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키우는 아이

by moonlight

수영장을 다녀온 아홉 살 큰딸이 현관문을 열며 “아빠~ 오늘 갑자기 수영 선생님이 바뀌었어!” 했다. 둘째를 씻기던 나는 “그래? 수영 가방 정리해 줘.” 하고 짧게 대꾸했다. 석 달 전에도 선생님이 바뀌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일상적 변화라 생각했다.
저녁이 되자 나는 수영장으로 향했다. 첫째가 혼자 수영장 다니는 걸 주저해 나도 배우기 시작했다. 시간대는 다르지만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풀장에 들어가니 친절하고 재미난 나의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내 선생님도 바뀐 것이다. 거친 목소리의 낯선 이가 다가와 초급이냐고 묻는다. 평영까지 진도를 나갔지만 여전히 초급 레인에 있었기에 그렇다고 하자, 선생님은 내가 이미 배운 자세를 알려 줬다.

아무래도 진도를 정확히 말해야 할 듯해 자유형은 팔 꺾기, 접영은 발차기까지 배웠다고 했다. 한데 돌아온 답은 기초처럼 보이는 지금의 수업이 왜 필요한지,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한 설명이었다. 평소 여러 영법을 번갈아 연습하던 나는 기초로 되돌아가 오십 분 동안 자유형만 했다.


내가 현관문을 열자 아이들은 재빨리 이불속으로 숨었다. 한바탕 숨바꼭질하길 바랐겠지만 흥분한 나는 기다렸다는 듯 얼른 이불을 들추고 “오늘 아빠 수영 선생님이 바뀌었어!” 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말이야.” 하며 조금 전 일을 말하니 아내와 아이들이 배를 잡고 굴렀다. 며칠 만에 다시 왕초보가 된 사실이 재밌는 모양이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계속 툴툴대자 첫째가 다가와 물었다.
“아빠, 무슨 일 있어?”
“아니야.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
“아빠 내게 말해봐. <새끼를 밴 황소>하고 <울산바위>라는 책을 보니 곤경에 빠진 어른을 어린이가 구해주더라고. 그러니 내게 말해.”


그 말에 수영 진도로 종일 씩씩댄 내 모습이 우스웠다. 그리고 첫째가 수영 선생님이 바뀌었다고 말했을 때 그것이 아이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게 생각나 머쓱했다. 이럴 땐 아이가 나를 키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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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지난 1월부터 월간지 <좋은생각>에 아빠 육아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빠를 키우는 아이>는 지난 5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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