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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비가 내리더니, 퇴근 때가 되니 딱 그쳤다. 더욱이 엷고 맑은 파란 하늘에 무지개가 생겼다.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전철을 탔고 한 시간을 달린 후 내렸다. 파랑이 붉은 노랑으로 물들고 있었다.
며칠 전 용산에 출장 갈 일이 있어 삼각지역에 들렀다. 화장실 가는 쪽에 양손 가득한 크기의 사발이 있었는데, 그 속엔 돌돌 말린 종이들이 가득했다. ‘오늘의 운세인가?’ 하며 은밀하게 기대하며 하나를 꺼내어 열어보니 다름 아닌 시(詩)였다.
물든다는 것은
- 심가연
바다가 노을을
껴안는 것이다
노을이 바다를
믿는다는 것이다
그대 안에 내가
내 안에 그대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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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빈이가 태어나기 전, 첫째 은이가 다섯 살 때 셋이서 제주도로 여행을 갔었다. 당시 난 육아휴직을 했고, 아내는 복직해서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 6월. 우리는 일상으로부터 도망치듯 제주로 향했다. 맛난 음식을 먹지 않아도, 재미난 공연을 보지 않아도, 그저 일상으로부터의 단절, 공간의 이동만으로 우린 즐거웠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고, 아내는 출근해야 했다. 은이와 나는 아쉬워하며 아내만 먼저 보냈다. 의기양양하게 둘만의 여행이 순조롭기만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다음날 파랑보다는 초록에 가까운 협재 해수욕장으로 걸어갔다. 수건, 물, 과자, 튜브, 모래 놀이도구가 가득한 가방을 챙겨 왼쪽 어깨에 메고, 오른손으로는 여유롭게 은이의 손을 맞잡았다. 그렇게 도착해 모래사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먼저 모래 놀이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차례 강한 바람이 불어왔고, 모래알들이 춤을 추었다. 가벼운 몇몇은 멀리 날아갔고, 무거운 몇몇은 가까이 앉은 은이의 눈으로 들어갔다.
“으앙~ 으앙~”
은이는 모래 묻은 손으로 모래가 들어간 눈을 비비며 울었다. 은이에게 다가가자 아빠임을 느꼈는지, 내 손을 끌어당기며 와락 안긴다. 내 몸을 움직일 수도, 은이를 달랠 수도 없었다. 눈과 손을 씻겨주지도 못하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뚜벅뚜벅 숙소로 돌아왔다. 왼쪽엔 한가득 짐을, 오른쪽엔 한가득 은이를 지고 안고서 말이다.
비록 모래 놀이와 수영을 하지는 못했지만, 돌아와 둘이서 샤워를 하며 거품으로 동물 만들기 놀이를 했다. 샴푸를 문질러 머리칼에 잔뜩 거품을 낸 다음, 뭉치고 땋고 세우고 눕혀 형체로는 감히 짐작할 수 없는 토끼와 공룡을 만들며 웃었다.
그리고 몇 달 뒤, 감기에 몸살까지 겹쳐온 날. 나는 열을 뿜어내며 조용히 이불 속에 있었다. 아내는 설거지로 바빴고, 홀로 남아 심심했던 은이는 슬금슬금 내게로 다가왔다. 이마에 손을 올리더니,
“아빠, 내가 찜질해 줄 게.” 그런다.
“내가 아플 때 아빠가 해 줬으니, 나도 해줘야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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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소리없이 잔잔하게 세상을 물들이는 노을을 보면서 심가연 님의 <물든다는 것은>이란 시와 은이와의 추억을 함께 떠올렸다. 어쩌면 육아라는 것도 아빠와 딸이 서로에게 물드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바다가 아빠이고 노을이 딸이었다가,
어느 순간에는 바다가 딸이고 노을이 아빠이기도 하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 안에 살면서 일상을 물들이는 것처럼······.
당시 찜질해주겠다던 은이는 뒤이어 “아빠, 더운 물이랑 손수건 좀 가져다줄래.”라고 말했다. 결국 나는 무거운 몸으로 물을 떠 오고 다시 물을 비워야 했다. 또 두 번의 찜질 후 “인제 그만. 찜질했으니 아빠, 같이 놀자.” 하는 무서운 목소리를 들었다. 그럼에도 아빠인 내가 웃을 수 있는 건 아이의 마음에 흠뻑 물들었기 때문일 테다.
* 7.16일자 베이비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