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셨나요?
1)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아버지. 2) 육아, 양육에 적극적인 아버지."
몇 달 전 한 신문사에서 건넨 설문지의 첫 문항이다. 엉성한 육아로 하루하루 버티는 나는 육아 휴직자란 이유로 엉겁결에 설문지를 받았다. 답이 뻔히 보이는 듯 1번에 표시하려는 순간 의문이 들었다. 펜을 놓고 소리 내 다시 읽으며 생각했다. '나의 아버지는 정말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가?'
꼬마에서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 하면 근엄, 무뚝뚝, 어색함이 떠올랐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왠지 모르게 ‘미안함’이 추가되었다.
가족을 책임지느라 집 밖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던 아버지와 나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다정하게 말하지 않았다고,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자식에 대한 사랑까지 부족했을까.
중학교 다닐 때다. 사춘기를 지나던 나는 어머니가 학교생활과 교우 관계에 한 걸음씩 다가서면 두 걸음씩 도망갔다. 하루는 집안 분위기를 완전히 망쳐놓고 등교했다. 아침 자율 학습 시간,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아버지가 들어왔다. 집에서도 보기 힘든 아버지가 학교에 오다니. 어머니로부터 등교 전 일을 듣고 왔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다행히 아버지는 밝게 미소 지으며 친구들과 나눠 먹을 우유를 사 주고 출근길에 나섰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난 교과서를 열심히 보기 시작했다.
요즘 아버지는 종종 전화해 손녀들은 잘 있는지, 밥은 챙겨 먹는지 물으며 나의 육아 푸념까지 받아 준다.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느라 당신의 젊음을 반납했던 아버지는 일흔이 되신 지금도 철없는 아들의 안정과 행복을 위해 마음 쓰며 육아 중이다.
아이들이 실수로 쏟은 물에 “얍!” 하며 흥분하고, 틀린 수학 문제를 보며 구구절절 잔소리하는 내가 감히 아버지의 육아를 평가하다니. 누군가 내게 아버지에 관해 묻는다면, 시절에 따라 표현 방식이 변했을 뿐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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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지난 1월부터 월간지 <좋은생각>에 아빠 육아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지난 6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