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짜장면

by moon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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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훌쩍 자라 첫째는 아홉 살, 둘째는 세 살이다. 그동안 나의 육아 근육도 성장해 이젠 초보를 지나 공동 양육자의 지위에 올랐다고 감히 말한다. 단, 요리는 제외하고 말이다.

부모님 곁을 떠나 홀로 산 지 스무 해가 지났고, 맞벌이하며 가사에 발을 들인 것도 십 년째인데 주방에만 서면 작아진다. 다행히 두 딸은 배달 음식을 즐겨 아내 없는 식사 시간도 부담스럽지 않다. 하지만 긴 휴직에 통장 잔액이 줄어 직접 음식을 하기로 했다.

오늘의 요리는 짜장면. 아이들이 좋아할 거란 기대에 부풀어 물었다.
"아빠랑 짜장면 먹을까?"
그러자 놀란 둘째가 "응? 그건 아저씨가 갖고 오는 거잖아."했다.
"아빠가 만들어 줄 거야." "아니지. 아저씨가 들고 오는 거지."
어리둥절한 내게 첫째가 알려 준다. 짜장면 배달 아저씨를 말하는 거라고.
아내가 야근이나 회식하는 날이면 우린 짜장면, 탕수육, 치킨을 가져다주는 고마운 아저씨의 도움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러니 둘째에게 짜장면은 만들어 먹는 게 아니라 아저씨가 주는 음식이다.

역시나 녀석은 정성 들여 만든 아빠의 짜장면을 보고도 시큰둥했다. 심지어 먹지도 않겠단다. 언니가 김치를 얹어 먹는 모습을 보고서야 긴장을 풀고 살며시 다가왔다. 허겁지겁 먹다 입에 잔뜩 묻히곤 팔에 쓱 닦는다. 휴지를 건네며 "여기 닦아야지. 네가 좋아하는 분홍 옷이 까맣게 되잖아." 하니 당돌한 입술로 답했다. "괜찮아, 아빠. 비누로 빨면 되잖아. 걱정하지 마."

녀석의 응원에 나의 요리도 과감해졌다. 찌개 소스를 사서 재료 썰어 넣고 끓이는 게 대부분이지만, 가끔 김치찌개와 닭볶음탕도 만든다.
짜거나 싱거워도 물이나 양념을 더하면 되니 걱정 없다. 아이들과 장 보고, 요리하다 밀가루를 묻히기도 하지만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먹을 수 있으니 그런 수고는 괜찮다.

아이가 커서 혼자 음식 만들 수 있을 때 "아빠랑 짜장면 먹을까?" 하고 다시 묻고 싶다. 설마 그때도 아저씨를 떠올리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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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지난 1월부터 월간지 <좋은생각>에 아빠 육아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빠와 짜장면>는 지난 4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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