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과 곡선

by moonlight


초등생이 된 둘째 아이와 함께 나란히 책상에 앉았다. 그림을 그린다는 아이는 15cm 자를 꺼내 선을 긋고, 빈손인 나는 말없이 녀석의 손가락을 응시했다. 맨손으로 그려낸 울퉁불퉁 곡선 대신 반듯하게 이어진 직선을 보며 아이는 살짝 미소 지었다.


직선을 그려낸 녀석의 미소는 어떤 의미였을까?


'굽은' 아닌 '곧은' 것에 대한 당당함일까? 아니면 빨리 도달했음에 대한 만족감일까?

언제부턴가 나에게 직선은 '옳은 길' 대신 '지름길'이었다. 현 지점에서 시작해 목표지점에 이르기까지 시행착오 하나 없이, 최단시간에 다다를 수 있는 길 말이다. 그러고 보니 참, 부단히 노력했다. 주위를 살피는 여유를 부리지도 않고 오롯이 목표를 향해 내달려서 무언가에서 수식상승의 효과를 기대하는 삶을 그리고 매달렸다.


하지만 어찌 세상이 그리 녹록하던가?


그렇게 빨리 가려고, 남들보다 먼저 이루려고 선택한 길은 내게 직선이 아니었다. 때론 단절된 곳에서 새로운 선을 잇기도 했고, 같은 자리를 맴돌거나 앞이 아닌 뒤를 향해 나아가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니까... 단언컨대 나의 삶은 직선이 아닌 곡선이다.


이제서야

내 삶의 곡선이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를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생각해낸 것이 시인 도종환 님의 시 '부드러운 직선'이다.

-
높은 구름이 지나가는 쪽빛 하늘 아래
사뿐히 치켜세운 추녀를 보라 한다
뒷산의 너그러운 능선과 조화를 이룬
지붕의 부드러운 선을 보라 한다
'
'
그러나 저 유려한 곡선의 집 한 채가
곧게 다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본다
휘어지지 않는 정신들이
있어야 할 곳마다 자리 잡아
지붕을 받치고 있는 걸 본다
'
'
한 생애를 곧게 산 나무의 직선이 모여
가장 부드러운 자태로 앉아 있는
-

나도 그처럼

삶이라는 곡선의 마디마디를
곧은 선으로 채우고 싶다.

그렇게 오늘을 일상을
한 생을 부드러운 자태로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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