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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휴대전화와 함께 꼭 챙겨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교통카드? 지갑? 아니면 펜과 다이어리가 든 가방? 이들 없어도 버스정류장까지 갈 수 있지만, 마스크가 없다면 몇 걸음 내딛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COVID-19 확산 초기에는 종종 마스크 없이 집을 나섰다가 눈총 받고 버스에 오르기도 했지만, 이제는 마스크 없이는 대중교통을 탈 수도 없을뿐더러 잠깐의 외출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휴대전화보다 더 긴요한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마치 얼굴의 한 부분이라 느낄 정도다.
회사로 향하는 버스가 정류장을 향해 급히 내달리면, 나 또한 뒤뚱이는 배를 쓸어안고 전력으로 질주한다. 차오르는 숨을 내뱉고 마스크를 내려 깊은숨을 쉬고 싶지만, 주위 사람의 눈치가 보여 마스크 아래쪽을 살짝 들어 조심스레 숨을 고른다. 운동부족에 따른 폐기능 저하인지, 마스크로 인한 호흡곤란인지 알 수 없지만, 가끔 현기증에 이를 것 같은 두려움도 느낀다. 언제까지 이렇게 생활해야 할까. 멍하니 버스에 오른다.
마스크를 쓰면 무엇보다 답답함이 크다. 키는 줄고 배는 나오는 나에겐 달리는 모양새만 갖추어도 숨이 차오른다. 게다가 상대와 말이라도 나누려면 내뱉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나의 입 냄새로 숨이 막힌다. 쉿! 이럴 때면 입 다물고 더욱 침묵해야 한다.
참, 마스크로 인해 더욱 심해진 안면 인식 장애 덕에 가끔 낯익은 모르는 사람에게 꾸벅 인사하고 홀로 머쓱해지기도 한다. 4인 가족이 매일 4장씩 소비하니 비용도 만만치 않거니와 그 많은 마스크가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걱정이다.
마스크가 가져온 일상의 변화는 회사에서 느끼는 스트레스 양과 견줄 정도지만,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단절’이라고 하겠다. COVID-19 바이러스로부터 단절을 위해 출발했으나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두기의 표상으로 동료, 친구, 가족 등의 관계 속에서 단절이 생겨나고 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영상통화로 뵙는 것도 2년째가 되어가고, 술잔을 기울이며 친구나 동료들과 일상의 푸념을 나누는 것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러 소풍을 가는 것도 조심스럽다. 4명으로 구성된 나의 가족은 하나의 세트를 이루어 점점 고립되는 듯하다. 일상을 기록하는 사진에서도 마스크는 얼굴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 햇살 좋은 봄날, 한나절 강변을 따라 걸었다가는 태닝을 한 것처럼 얼굴에 상하구분이 생길 것 같은 상상에 피식 웃음이 난다.
이런 변화가 딱히 나쁜 것은 아니다. 우선 나의 못난 코와 입을 가려주어 고맙다. 안경과 더불어 나의 신비주의에 은근 도움된다. 게다가 이어폰으로 흐르는 노래 가사를 따라 나지막이 흥얼거리고, 길어지는 회의 시간에 홀로 입을 삐죽이며 딴청 부릴 때면 종종 짜릿하다.
무엇보다 퇴근 후 곧장 집으로 가게 되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다. 바깥에서 근질근질 참았던 입을 집에서 풀어놓으니 자연스레 대화도 많아졌다. ‘티카타카’ 아닌 ‘티격태격’이지만. 쿵쾅쿵쾅 옥신각신하다 어느새 잠든 아이의 평화로운 숨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찌나 고마운지.
그러고 보니
일상을 가두는 불편함이 때론
가족에게 집중하는 계기가 된다.
어쩌면
나란 존재에 더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쨍그랑 쨍그랑
빛나는 봄날
정호승 님의 시, ‘봄길’이 생각난다.
"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중략)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