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찌 Oct 22. 2023

생존에서 생활로

  퇴근길에 고양이 2차 구조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김박이 전해주었다. 그런데 착착 오는 고양이 용품 배송 알림과 달리 구조 소식은 통 오지 않았다. 인생은 왜 이리 얄궂게 간절히 기다리는 소식만 꼭 지각을 시키는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하철에서 애꿎은 핸드폰 잠금화면만 껐다, 켰다 하는 것뿐이었다. 또는 포털 사이트의 관심 없는 기사들을 멍한 눈으로 훑거나. 기사가 로딩되는 틈 사이로 불안이 껴들었다.

  ‘혹시 하루 사이에 무슨 일 생겼나?‘

  어두운 생각에 잠식되지 않도록 집에 온 고양이를 반기는 상상을 애써 했다. 삼냥이 집사님 부부가 퇴근 후 저녁식사도 거르신 채 구조 중이셨다. 고양이가 빨리 이 애타는 마음을 알아줬으면 했다.

  초조해하던 저녁 8시쯤 마침내 연락이 왔다.

  “고양이 방금 구조하셨대!”

  김박이 뒤이어 짧은 영상을 보내줬다. 우리가 기다리던 그 고양이가 이동장 안에서 긴장한 채 밖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집에 가는 동안 고양이 영상을 계속 돌려봤다. 실제로 보면 얼굴은 어떨지, 크기는 얼마만 할지 상상하면서. 전일보다 기온이 더 떨어졌던지라 그 고양이가 빨리 구조된 건 천만다행이었다. 생존의 기로에서 생활을 선물하러 온 은인을 알아본 게 기특했다.

  물론 그 고양이에게 구조란 처음엔 생존을 위협받는 경험에 가까웠을 것이다. 구조용 이동장은 보통 가로 세로 70cm의 작은 공간. 끝없이 펼쳐진 도로나 풀숲을 거닐던 그 고양이에겐 답답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이동장이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전에 잠시 머무는 공간임을 알 턱이 없기에 두려웠을 거다. 이동장이 실린 차가 임보처로 이동하면서 낯선 냄새가 짙어져 당황스럽기도 했을 거고. 그 고양이가 의지할 데란 삼냥이 집사님 부부의 다정한 목소리뿐이었을 거다.

  삼냥이 집사님 부부는 이동장을 먼 우리 집까지 직접 가져와 주셨다. 11월 23일 밤 10시쯤이었다. 같이 가져오신 큰 짐 속엔 각종 고양이 캔, 간식, 식기, 화장실용 모래가 들어있었다. 한 달 먼저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러 오신 산타클로스 부부 같았다. 삼냥이 집사님은 용품을 설명하시다 고영양 츄르를 짚으며 말씀하셨다.

  “혹시 다른 길고양이를 만나면 이걸 주세요. “

  갓 구조한 고양이 음식을 챙기는 와중에 다른 길냥이의 배고픔까지 헤아리는 사랑의 깊이는 얼마나 깊은 걸까. 혼자 잠시 뭉클해졌다.


  짐 정리 후 우리는 다 같이 이동장 주위에 앉았다. 그런데 이동장 문을 열어줘도 고양이는 나오지 않았다. 몸집이 16배는 더 큰 사람 넷이서 자기만 뚫어져라 쳐다보니 무서울 만도. 고양이를 밖으로 유인하려고 이동장 입구에 츄르를 짠 식기를 놓고 멀리 떨어져 앉아보았다. 고양이는 목만 빼꼼 내밀어 츄르를 맛보더니 다시 이동장 안으로 들어갔다. 김박이 제안했다.

  “이동장을 소파 옆에 둬 볼까? 소파 밑이 숨을만해 보이면 거기로 이동할 거 같은데?”

  김박은 리클라이너 소파의 다리 부분을 다 올려 고양이가 들어갈 공간을 확보한 후 옆에 이동장을 두었다. 고양이는 바로 소파 밑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괜찮은 은신처라 판단한 것 같았다. 거인들(?)은 못 들어갈 만큼 작은 공간이라 조금 안도한 눈치였다.


  난 눈앞에 고양이가 있는 게 얼떨떨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고양이는 스크린 속 존재였으니까. 영리해서 집사를 농락하고 대형견에게 겁도 없이 ‘냥펀치’를 날리지만 집사 옆에선 천사처럼 잠드는 사랑스러운 존재. 랜선 집사로서 내 역할은 고양이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뿐이었다. 고양이는 폰 화면을 끄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현실 집사가 되니 고양이가 잘 있는지 계속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이 존재의 건강과 안녕을 살펴야 하는 책임이 생긴 것이다.

  ‘이 고양이랑은 잘 지낼 수 있을까.’

  김박과 연애할 때 갔던 고양이 카페의 냉정한 고양이들이 떠올랐다. 콧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서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단 걸 처음 알았던 날이었다. 휴지로 연신 코를 훔치며 버텼는데 내 마음을 알아주는 고양이는 없었다. 어떤 고양이도 내게 오지 않았으니까. 김박의 무릎 위엔 어느새 치즈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서 골골대고 있었는데 말이다. 조금 후 한 고양이가 다가왔지만 날 심드렁한 표정으로 지나쳤다(거의 화분 취급인데?). 이후 랜선 집사가 체질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눈앞에 웬 고양이 한 마리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이전 03화 계시가 있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