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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찌 Oct 22. 2023

물음표의 숲

  실제 집사가 된 후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인터스텔라>의 명대사에 콧방귀를 뀌게 되었다. 고양이에 관련해선 답을 못 찾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원인 모를 행동을 하는 리지를 볼 때마다 머릿속에선 물음표가 불쑥불쑥 솟아났다.

  ‘왜 잠복근무하는 형사처럼 날 계속 따라다니지?’

  ‘왜 고양이면 환장한다는 캣잎에 아무 반응이 없지?’

  ‘왜 고양이 본능에 최적화시켜서 발명했다는 자동 장난감에 영 시큰둥하지?’

  물음표를 해결하는 속도보다 새로운 물음표가 생기는 속도가 더 빨라서 머릿속에 무성한 ‘물음표의 숲’이 자라났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 모르겠다.

  “요즘 인터넷에 고양이 정보 많은데 답이 그렇게 안 나와요?”

  그럼 난 한숨을 쉬며 답할 것이다.

  “네... ’냥바냥’이라서요.“

  ‘냥바냥’이란 사람이 ‘사람 바이(by) 사람’으로 제각각 다르듯 고양이도 ‘냥이 바이 냥이’로 제각각 다르다는 뜻이다. 고양이 커뮤니티에서 한 집사님의 게시글에 다른 집사님이 ‘우리 고양이는 안 그러던데요…’라고 댓글을 다는 풍경이 흔한 것도 ‘냥바냥’이 심하다는 증거다.


  게디가 나 같은 초보 집사는 이 ‘물음표의 숲’에서 발을 자주 동동 구르곤 한다. 어떤 물음표를 맞닥뜨렸을 때 그것이 당장 병원에 가야 할 만큼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물음표인지 아닌지를 잘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왜 고양이가 물을 잘 안 마시지?’에 대한 답이 어떤 고양이에겐 ‘심각한 병에 걸려서’ 일 수 있고, 어떤 고양이에겐 ‘물그릇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일 수 있다. 고양이에 대한 경험 데이터가 별로 없는 난 매번 새로운 물음표를 만날 때마다 그것을 얼마나 치열하게 붙들어야 하는지 몰라 헤매곤 했다.


  어느 봄날엔 평소 참치캔을 따 주면 밥그릇 바닥에 찰박이는 육수까지 핥아먹던 리지가 갑자기 참치를 반만 먹고 돌아섰다. 난 바로 검색창에 ‘고양이 갑자기 밥 안 먹는 이유’를 쳤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구내염. 초기에 손쓰지 않으면 전체 발치까지 각오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말에 소파에 기댄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구내염 증상을 자세히 훑어보니 딱딱한 음식을 거부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리지는 몇 시간 전에 단단한 치석 제거용 간식을 우적우적 잘 씹어 먹었다. 그럼 다음 이유인 ‘자주 먹던 음식에 질려서‘인가 싶었는데 그럴 리 없었다. 전에도 좋아했던 참치를 리지에게 약 1달 만에 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 훑어봐도 맞는 답이 없었다. ‘물음표의 숲’에서 안절부절못하다 김박에게 물었다.

  “……혹시 고양이 봄 타?”

  “글쎄, 그러면 입맛 없을 수 있긴 한데……”

  그때 언제인지도 모르게 화장실에 간 리지가 모래를 발로 퍼내는 소리가 들렸다. 쓱쓱, 싹싹. 잠시 후 엉덩이를 씰룩이며 돌아온 리지는 마저 태연히 밥을 먹었다. 챱, 챠잡. 거실에 ASMR처럼 리지의 식사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장실에 가 보니 리지의 거사(!)가 보였다.

  “뭐야 급똥 마려워서 먹다 만 거였어?“

  난 ‘물음표의 숲’에서 빠져나온 건 안도하면서도 속으로 리지에게 말도 안 되는 원망을 했다.

  ‘싸고 와서 먹겠다고 한마디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물음표의 숲’을 헤맬 때마다 난 답을 바로 알지 못하면 안달이 나고, 신경이 곤두서는 내 급한 성격을 마주한다. 처음이니까 답을 모르는 게 당연하고 수의사가 아니니 물음표를 바로 느낌표로 바꿀 수 없다는 걸 머리론 알지만 심장이 먼저 덜컥 겁을 먹어 버린다. 마음을 좀 다스려야겠다. 바로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은 물음표가 생각보다 많단 걸 일깨워주는 이 귀엽고, 건강하며, 영리한 존재를 사랑하는 데 내 성격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왠지 다른 집사님들도 나처럼 고양이를 관찰하면서 자기 성찰을 하고 계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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