몇 번은 잘 먹어줬지만, 나중엔 밥그릇 앞에서 고개를 홱 돌렸다. 돌아선 리지의 눈빛에서 욕이 읽혔다. 요리 서바이벌 <헬’s 키친>의 셰프, 고든 램지의 욕 못지않은 찰진 욕을 하는 듯했다. 램지는 실수로 닭고기를 덜 익힌 참가자에게 “이 닭고기는 너무 안 익어서 실력 좋은 수의사면 살려내겠는데”라고 비꼬았는데, 리지는 “닭고기에 물을 너무 부어서 닭이 샤워타월 좀 갖다 달라는데”라고 일침을 날리는 듯했다.
음수량을 늘리려는 우리의 노력에 리지는 간간히 응답하는데, 그 응답의 모양새가 가끔은 얄밉다. 예를 들면 얼굴 앞까지 물그릇을 대령해도, 신선한 정수로 물을 갈아주어도 종일 물을 안 먹다가, 자기 직전에 사냥놀이 후 갈아 준 냉수는 몇 모금 깔짝깔짝 맛보는 식이다. 교체된 지 1분 이내의, 4~10도의 찬 물만, 사냥 후에 먹겠다는 대원칙을 세운 걸까. 까다로운 음수 습관을 보자 육성으로 욕이 나왔다. “아오, 빡쳐.” 허탈한 건 이 대원칙도 매번 바뀐다는 거다. 리지가 냉수를 마신 다음 날, 똑같은 패턴으로 냉수를 주었지만 리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대신 자고 일어나서 미지근해진 물을 마셨다. 리지를 원망하며 난 또 새로 생겨난 물음표 사이에서 헤맸다. 뭐야 어젠 냉수만 찾더니 이젠 이 시리나???
리지는 이제 뜻밖의 타이밍에 물을 마시곤 한다. 내가 화장을 할 때 옆에 와서 챱챱, 주말에 늦잠을 자는데 침대 앞에서 챱챱. 저녁밥을 먹는데 소파 앞에서 챱챱. 리지가 물을 마시는 걸 볼 때마다 기분을 채웠던 먹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고개를 빼꼼 내민다.
물론 걱정거리는 음수량 외에도 많다. 요즘 추가된 걱정거리는 바로 영양제 급여. 잘 먹던 츄르형 영양제를 리지가 언젠가부터 안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리지와 수싸움에 들어갔다.
“영양제를 억지로 먹이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먹게 해야 해.”
남편은 마치 채소 편식을 하는 아이에게 채소를 잘게 다져 넣은 소시지 볶음밥을 만들어주는 엄마처럼, 츄르형 영양제를 리지가 좋아하는 참치 습식 위에 소스처럼 얇게 뿌렸다. 영양제는 마치 오코노미야끼 위에 섬세한 그물 모양으로 뿌려진 하얀 마요네즈소스 같아 보였다. 리지는 속아서 습식과 영양제를 클리어했다.
아무튼 오늘도 집사는 걱정거리와 씨름하고, 리지는 방석 위에서 쿨쿨 잘 자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