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찌 Oct 22. 2023

처음 맛본 ‘개묘차’

  “차차 적응할 거예요.”

  삼냥이 집사님 부부가 덕담을 남기고 가신 후에도 고양이는 소파 밑에서 나오지 않았다. 지켜보던 김박이 말했다.

  “진짜 ‘개묘차(개인차의 고양이 버전)’ 크다. 레오는 집 데려와서 이동장 문 열자마자 나오던데.

  레오는 김박이 대학원생 시절 입양했던 아메리칸 쇼트헤어 종의 고양이다. 입양 당시 약 3개월령이었던 레오는 김박이 자취하던 복층 오피스텔에 오자마자 ‘적응이 뭐죠?’라고 묻는 듯 킁킁대며 집 탐험을 했다고 한다. 김박의 가방 냄새 옷 냄새를 맡고 낑낑대며 계단을 오르내렸다나. 레오 이야기를 들어온 난 고양이는 모두 용감하고 집사에게 붙임성도 좋은 줄 알았다. 이 고양이가 예상했던 ‘고양이에 대한 상’을 초장부터 깨기 전까진. 고양이는 믿었던 삼냥이 집사님이 가시자 더 겁먹은 듯했다. 온 지 1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소파 밑에 웅크리고 있었으니까. 속으로 생각했다.

  ‘너 쫄보구나. 사실 나도 쫄본데.’


  난 겁이 참 많다. 특히 귀신은 중학생 때까지도 무서워했다.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공포영화를 보고 온 날엔 도저히 혼자 잘 수가 없었다. 질끈 감은 눈을 뜨면 천장에서 귀신이 날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았다. 창문에서도 귀신 형체가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난 부모님이 잠드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베개와 이불을 들고 안방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안방 침대 옆 바닥에 반으로 접은 이불을 조심히 밀어 넣고 그 속에서 잤다. 한동안 이 잠입(?)을 계속했다. 한 번은 잠이 덜 든 엄마가 새벽에 들어오는 장발의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후 난 기어서 포복 작전으로 안방에 들어갔다. 한 번은 아빠가 아침에 일어나다 나를 밟을 뻔했다. 이후 내가 혼자 못 자는 날엔 아빠가 내 침대에서 자고 내가 엄마와 안방 침대에서 잤다. 부모님은 타이르셨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귀신은 다 배우들이 분장한 거잖아. 그냥 자도 괜찮아.”

  그땐 이미 겁을 집어먹어선지 이 말이 귓등으로도 안 들어왔다. 눈앞의 고양이도 그때의 나와 같은 심정일 것 같았다. “냥이야 괜찮아. 해치지 않아.” 하고 100번을 이야기해도 꿈쩍 않겠지.


  고양이를 달래주려 애쓰다 문득 이름을 지어주면 더 가까워지기가 쉬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김박과 이름을 고민하는데 고양이 얼굴을 유심히 보던 김박이 말했다.

  “리지 어때?”

  “왜 리지야?”

  “그냥 딱 보니까 리진데?”

  듣고 보니 이름이 어딘가 새초롬해보이는 얼굴과 잘 어울렸다.

  “그래!”

  작명은 싱겁게 끝났다. 리지야, 리지야 하고 자꾸 부를수록 조금은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에도 리지는 여전히 소파 밑이었다. 깐 츄르를 보여줘도, 낚싯대를 흔들어도 리지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고양이 2마리의 집사인 고등학교 친구에게 물었다.

  “너네 고양이들도 집에 처음 왔을 때 안 나왔어?”

  “아니. 루피는 온 첫날 바로 침대에서 잤는데?”

  “리지는 소파 밑에서 계속 안 나와. 안에서 그루밍은 하는데…”

  “그럼 조금은 편해진 거야.”

  친구는 이어서 좋은 예언을 해주었다.

  “지도 답답해서 언젠가는 나올 거야.”

  예언은 곧 맞아떨어졌다. 김박이 소파 앞에서 쥐 인형이 매달린 낚싯대를 휘두르자 리지는 소파 앞까지 슬쩍 나왔다 들어갔으니까. 우리가 거실에서 비켜주자 리지는 소파 1m 앞에 있는 고양이 화장실도 잘 썼다. 우리와 리지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이전 04화 생존에서 생활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