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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찌 Oct 22. 2023

생존에서 생활로

  퇴근길에 고양이 2차 구조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김박이 전해주었다. 그런데 착착 오는 고양이 용품 배송 알림과 달리 구조 소식은 통 오지 않았다. 인생은 왜 이리 얄궂게 간절히 기다리는 소식만 꼭 지각을 시키는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하철에서 애꿎은 핸드폰 잠금화면만 껐다, 켰다 하는 것뿐이었다. 또는 포털 사이트의 관심 없는 기사들을 멍한 눈으로 훑거나. 기사가 로딩되는 틈 사이로 불안이 껴들었다.

  ‘혹시 하루 사이에 무슨 일 생겼나?‘

  어두운 생각에 잠식되지 않도록 집에 온 고양이를 반기는 상상을 애써 했다. 삼냥이 집사님 부부가 퇴근 후 저녁식사도 거르신 채 구조 중이셨다. 고양이가 빨리 이 애타는 마음을 알아줬으면 했다.

  초조해하던 저녁 8시쯤 마침내 연락이 왔다.

  “고양이 방금 구조하셨대!”

  김박이 뒤이어 짧은 영상을 보내줬다. 우리가 기다리던 그 고양이가 이동장 안에서 긴장한 채 밖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집에 가는 동안 고양이 영상을 계속 돌려봤다. 실제로 보면 얼굴은 어떨지, 크기는 얼마만 할지 상상하면서. 전일보다 기온이 더 떨어졌던지라 그 고양이가 빨리 구조된 건 천만다행이었다. 생존의 기로에서 생활을 선물하러 온 은인을 알아본 게 기특했다.

  물론 그 고양이에게 구조란 처음엔 생존을 위협받는 경험에 가까웠을 것이다. 구조용 이동장은 보통 가로 세로 70cm의 작은 공간. 끝없이 펼쳐진 도로나 풀숲을 거닐던 그 고양이에겐 답답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이동장이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전에 잠시 머무는 공간임을 알 턱이 없기에 두려웠을 거다. 이동장이 실린 차가 임보처로 이동하면서 낯선 냄새가 짙어져 당황스럽기도 했을 거고. 그 고양이가 의지할 데란 삼냥이 집사님 부부의 다정한 목소리뿐이었을 거다.

  삼냥이 집사님 부부는 이동장을 먼 우리 집까지 직접 가져와 주셨다. 11월 23일 밤 10시쯤이었다. 같이 가져오신 큰 짐 속엔 각종 고양이 캔, 간식, 식기, 화장실용 모래가 들어있었다. 한 달 먼저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러 오신 산타클로스 부부 같았다. 삼냥이 집사님은 용품을 설명하시다 고영양 츄르를 짚으며 말씀하셨다.

  “혹시 다른 길고양이를 만나면 이걸 주세요. “

  갓 구조한 고양이 음식을 챙기는 와중에 다른 길냥이의 배고픔까지 헤아리는 사랑의 깊이는 얼마나 깊은 걸까. 혼자 잠시 뭉클해졌다.


  짐 정리 후 우리는 다 같이 이동장 주위에 앉았다. 그런데 이동장 문을 열어줘도 고양이는 나오지 않았다. 몸집이 16배는 더 큰 사람 넷이서 자기만 뚫어져라 쳐다보니 무서울 만도. 고양이를 밖으로 유인하려고 이동장 입구에 츄르를 짠 식기를 놓고 멀리 떨어져 앉아보았다. 고양이는 목만 빼꼼 내밀어 츄르를 맛보더니 다시 이동장 안으로 들어갔다. 김박이 제안했다.

  “이동장을 소파 옆에 둬 볼까? 소파 밑이 숨을만해 보이면 거기로 이동할 거 같은데?”

  김박은 리클라이너 소파의 다리 부분을 다 올려 고양이가 들어갈 공간을 확보한 후 옆에 이동장을 두었다. 고양이는 바로 소파 밑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괜찮은 은신처라 판단한 것 같았다. 거인들(?)은 못 들어갈 만큼 작은 공간이라 조금 안도한 눈치였다.


  난 눈앞에 고양이가 있는 게 얼떨떨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고양이는 스크린 속 존재였으니까. 영리해서 집사를 농락하고 대형견에게 겁도 없이 ‘냥펀치’를 날리지만 집사 옆에선 천사처럼 잠드는 사랑스러운 존재. 랜선 집사로서 내 역할은 고양이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뿐이었다. 고양이는 폰 화면을 끄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현실 집사가 되니 고양이가 잘 있는지 계속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이 존재의 건강과 안녕을 살펴야 하는 책임이 생긴 것이다.

  ‘이 고양이랑은 잘 지낼 수 있을까.’

  김박과 연애할 때 갔던 고양이 카페의 냉정한 고양이들이 떠올랐다. 콧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서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단 걸 처음 알았던 날이었다. 휴지로 연신 코를 훔치며 버텼는데 내 마음을 알아주는 고양이는 없었다. 어떤 고양이도 내게 오지 않았으니까. 김박의 무릎 위엔 어느새 치즈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서 골골대고 있었는데 말이다. 조금 후 한 고양이가 다가왔지만 날 심드렁한 표정으로 지나쳤다(거의 화분 취급인데?). 이후 랜선 집사가 체질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눈앞에 웬 고양이 한 마리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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