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해외 자본시장의 역사 차이와 시선의 뿌리
같은 기업, 같은 숫자를 두고도 국내 투자자와 해외 투자자의 해석은 다르게 흘러간다. 이는 단순한 정보 격차를 넘어, 시장의 역사와 투자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 자본시장이 본격적으로 외국인 투자자에게 개방된 시점은 1990년대 중반 이후다. 비교적 짧은 역사 속에서 빠른 산업 성장과 제조업 중심 구조를 기반으로 한 ‘외형 지표 중심’의 투자 시각이 형성되었다. 매출과 영업이익, 시장점유율처럼 눈에 띄는 수치들이 주요 판단 기준이 된 배경이다.
반면,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자본시장은 수백 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투자원칙과 회계 기준, 주주 보호 제도를 다져왔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단기 실적보다는 이익의 질과 주주환원 구조, 그리고 장기적 기업가치의 지속성에 무게를 두는 경향을 형성했다. 손익계산서를 단순 수치 나열이 아닌, 가치 흐름의 시각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특히 EPS(주당순이익)에 대한 해석은 이런 차이를 잘 보여준다. 선진 시장에서는 EPS가 높아질수록 배당, 자사주 매입, 자본 축소 등으로 이어져 유통주식 수를 줄이고 주당 가치를 끌어올리는 ‘주주가치 강화’가 자연스럽게 동반된다. 하지만 국내 기업 다수는 여전히 유상증자,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을 통한 자금 조달을 빈번히 선택하고, 이는 기존 주주의 가치를 희석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러한 구조는 개인 투자자의 장기 투자 심리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익은 나지만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은 없고, 기업의 확장 과정에서 주주가치는 오히려 줄어드는 경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런 흐름에 변화의 조짐도 보이고 있다. 정부가 ‘한국형 밸류업’ 정책을 통해 일본의 기업가치 제고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다수 상장 기업들이 주주환원 확대 및 중장기 비전 발표에 나서는 등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결국 투자란 단순히 숫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숫자가 만들어지는 방식과 분배되는 구조를 읽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은 시장의 성숙도와 투자 문화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지금 한국 자본시장은 그 전환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