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르게 산다는 것

by moon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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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보내고 홀로 거실에 앉아 찻잔을 들었다. 며칠 후면 출근이다. 아이들과의 하루하루는 길기만 했는데, 그사이 계절은 몇 번이나 바뀌었다.

육아 휴직을 하고 둘째와 처음 외출하던 날, 경비 아저씨를 만났다. 손자가 어린이집에 다닌다며, 며느리가 아이를 데려다주고 출근하는 게 힘들다고 해서 “남들도 그렇게 산다.”라고 했단다. 순간 나는 얼굴이 굳어져 짧은 인사를 남기고 돌아섰다. 한동안 ‘남들처럼 산다는 것’과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 사이에서 방황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서로에게 으르렁거리는 일상에 빠져들다 보니 벌써 오늘이 되었다. 이제 다시 묻는다. ‘남들처럼 살지 못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남다르게는 살았을까?’

엄마 대신 아빠가 보살피니 남다른 사건의 연속이었다. 초등학생인 첫째는 박물관 견학 날 수저 없는 도시락을, 수영장 갈 땐 세면도구 없는 가방을 건네받았고, 자기 옷장에서 발견한 여섯 살 어린 동생의 속옷을 다시 정리해야 했으며, 작문 주체를 잘못 알고 우긴 나 때문에 같은 과제를 두 번 했다.


독특한 패션 철학을 가진 둘째는 한여름에 양말을 두 손에 끼고, 비 오는 날엔 장화 대신 부츠를 고집한다. 한겨울엔 내복 위에 봄 점퍼를 입고 신발장에서 샌들을 꺼낸다. 계절에 맞는 옷을 입히려는 나로 인해 때론 눈물 흘리기도 했다. 주위 어른들이 나를 ‘철없는 아빠’로 보는 시선도 녀석이 내게 받은 핍박에는 비할 바가 이나다.


하지만 어설픈 아빠 육아가 안겨 주는 의외의 행운도 있다. 첫째는 영어나 수학 학원에 다니는 대신 같이 배드민턴 치고 수영하며 땀 흘린다. 끝나고 둘이서 몰래 먹는 떡볶이와 음료수는 우리만의 비밀이 되었다. 또 오 분 거리인 둘째의 하원길은 개미와 벌, 참새와 길 고양이를 쫓아다니느라 삼십 분이 훌쩍 넘는 탐험길로 변했다. 이렇게 아이들과 추억을 쌓으면서 선홍색 진달래와 철쭉을, 연두색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떨어지는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그전엔 바쁜 출근길에 무심코 스쳐 지나던 것들이었다.


나는 여전히 ‘남들처럼’과 ‘남다르게’의 뜻을 알아채지 못했다. 다만 오늘 아이들을 바라보며 더 많이 웃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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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부터 월간지 <좋은생각>에 아빠 육아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남다르게 산다는 것>은 7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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