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온 지 3주 정도 되었을 때부터 리지는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없는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면서 뭔가를 찾듯이 애타게 울었던 것이다. 마침 고양이 울음소리의 뜻을 우리말로 번역해 주는 앱 ‘미야오톡’을 알게 된 우리는 서둘러 앱을 설치했다. 핸드폰 스피커를 우는 리지 쪽을 향해 댄 후 앱 내 인식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뜻밖의 번역 결과가 떴다.
“내 사랑, 내 목소리가 들리세요?” 12/13 09:49
고양이가 밀당을 잘한다고 듣긴 했지만 집사와 ‘자기야 나 잡아봐~라’ 놀이를 즐기는 정도일 줄이야. 우리는 못 이기는 척, ‘서툴게’ 리지를 잡으러 다녔다. 이 놀이의 핵심은 바로 잡을 수 있지만 일부러 잘 못 잡는 데 있기 때문이다. 잡아서 와락 안기 전까지 시간을 끌면서 잡을 듯 말 듯한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것이 이 놀이의 정수. 우린 리지가 옷방에 들어가서 울면 일부러 안방에 들어가는 헛발질을 해댔다. 안방에서 “여기 있나아~?” 라고 크게 묻는 헛소리도 시전 했다. 뒤늦게 옷방에 들어가서 리지와 마주쳤을 때도 “어이코 여기 있었어?!” 하며 화들짝 놀란 눈을 하려고 애썼다. 노력에 화답하듯 리지의 표현도 점점 수위가 높아졌다.
“내 사랑, 내가 여기 있어요” 12/13 22:46
“나 여기 있어요, 사랑해 주세요” 12/15 08:14
“사랑에 빠졌어요” 12/17 17:54
겉으론 리지의 앙큼함에 허우적댔지만 난 속으론 뿌듯했다.
‘사랑을 듬뿍 줬더니 우리한테 마음의 문을 열었, 아니 열어재꼈구나.’
끝내 앱에 “사랑해요” 4글자가 뜬 날엔 심장에서 터져 나온 감동이 목젖까지 차올랐다. <사랑의 힘>이라는 강연을 준비해 당장 연사로 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리지의 울음 톤은 서러워졌다.
“웅애애애~ 애오오오옳!”
발정기인가 싶었지만 리지는 발정기의 대표 자세인 ‘엉덩이 높게 치켜들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짝짓기 할 상대를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 하지도, 소변을 뿌리는 ‘스프레이’를 하지도 않았다.
김박과 나는 각종 블로그와 유튜브에서 고양이가 계속 우는 이유를 검색했다. 우리가 한 동물행동학 전문가의 영상을 보며 내린 잠정적 결론은 리지가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 때문에 계속 운다는 것이었다. 고양이와 집안 곳곳에서 놀아주면서 집에 친숙해지게 하라는 그의 조언에 따라 우리는 리지를 신발장 앞에서도, 화장실 안에서도 놀아주었다.
그런데 리지의 울음소리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밤낮없이 앙칼진 울음이 이어졌다. 울음소리는 방음력이 막강한 독일제 실리콘 이어 플러그를 뚫고 들어올 정도로 셌다. 결국 잠을 설쳐 퀭한 눈으로 새벽 3시쯤 일어난 우리는 당장 리지를 진정시킬 방법을 검색했다. 마침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고양이 진정 음악을 발견했다. 첼리스트이자 작곡가인 데이비드 테이에(David Teie)가 동물 연구자와 함께 고양이의 뇌와 귀를 연구해 만들었다는 <Music for Cats>였다.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골골 소리, 아기 고양이가 어미 고양이의 젖을 빠는 소리가 담겨있어 고양이를 차분하게 해 주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난 바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우애애 우애애애오!”
리지는 더 큰 울음소리로 화답했다.
거의 밤을 새운 채로 아침을 맞이했다. 그런데 리지도 괴로워 보였다. 꼭 무언가에 조종당하는 듯이 몸을 자꾸만 이쪽저쪽으로 뒤집었다. 동물병원이 문을 열자마자 전화해 본 우리는 리지가 200% 발정기란 걸 알게 되었다. 고양이마다 발정기 증상은 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단 걸 놓쳤던 거다. 리지의 울음소리는 처음부터 밖에 있는 불특정 다수의 ‘로미오(수컷 고양이)’를 꼬시는 콜링(calling)이었다(집사와의 사랑의 술래잡기는 개뿔).
난 1월 중순으로 잡아둔 리지의 중성화 수술을 1주일 뒤인 12월 27일로 앞당겼다. 미리 잡혀 있던 연말 모임 때문에 수술일자를 더 당길 순 없었다. 대신 잠은 1주일 간 집 근처의 모텔이나 호텔에서 잘 생각이었다. 후보 몇 군데를 출근한 김박에게 막 전달하려는데 리지가 침대 위에 오줌을 누었다.
“으아앍!”
이불을 부리나케 세탁기에 쑤셔 넣으면서 집 근처 24시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며칠 더 버티다간 또 어디가 리지의 똥간이 될지 모르니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잡고 싶었다. 그런데 그 병원 직원분은 당장 다음 날 수술은 가능하지만 수술 전날과 당일 입원이 절차상 필수라고 하셨다. 전해 들은 김박이 걱정하며 말했다.
“리지 집에 온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병원에서 다른 고양이들이랑 있다가 수술하면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을까?”
결국 우리는 연말 일정 몇 개를 취소하고 원래 가려던 병원의 수술일자를 12월 24일로 앞당겼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이브날 오전 10시, 리지는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리지는 바로 울음을 뚝 그쳤으니까. 산타 할아버지가 리지에겐 편안함을, 우리에겐 숙면을 선물해 주신 거다.
리지를 데리고 집에 오면서 실제 집사 노릇은 어릴 적 다마고치로 했던 사이버 집사 노릇보다 100배는 더 어렵단 걸 실감했다. 다마고치 속 공룡은 원하는 것을 정확한 신호로 띄우며 대처 방법도 매뉴얼로 정해져 있다. 꼬르륵 신호가 뜨면 밥을 주면 되고, 심심함 신호가 뜨면 놀아주면 되고, 똥 신호가 뜨면 치워주면 된다. 그런데 고양이는 발정기 증상도 제각각 다른 신호로 알리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심지어 회복 과정도 ‘개묘차’가 크다. 다른 고양이들은 수술 후 힘들어서 내리 잠만 잔다는데 리지는 집에 오자마자 캣타워로 힘껏 뛰어올랐으니까. 무리하게 점프하면 상처 부위가 벌어질 수 있어서 우리는 리지가 오르지 못하도록 캣타워를 이불로 칭칭 감아야 했다. 리지가 병원에서 메어 준 복대를 자꾸 힘차게 이빨로 물어뜯고, 새로 사준 천 재질의 넥카라를 훌러덩 벗어던지는 바람에 플라스틱 넥카라를 다시 씌워주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너란 고양이 증말…).
그래도 리지가 회복이 빨라 다행이었다. 더 이상 설움 가득한 사랑의 세레나데를 열창하지 않는 것도 다행이었다. 노래의 대상이 우리인 줄 착각했던 한 때가 떠올랐다. 그래도 그 착각 속에서 행복했는데. 그 착각만큼 살아있다는 감각을 생생하게 일깨워주는 감정도 없기 때문이다.
난 옆에 있던 리지를 쓰다듬으며 짓궂게 물었다.
“리지야 썸남 까먹었어?”
김박이 대신 답했다.
“걔 이름이 로~ 뭐였더라?”
1월 중순쯤 리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면서 이 기념비적 망각을 소개글에 추가했다.
‘수컷 관심 없어요.’
김박의 조언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렇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