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이라 믿었던 일상 속에서, 나의 균열을 돌아보다
어쩌면 나는 모든 게 완벽하다고 믿었던 걸지도 모른다. 마음이 인식하기 전에 몸은 이미 미세한 불균형을 감지했는지도 모르겠다. 말없이 긴장되고, 이유 없이 피곤했던 어느 날들. 머리는 안정이라 말했지만, 손끝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던 시기. 나를 향해 “잘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나도 모르는 어떤 결핍이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흔들림을 이겨낸 건 지금의 나라는 사실도 틀림없다. 혼자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 비행기 안 창밖을 바라보며 떨렸던 그 마음. 가족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지만, 낯선 환경에서 나 혼자라는 실감은 오래도록 묵직했다. 그리고 나라의 부름으로 겨울의 철원, 백골부대에서 보낸 시간. 행정병임에도 사단장의 방침 하나로, 세 차례 1박 2일의 GOP 경계 근무를 경험했다. 눈 내린 그 산속에서,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웠던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든 골조였다. 이후 남자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누구보다 자신 있게 대화에 끼어들 수 있는 자격 같은 것이 생겼다고 느꼈고, 그 경험은 오래도록 내 자존감의 일부였다.
나이 서른여덟.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서울 강동구에 우리 가족의 진짜 집을 마련했고, 두 아이는 제법 의젓하게 자라났다. 와이프는 아는 사람 하나 없던 도시에서 가까운 이들을 만나고, 둘째 유치원에서 학부모 부회장이라는 역할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우리’라는 이름이 주는 힘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이 모든 게 내 역량 덕분이라 믿었다. 집을 사고, 가족을 지키고, 흐트러지지 않게 균형을 유지하는 건 내가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최근에야 깨달았다. 이 모든 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제자리를 지켰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아내의 성실함, 아이들의 웃음, 그리고 시기마다 찾아온 기회와 운. ‘내가 했다’는 마음 뒤에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손들이 있었고, 나는 그 속에서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뿐이었다.
몸이 먼저 알고 있었을까. 이제야 마음도 그것을 알아차린다. 결국, 완벽하다는 말엔 늘 빈틈이 있고, 그 빈틈 속에 살아가는 내가 있다. 그리고 그 삶은, 부족하지만 아주 단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