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가 자꾸 차요
아이고, 우리 돈 귀신~
단, 리지는 나처럼 질척거리는 하수의 돈 귀신은 아니다. 귀여운 외모로 집사를 홀려 뜻밖의 지출을 하게 만드는, 고단수 돈 귀신이다(절대 내 소비의 무계획함을 리지의 귀여움 탓으로 돌리려는 게 아니다. 절대… 절대… 절…).
리지의 귀여움 탓에, 난 SNS에서 고양이 용품 광고를 볼 때마다, 광고 속 고양이의 얼굴에 리지의 얼굴을 대입하며 혼자 신나 한다. ‘와, 리지 이 캣타워 사주면 창밖 구경하기 딱 좋겠는데?’, ‘와, 리지 이 장난감 사주면 냥펀치 날리고 난리 나겠는데?’, ‘와, 이 식기는 높이 조절이 되니까 리지가 편안해 하겠는데?’ 하면서. 해당 브랜드의 카피라이터나 마케터가 노리고 쓴 카피나 키 비주얼에 정확히 걸려드는 ‘모범 소비자’인 나는, 손쉽게 ‘지름의 지름길’에 입성하며(얼마야. 얼마면 되니. 배송 빨리 오니?), 카드 결제 알림을 자주 맞이한다. 남편은 이런 날 지켜보다 말했다.
“나 솔직히 여보 사는 양 보고 놀랐잖아…”
고양이 용품 광고에 마음과 지갑을 자주 열어젖히는 나는 올해 여름엔 한 방석에 꽂혔다. 원래 여름용 쿨매트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제품이었는데, 한 강아지가 그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자는 모습이 너무 깜찍했다. 난 리지를 자꾸 그 장면에 대입시켰다. ‘리지가 그 방석 위에서 냥모나이트 하면 진짜 귀여울 텐데.’
5페이지 넘게 샅샅이 훑어본 사진 구매 후기 대부분이 강아지 사진인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난 결국 고민 끝에 그 방석을 샀다.
방석이 온 날, 리지는 시큰둥해했다. 굳이 방석 옆 바닥에 털썩 앉는 리지가 야속했다. 열심히 골라 산 정성을 봐서 한 번만 앉아주면 안 되나. 방석 가운데 폭 파묻히면 진짜 귀여울 것 같은데. 방석에 앉게 유도하려고 리지가 좋아하는 트릿 간식도 방석 가운데 올려 보았지만, 리지는 간식만 쏙 빼먹고 다시 내려갔다(역시 얌체 짓 최강자).
그런데 마음에 상처를 입고 방석을 중고로 팔까 고민하던 구매 2주 차 쯤, 리지는 방석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방석 위에서 그루밍을 하더니, 또 어느 날은 방석 위에서 엎드려 잤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방석에 옆으로 앚아 우릴 지켜보거나 아예 우리에게 등을 돌린 채 누워서 꿀잠을 자는 날도 생겼다. 요즘 리지의 ‘지정석’이 된 이 방석은 우리 집에서 리지의 애착방석 2호로 거듭났다(1호는 리지가 깔아 뭉게서 납작해진 펠트 재질의 숨숨터널). 이제 리지는 소파 한쪽에 방석을 놓으면 가죽 부분이 아니라 굳이 방석 위에 앉을 정도로 방석을 좋아한다.
리지의 방석 호감도는 ‘별로네’ → ‘앞에 보이니까 한 번 앉아 봐?’ → ‘나쁘지 않네?’ → ‘맘에 드는데?’ → ‘내꺼하자’로 변했던 듯 하다. 리지의 반응에 따라 내 소비 합리화 과정도 ‘괜히 샀네’ → ‘방금 어쩌다 한 번 써준 거지?’ → ‘생각보다 잘 쓰네?’ → ‘사길 잘했네!’ → ‘와, 안 샀음 어쩔 뻔?’으로 변했다. 이렇게 시간이 좀 걸려도 사준 것을 잘 써주니, 계속 ‘모범 소비자’가 될 수밖에.
게다가 최근엔 반려동물 산업이 발달하면서 품질 좋고 디자인도 예쁜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SNS를 볼 때마다 하나씩 다 테스트해 보고 싶을 정도다. 고양이 원목 가구, 고양이 장난감, 고양이 식기, 고양이 가전, 고양이 간식, 고양이 빗, 고양이 숨숨집, 고양이 칫솔, 고양이 터널… 카테고리도 참 다양하다. 내가 그동안 산 것 중 2가지는 다른 집사분들께도 추천하고 싶어 여기 적어둔다.
첫째, ‘발판이 넓은’ G사의 캣타워다. 이 캣타워는 평소 좁은 곳에 끼어 있거나, 식빵을 구우며 몸을 웅크리기보다는 기지개를 쫙 켜거나, 넓은 곳에 드러눕길 좋아하는 고양이의 집사에게 특히 구매를 추천한다. 가운데 기둥을 중심으로 발판이 양쪽으로 지그재그로 나 있는 구조인데, 다른 캣타워 대비 조립도 쉽고, 나무결도 색깔이 튀지 않아 다른 가구와 잘 어울린다. 뚫린 구멍으로 사냥놀이를 해 주기에도 좋다. 우린 이 캣타워를 안방에 두었는데, 꼭대기 발판은 리지의 밤 시간 고정석이 되었다.
둘째, ‘발톱에 찢기지 않는’ ㄹ사의 셀프 시공 가능 방묘방충망이다. 리지가 창밖 구경을 좋아해서 우린 거실 창문을 자주 열어 두는 편인데, 리지가 우리가 안 볼 때 밖으로 뛰쳐 나갈까 봐 걱정한 적이 많았다. 일반 방충망은 고양이 발톱에 뜯길 만큼 약하기 때문이다. 우린 단단한 알루미늄 재질이라는 이 제품에 반해 바로 구입을 결정했다.
어느 볕 좋은 일요일 낮, 셀프 시공을 시작한 우리는 먼저 기존 방충망이 있는 새시를 뺐는데… 처음부터 진땀을 뺐다. 거실 한쪽 끝에 설치된 캣타워 때문에 새시를 안으로 들여놓을 각도가 잘 안 나왔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새시를 들여놓고 기존 방충망을 뜯어내는 데까진 성공했는데, 그다음 단계가 최대 고비였다. 새 방묘방충망을 너비 1cm 정도 되는 새시 틀 4면에 잘 눌러 넣어야 했는데, 방묘방충망이 단단해서 롤러로 잘 안 눌렸던 거다. 우린 온 몸무게를 롤러에 실어 한 면 한 면 방묘방충망을 끼워 나갔다. 4면을 다 끼운 새시를 창틀에 끼우는 것도 큰 난관이었다. 모든 작업이 끝난 후, 남편은 읊조렸다.
“시공을 전문가한테 맡기는 건 다 이유가 있어…”
하지만, 첫 셀프 시공자 두 명이 교체한 방묘방충망은 몇달 째 비바람에도 무탈하다. 그 앞에서 오늘도 창밖 구경에 푹 빠진 리지를 보며 난 속으로 말한다. ‘와, 안 샀음 어쩔 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