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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찌 Oct 22. 2023

생일을 지어주는 일

  임보 셋째 날 아침에도 리지는 소파 밑에서 나오지 않았다. 동물병원에 리지를 데려가 건강검진을 하려 했던 우린 난감했다. 아픈 곳은 없는지, 기생충이나 귀 진드기에 감염되어 있진 않은지,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할 시기는 아닌지 등을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김박은 리지를 지켜보더니 말했다.

  “다행히 당장 아파 보이는 데는 없으니까 적응할 때까지 좀 더 기다려 보자.”

  임보 셋째 날 밤. 새벽에 부엌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우리가 없는 틈을 타서 리지가 소파를 나와 집안 탐색을 시작한 것 같았다. 나가 보고 싶었지만 리지가 날 보면 겁을 먹을까 봐 꾹 참았다.

  임보 넷째 날. 출근한 나는 재택근무를 하던 김박한테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리지 데리고 곧 병원 가. 츄르로 꼬셨어.”

  김박은 소파에서 두 걸음 떨어진 곳에서 츄르를 따서 고소한 냄새가 거실에 퍼지게 한 후 츄르 짠 그릇을 이동장 안에 넣은 뒤 옆에서 리지를 지켜봤다고 한다. 곧 ‘츄르는 못 참지’란 표정으로 리지가 이동장 안에 들어가서 츄르를 맛보자 김박은 잽싸게 이동장 문을 닫았다고.

  리지는 동물병원에서 진료도 잘 받았다고 했다. 너무 얌전해서 수의사 선생님이 놀라실 정도였다는데 아마 리지는 잔뜩 쫄아있었던 것 같다. 김박은 반가운 검진 결과를 들려주었다.

  “다행히 리지 특별히 아픈데 없어. 혈액검사에서 기생충 반응 수치가 조금 높게 나왔다는데 이건 주신 약 먹이면 낫는대.”

  마음이 놓였다. 다행이라고 메시지를 보내자 김박은 이어서 말했다.

  “오늘 리지 몸무게도 쟀는데 2.7kg이더라. 수의사 선생님이 리지 생후 6-7개월 정도 돼 보인다셔.”

  퇴근 후 우리는 리지를 처음 만난 날로부터 6개월을 역산해서 리지의 생일을 지어주었다. 바로 2021년 5월 23일. 추정 생일이지만 리지가 실제 태어난 날과 최대한 가깝길 바랐다. 해보니 생일을 ‘지어준다’는 건 꽤나 뭉클한 일이었다. 단순히 나이대에 맞는 치료나 검진을 받을 수 있는 기준점을 만들어주는 것을 넘어, 1년 365일 중 온 세상의 축하를 받을 수 있는 특별한 하루를 만들어주는 것이니까.

  “그럼 리지는 봄에 태어났겠다.”

  난 꼬물이 리지가 초록초록한 풀밭 위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자는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다행이었다. 리지가 꼬물이 시절 온화한 볕 아래서 자라났을 테니. 그때 리지 곁을 지키던 엄마 고양이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리지의 형제자매는 몇이었을지도 궁금했다. 우리가 평생 알 수 없을 리지의 첫 6개월. 리지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으로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왔을까.


  병원에 데려다준 게 고마웠는지(?) 임보 넷째 날부터 리지는 우리와의 거리를 서서히 좁혀왔다. 거실 식탁 위에 누워 지나가는 우리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도 했고, 새로 사준 스크래처를 뜯으며 기지개도 켰다. 그 주 주말 아침엔 커피를 내리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착, 내 종아리에 자기 엉덩이를 붙였다. 리지가 먼저 다가와서 해준 첫 스킨십이었다. 동전 크기의 핫팩을 누군가 종아리에 붙였다가 뗀 듯한 느낌이 스쳤고, 그 작은 면적의 온기는 온 마음을 덥혔다. 우리가 반가운 마음에 바닥에 앉자 리지는 김박과 내 무릎에 번갈아가며 자기 머리를 비볐다. 찾아보니 ‘번팅’이라 불리는 이 행동은 고양이의 애정 표현이라고 했다. 마음의 문을 열어준 리지가 고마웠다.


  리지와 보내는 시간이 늘수록 리지에겐 애칭이 늘었다. 귀염둥이+리지라는 뜻에서 김박이 지어준 ‘리둥이’라는 애칭은 ‘-둥이’로 자주 변주되었다. 리지가 식빵을 구울 땐 ‘식빵둥’, 쓰다듬는 손을 깨물 땐 ‘난폭둥’, 저녁밥을 조금 늦게 주면 밥을 달라고 냥냥거려서 ‘호통둥’…

  어느 날 침대 머리맡까지 올라온 리지를 보며 난 농담을 했다.

  “얼씨고. 리지 나중엔 우리랑 베개 같이 베고 자겠다.” 

  김박은 잠에서 덜 깬 눈으로 말했다.

  “그럼 ‘베개둥’이네.” 

  늘어나는 것이 애칭뿐일까. 핸드폰엔 리지의 사진, 동영상, 동영상에서 캡처한 사진이 점점 쌓여갔다. 난 망설임 없이 용량이 큰 드라이브 월 정기 결제권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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