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따아빠'입니다
아무개 씨, 가 선생, 나 팀장, 아저씨 등등
나를 부르는 사람들의 다양한 호칭을 듣다 보면,
그와의 관계, 거리를 생각한다.
서로 느끼는 거리가 같다면
멀고 가까움은 상관없이 편안하다.
대신 나와 달리 훅 밀고 들어오는 발걸음이라면 당혹스럽고
반대로 밀어내는 호칭이라면 서운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님의 시 <꽃>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호칭은 관계를 규정하기도 하고
존재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아빠'도 그렇다.
봄이 되자 심술 꽃이 피었는지,
둘째 아이가 종종 나를 아저씨라 부른다.
야근하고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저씨, 여기 우리 집이에요."라며 쏘아붙인다.
이어 동네 아저씨에게 퉁퉁거리듯 대하면
(현실은 심한 낯가림에 입도 뻥긋 못하지만)
새삼 느껴지는 거리감에 서운하다.
5년 전, 가족이 함께 일상을 공유할 목적으로 밴드를 개설했다.
밴드명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했는데
곧장 아내가 '이따가족'이 좋겠다고 했다.
이유인즉, 나와 아내는 아이들이
'함께 게임하자, 운동하자, 놀자, 책 읽어줘'라고 할 때마다
'좀 이따가'를 연발하고
아이들은 '씻어야지, 양치해야지 일찍 자야지'라는 부모의 말에
'좀 이따가요.'라고 대꾸하니
이보다 더 적확하게 우리 가족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다가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따아빠'가 되고, 아내는 '이따엄마'가
두 아이는 '이따큰딸'과 '이따작은딸'이 되었다.
최근 우리 가족의 '이따가'란 말의 사용빈도는 훌쩍 줄었다.
서로에게 더 충실해졌기 때문이라 말하고 싶지만,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영역이 넓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다시 가족 밴드명을 짓는다면
뭐라고 할까?
.
.
.
선뜻 떠오르지 않는 것은 일상의, 관계의
다채로움 덕분이지 소원함 때문은 아니리라.
앗! 오늘은 어린이날!
지금 당장 어떤 하루를 보낼지 선택해야겠다.
그렇지 못하면
별명을 생각하다 변명을 늘어놓는
'이따아빠'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