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는 장난감을 사랑하는데, 집사가 재미있게 놀아주는 장난감은 특히 더 사랑한다. 나는 리지를 보면서 ‘고양이는 잘 심심해하지 않는다’거나 ‘고양이는 정적인 동물이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났다.
이 고정관념은 미국 교환학생 시절 생겼다. 당시 하우스메이트였던 마리오는 하얗고 검은 무늬가 오레오 쿠키처럼 멋지게 어우러진 고양이, 오레오를 키우고 있었다. 보통 마리오는 아침 일찍 운동을 나갔다가, 저녁 늦게 대학원 수업을 마친 후 돌아왔기 때문에, 마리오와 오레오가 교감하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오레오는 마리오가 없는 동안 창밖을 구경하거나, 잠을 자거나, 내 방을 한 바퀴 순찰하고 나가곤 했다(생각해보니 외출도 잘 했던 것 같다. 미국이나 영국 고양이의 약 30%는 집괴 밖을 자유롭게 오간다) 오레오와 함께 약 1년이나 있었지만, 오레오가 내게 놀아달라고 보챈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고양이는 휴식과 잠을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던 거다.
하지만 앞서 프롤로그에서도 밝혔듯이 ‘사바사 냥바냥’이다. 리지는 쉬는 것보다 노는 걸 100배쯤 더 좋아하는 고양이이기 때문이다. 장난감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면자다가도 달려 나올 정도로 리지는 장난감을 갖고 노는 데 진심이다. 특히 우리 집에는 리지가 아끼는 3대 장난감이 있는데, 여기엔 현대 문명의 산물에 대한 리지의 깊은 조예가 담겨 있다.
먼저 첫 번째 장난감은 무려 1891년, 미국의 휘트컴 저드슨(Whitcomb Judson)이 최초로 개발한 후 1913년 스웨덴의 기드온 선드백(Gideon Sundback)이 실용화시켰으며, 한국에서 ‘남대문 열렸어’라는 관용어의 기반이 된, 지퍼다.
리지는 지퍼와 자주 사투를 벌인다. 무심히 대롱거리는 지퍼의 움직임이 사냥 본능을 자극하는 것 같다. 리지는 특히 이동장 뚜껑 지퍼를 좋아한다. 돔 모양의 이동장 뚜껑을 활짝 열면 뚜껑과 몸통이 연결되는 부분 끝에 지퍼가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는데, 이 지퍼에 매혹된 리지는 지퍼를 앞발로 툭툭 치거나, 물어뜯는다. 바로 옆 캣 터널에 몸을 숨겼다가 지퍼를 덮치기까지 한다. 오전에 봤던 지퍼도 오후에 다시 보면 흥미로워한다. 리지는 훌륭한 지퍼 사냥꾼이다.
두 번째 장난감은 바로 최초로 기록된 날짜가 1790년 3월 27일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영국에서 버클을 대체하며 신발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고 할 수 있는 운동화 끈이다. 리지는 이걸 ‘환장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광적으로 좋아한다. 언젠가 김명철 수의사님이 종이 노끈으로 두 고양이를 놀아주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흉내를 내서 신발장 바구니 구석에 들어 있던 운동화 끈을 리지 앞에서 흔들었는데, 웬걸. 리지가 광적으로 좋아하는 거다. 남편이 운동화 끈을 낚싯대에 묶어, 리본체조를 하듯이 손목 스냅으로 유려한 곡선을 만들어주거나, 뱀처럼 휘리릭거리며 거실을 지나다니자 리지는 흥분했다. 이후 운동화끈은 우리 집 필수 장난감으로 자리잡았다.
세 번째 장난감은 바로 인간이 발명한 최초의 스포츠 장비, 공이다. 특히 리지는 살짝만 쳐도 멀리 날아가는 플라스틱 탁구공에 열광한다. 탁구공은 1898년 첫 발명 때만해도 셀룰로이드 재질이었지만, 불에 잘 탄다는 단점 때문에 2012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총회에서 재질이 플라스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리지는 자다가도 플라스틱 공이 바닥에 튀겨지는 소리가 나면 총총 뛰어나올 정도로 이 공을 사랑한다. 또한, 자기가 냥펀치를 때렸을 때 그림 같은 슛이 나오는 각도로 굴러오는(정확히는 집사가 그 각도로 굴려주는) 공을 사랑한다. 우린 50개들이 탁구공 세트를 사서 리지 맞춤형 핑퐁을 해주곤 한다.
반면, 리지가 별로 안 좋아하는 장난감도 있다. 물에 넣으면 스스로 헤엄을 치고 다니고, 건드리면 불도 들어오는 물고기 장난감을 사주었는데, 리지는 5분도 안 되어 흥미를 잃었다. 느리고, 패턴이 정형화되어 있어서다. 우리가 그동안 리지의 동선에 꼭 맞춰 장난감을 다이나믹하고 다양하게 움직여줘서 리지의 기대치가 높은 것 같았다. 난 남편에게 제안했다.
“우리처럼 리지 동선에 맞춰서 저절로 빠르게 장난감 움직이는 AI 로봇 만들면 어때? 다른 집사들도 필요할 것 같은데? 그럼 우리 돈방석 앉는 거 아냐?”
머릿속에 구체적인 설계안도 떠올랐다. 예전에 뉴스에서 요리하는 로봇 팔이라고 해서, 부엌 상부장 아래 달린 두 로봇 팔이 파스타 면을 냄비에 넣고, 삶고, 소스에 볶아 멋진 토마토 파스타를 만드는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
“집 천장에 레일을 달고, 낚싯대를 낄 수 있는 팔을 거는 거야. 그 팔이 리지의 움직임을 센서로 감지해서 움직이는 방향에 맞춰서 장난감을 움직여주는 거지. 아슬아슬하게 리지 옆을 비껴가거나, 숨숨터널에 샥 숨어서 리지가 잡고 싶어 안달나게 하는 거지.”
남편은 천장을 바라보며 답했다.
“표준화가 어려울 것 같은데……”
집마다 천장의 높이가 다르고, 방의 구조도 다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레일을 만들기 어렵고, 아직 모든 섬세한 움직임을 감지해 대응할 만큼 AI 기술이 발달하진 않았으며, 레일 세트가 발명이 되어도 비싸서 구매자가 별로 없을 것 같다는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자율주행 자동차까지 발명되는 시대인데, 왜 고양이 장난감 놀이의 자동화는 아직 갈 길이 구만리인 걸까. 탄식이 나왔다. 당분간은 조금 귀찮고 힘들어도 장난감을 갖고 잘 놀아주어야겠다. 그리고 언젠가 멋진 고양이 장난감 놀이 기계가 발명되면 집사들에게 광명을 주는 광고 카피를 써 보고 싶다. 육아에 지친 부모들의 가슴을 파고든 한 키즈놀이앱 광고 카피, “놀다 지쳐 잠드리라”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