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만난다. 때로는 남들과 같은 길을 가며 안도하고, 때로는 혼자 다른 길을 고민하며 멈춰 선다. 그런 갈림길에서 ‘다수의 의견’은 쉽게 믿고 따르고 싶은 마음을 일으킨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방향은 왠지 더 안전하고 정답 같아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그것이 늘 진실을 말하는 건 아니다. 그 속엔 관성과 묵인, 그리고 잘못된 믿음이 숨어 있을 수 있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라는 말에는 어쩌면 생각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1951년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는 단순한 선의 길이를 맞추는 실험을 통해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정답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실험 참가자 중 75%가 한 번 이상 집단의 틀린 답에 동조했던 것이다. 진실을 알면서도 눈앞의 다수가 내뱉은 답에 휩쓸린 결과였다. 이 실험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무리를 따라가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얼마나 생각 없이 이뤄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역사 또한 비슷한 과정을 겪어왔다. 중세 시대, 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 믿었다. 이는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종교와 사회 전체가 만든 강력한 믿음이었다. 하지만 갈릴레이는 그 믿음에 의문을 제기했고, 결국 ‘지동설’이라는 새로운 시각이 세상을 바꿨다. 모두가 확신하던 것이 반드시 진실일 필요는 없다는 걸 역사는 반복해서 보여준다.
작가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다.
“모르는 것보다, 사실과 다르게 알고 있는 것이 더 문제다.”
잘못된 확신은 무지보다 위험하다는 그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집단 속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주어진 틀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오히려 더 큰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물론 개인의 생각이라고 해서 항상 정답이란 보장은 없다. 자기 확신이 지나치면 판단은 왜곡되고, 실수는 커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균형을 필요로 한다. 집단의 의견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동시에 자기 목소리를 믿는 용기. 그 두 힘을 오가며 질문을 던지는 일이, 우리가 지켜야 할 중심이다.
모두가 같은 길을 걸을 때, 혼자 멈춰 서는 건 두렵고 낯설다. 하지만 진실은 늘 그런 순간, 조용하고 고요한 곳에서 드러난다. 그 앞에 서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흐름을 거스르는 용기, 틀릴 수도 있는 질문을 던지는 용기, 그리고 나 자신을 신뢰하는 용기.
진실과 마주하는 일, 그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그리고 그 태도는 결국 우리의 삶을 바꾸는 시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