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차 적응할 거예요.”
삼냥이 집사님 부부가 덕담을 남기고 가신 후에도 고양이는 소파 밑에서 나오지 않았다. 지켜보던 김박이 말했다.
“진짜 ‘개묘차(개인차의 고양이 버전)’ 크다. 레오는 집 데려와서 이동장 문 열자마자 나오던데.”
레오는 김박이 대학원생 시절 입양했던 아메리칸 쇼트헤어 종의 고양이다. 입양 당시 약 3개월령이었던 레오는 김박이 자취하던 복층 오피스텔에 오자마자 ‘적응이 뭐죠?’라고 묻는 듯 킁킁대며 집 탐험을 했다고 한다. 김박의 가방 냄새 옷 냄새를 맡고 낑낑대며 계단을 오르내렸다나. 레오 이야기를 들어온 난 고양이는 모두 용감하고 집사에게 붙임성도 좋은 줄 알았다. 이 고양이가 예상했던 ‘고양이에 대한 상’을 초장부터 깨기 전까진. 고양이는 믿었던 삼냥이 집사님이 가시자 더 겁먹은 듯했다. 온 지 1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소파 밑에 웅크리고 있었으니까. 속으로 생각했다.
‘너 쫄보구나. 사실 나도 쫄본데.’
난 겁이 참 많다. 특히 귀신은 중학생 때까지도 무서워했다.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공포영화를 보고 온 날엔 도저히 혼자 잘 수가 없었다. 질끈 감은 눈을 뜨면 천장에서 귀신이 날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았다. 창문에서도 귀신 형체가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난 부모님이 잠드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베개와 이불을 들고 안방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안방 침대 옆 바닥에 반으로 접은 이불을 조심히 밀어 넣고 그 속에서 잤다. 한동안 이 잠입(?)을 계속했다. 한 번은 잠이 덜 든 엄마가 새벽에 들어오는 장발의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후 난 기어서 포복 작전으로 안방에 들어갔다. 한 번은 아빠가 아침에 일어나다 나를 밟을 뻔했다. 이후 내가 혼자 못 자는 날엔 아빠가 내 침대에서 자고 내가 엄마와 안방 침대에서 잤다. 부모님은 타이르셨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귀신은 다 배우들이 분장한 거잖아. 그냥 자도 괜찮아.”
그땐 이미 겁을 집어먹어선지 이 말이 귓등으로도 안 들어왔다. 눈앞의 고양이도 그때의 나와 같은 심정일 것 같았다. “냥이야 괜찮아. 해치지 않아.” 하고 100번을 이야기해도 꿈쩍 않겠지.
고양이를 달래주려 애쓰다 문득 이름을 지어주면 더 가까워지기가 쉬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김박과 이름을 고민하는데 고양이 얼굴을 유심히 보던 김박이 말했다.
“리지 어때?”
“왜 리지야?”
“그냥 딱 보니까 리진데?”
듣고 보니 이름이 어딘가 새초롬해보이는 얼굴과 잘 어울렸다.
“그래!”
작명은 싱겁게 끝났다. 리지야, 리지야 하고 자꾸 부를수록 조금은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에도 리지는 여전히 소파 밑이었다. 깐 츄르를 보여줘도, 낚싯대를 흔들어도 리지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고양이 2마리의 집사인 고등학교 친구에게 물었다.
“너네 고양이들도 집에 처음 왔을 때 안 나왔어?”
“아니. 루피는 온 첫날 바로 침대에서 잤는데?”
“리지는 소파 밑에서 계속 안 나와. 안에서 그루밍은 하는데…”
“그럼 조금은 편해진 거야.”
친구는 이어서 좋은 예언을 해주었다.
“지도 답답해서 언젠가는 나올 거야.”
예언은 곧 맞아떨어졌다. 김박이 소파 앞에서 쥐 인형이 매달린 낚싯대를 휘두르자 리지는 소파 앞까지 슬쩍 나왔다 들어갔으니까. 우리가 거실에서 비켜주자 리지는 소파 1m 앞에 있는 고양이 화장실도 잘 썼다. 우리와 리지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