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아빠가 되고 싶었다
부모가 된 뒤, 마음속에 하나의 바람이 자리 잡았다.
아이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단단하고 긍정적인 모습, 쉽게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 지쳐도 웃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으로 비치고 싶었다. 그 기억들이 아이에게 오래 남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애쓴다. 아니, 때로는 애쓰는 척이라도 한다. 웃음이 잘 안 나오는 날엔 거울 앞에서 미소를 연습하고, 불안이 밀려올 땐 그저 괜찮은 척을 한다. 연기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아이 앞이라면 그 정도는 해볼 수 있는 것이 부모라는 역할 아닐까.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 했던가.
건강하게 살기를, 좋은 학교에서 배우고 좋은 직업을 갖고 멋진 사람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 결국 그 모든 기대는 한 방향을 향한다. “나보다 나은 삶.”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그 가능성을 스스로의 삶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서면서 부모가 나설 수 있는 무대는 점점 줄어든다. 운동회는 반나절 만에 끝나고, 공개수업도 제한된다. 엄마가 싸온 도시락을 먹고, 아빠와 손잡고 달리던 운동회 풍경은 이제 낡은 앨범 속 장면처럼 멀어진다.
그럼에도 아직 하나 남아 있는 무대가 있다.
바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학예회다. 아이들은 노래하고 춤추고, 부모도 함께 춤을 춰야 하는 날. 상품을 걸고 펼쳐지는 무대 위에서 ‘엄마 아빠의 춤 실력’이 공개된다.
처음엔 다들 망설인다. 어색하고 체면도 서고, 몸을 움직인다는 부담이 선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젊은 시절 클럽에서 갈고닦은 셔플댄스를 꺼냈다.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어설퍼도 괜찮았다. 내가 즐기고 있다는 것,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바라는 건, 결국 그것이다.
기회가 오면 주저하지 않고 나서는 사람.
누구 앞에서도 망설이지 않고 춤출 수 있는 사람.
스스로를 믿고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춤은 몸을 움직이는 일이다.
움직인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때로는 무대 위에서, 때로는 삶의 한복판에서, 기꺼이 춤을 춰야 한다.
내가 아이 앞에서 춤을 추는 이유는, 바로 그 삶을 보여주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