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깊은 배려는 배려가 아니었음을

적신 열빙어 사건

by 인플리
이젠 특식도 안 먹는다고?


리지는 한때 특식까지 편식해서 한숨을 푹푹 쉬게 했다. 특식은 매주 수, 토에만 리지에게 주는 특별한 간식으로, 리지의 식생활을 다채롭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사람으로 치자면 특식이란 1주일에 한두 번, 카페에서 맛보는 달달한 케이크 같은 거라고나 할까.


리지가 열광하는 특식은 바로 동결건조한, 10~15cm 길이의 알이 꽉 찬 열빙어다. 리지는 열빙어가 담긴 봉지를 냉장고에서 꺼내는 걸 보는 순간부터 흥분해서 냐하- 하고 운다. 열빙어 하나를 꺼내서 검지로 잡고 있으면, 비릿한 생선 냄새를 킁킁대며 맡다가, 내 손을 툭툭 치며 얼른 달라고 성을 낸다(이 모습이 귀여워서 난 열빙어를 바로 안 주고 리지 약을 올린다).


열빙어는 리지 얼굴보다 길다. 난 리지가 먹기 좋게 열빙어를 가위로 잘게 잘라 그릇에 담아 준다. 그런데 어느 날, 상품 상세 설명에 나온 급여 방법 중 ‘미온수의 물에 불려 섭취하기 편하게 해주세요’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열빙어가 너무 말라 있으면 입안에 잘 붙으니 먹기 불편하지 않을까. 하지만 물에 불리느라 특식을 더 늦게 주면 리지가 더 성을 낼 터. 난 자른 열빙어 위에 정수를 부었다가, 바로 따라 버리는 식으로, 열빙어를 물에 살짝 적셔 리지에게 주었다. 리지는 열빙어가 담긴 그릇을 그릇 받침대 위에 올려놓는 순간까지 내내 주시하며 나를 따라 오더니, 챱챱 소리를 내며 단숨에 열빙어를 클리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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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젠가부터 리지가 열빙어를 안 먹기 시작했다. 봉지에서 열빙어를 꺼낼 때까진 열광하다가, 밥그릇 앞에 서면 돌아섰다. 난 남편에게 물었다.


“리지가 갑자기 열빙어를 안 먹는데?”

“갑자기?”

“응. 정수에 담갔다가 빼서 줬는데…”

남편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물에 담갔다고?”

“응.”

“리지 마른 거 좋아하지 않아?”

“전에도 열빙어 물에 담갔다 줬는데 잘 먹던데?”

“흠…”

남편은 평소 리지가 캔에 든 습식보다 건사료나 트릿 같이 마른 걸 더 잘 먹지 않았냐고, 리지는 습식보다 마른 음식을 좋아하는 취향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며칠 후, 난 마른 열빙어를 주자 코를 박고 해치우는 리지를 보며 남편 말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열빙어 킬러로 돌아간 리지는 입맛을 다시며 만족해했다. 남편에게 말했다.

“아하, 열빙어는 리지한텐 술집 마른안주 같은 거였구나?”

남편은 그걸 이제 알았냐는 듯, 찰떡같은 비유로 내 잘못을 일깨웠다.


그치, 여보. 술집에서 손님 목 마를 것 같다고
먹태에 맥주를 부어서 주진 않잖아…


아차. 말라 있어야 맛있는 음식도 있단 걸 왜 생각 못 했을까. 메뉴에 ‘적신 안주’가 있는 술집은 세상에 없다. 손님이 먹다가 목이 탈까 봐 미리 안주에 맥주를 부어주는, 섬세함이 많다 못해 지나친 술집 사장님도 세상에 없다(목이 마르면 어련히 알아서 뭐든 마시겠지 바보야…).


1주일에 2번 밖에 못 먹는 귀한 간식에 물을 퍼붓는 몹쓸 짓을 했군. 리지에게 미안해졌다. 그동안 날 보며 이렇게 탄식했겠지. ‘돌았냥…(그만해 제발…)’


이렇게 내 딴엔 배려지만, 리지에겐 배려가 아닌 행동들로 난 종종 미제의 궁금증이 쌓여 ‘물음표의 숲’이 울창해지는 현상을 자초한다. 이게 다 리지가 아닌 내 입장에서 생각해서다.


최근엔 리지의 눈높이를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음을, 리지와 공놀이를 하다 깨닫기도 했다. 공이 소파 밑으로 들어가서 주우려고 몸을 숙였는데, 리지가 잘 쓰는 펠트 재질의 캣터널에 다닥다닥 머리카락, 모래, 리지 털이 잔뜩 붙어있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리지의 물그릇이 있는 소파 옆과 식탁 사이에도 먼지가 섞인 머리카락 뭉치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으악. 귀찮다고 며칠 청소를 안 하면 리지는 먼지 구덩이 속에서 숨 쉬고, 놀고, 물을 마시게 되는구나. 미안해서 바로 청소기를 돌렸다.


그런데, 집사를 닮아서인지(?) 리지도 만만치 않게 적은 배려심(?)으로 우리를 종종 놀라게 한다. 자신의 황금변(!)을 다소 난감한 타이밍에 자랑하곤 하기 때문이다.


리지의 화장실은 거실 화장실 안에 있는데, 리지는 우리가 저녁을 다 먹고 양치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가는 타이밍에 따라 들어와 화장실을 쓸 때가 많다. 우린 각자 칫솔을 문 채, 긴장하며 리지의 자세를 살핀다. 리지가 엉덩이를 화장실 모래 쪽으로 바짝 대고 앉으면? 휴, 오줌이다. 그럼 냄새가 별로 나지 않기 때문에 양치를 계속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나오지 않고 옆으로 가면? 비상상황이다. 곧 리지가 엉덩이를 높게 들고, 양쪽 허벅지에 힘을 빡 주면? 200% 똥이다. 곧 구수한 냄새가 화장실에 퍼진다(참고로 귀여움과 똥냄새는 정비례 한다). 남편과 나는 서로에게 “경보, 경보!” 하고 통보한다. 한 사람은 재빨리 화장실 환기 버튼을 누른 후 리지의 항문을 닦아 줄 준비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치약, 칫솔, 양치컵을 들고 부엌 싱크대로 향할 준비를 한다. 겪어보니 구수한 잔향 속에선 양치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와 리지가 서로에게 맞는 배려를 하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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