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주도 쇼핑

여덟 살 쑥쑥이가 말하길 "아빠~ 오늘은 아무것도 묻지 마!"

by moonlight


첫째 쑥쑥이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언니를 보자 신이 난 둘째 쭉쭉이는 쿵쿵 뛰며 감정을 발산했고,
비가 와서 놀이터에 가지 못하는 첫째는 시무룩 모드로 변했다.

조금 전 책에서 생활비 프로젝트*(아빠 양육2, 中에서 )를 접한 아빠는 아이의 감정과 상관없이 말을 시작했다.

"쑥쑥아~ 이제 아빠가 너에게 생활비를 주려고 해."
"응? 그럼 많은 거야, 적은 거야?"
"음... 생활비가 한 달에 오만 원이야. 옷을 오만 원에 살 수 있는데 네가 이만 원에 샀어. 그럼 삼만 원은 통장에 저금했다가, 다음에 칠만 원짜리 물건을 살 수도 있는 거지."
"음..."
"매달 일정한 돈을 주고 그걸 엄마, 아빠랑 네가 조절하며 쓰는 거야."
"그래? 근데 아빠 우리 문구점 가자."

"응? 뭐 필요해."
"응! 가자."

생활비 프로젝트는

아이의 경제관념을 키우기 위해 아이에게 용돈이 아니라 생활비라는 명목으로 매월 일정한 돈을 주고,
아이가 어려서는 부모가 아이의 물품(기저귀, 책, 간식 등을 포함)에 대한 지출 기록을 남기며,
아이가 초등학생 정도가 되면 그중 일부를 현금으로 주고 사용토록 하되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꾸준히 실행하면 아이가 경제에 대한 관념을 터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문구점으로 가는 길에서도 아빠는 주저리주저리 돈 관리에 대해 이야기했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쑥쑥이는 걸음을 재촉했다.

드디어 문구점 도착.

쑥쑥이는 군더더기 없는 발걸음으로 연필과 볼펜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래. 쇼핑은 딱 필요한 것만 하는 거지! 역시 내 딸이야!'

이것저것, 요리조리 살펴보며 디자인, 가격을 꼼꼼히 비교한다. 한참 고민 끝에 900원 하는 샤프를 고른다.

"쑥쑥아~ 골랐어?"
"응. 우선 이건 살 거고! 자, 또 보자~"
"...... 으잉???"
"요즘 학교에 지우개가 없어. 오와~ 이거 나무에 지우개가 열렸네. ㅋㅋ"
"지우개는 집에도 있잖아?"
"응. 그런데 좀 지나면 금방 써 없어지니까 또 필요해!"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예상하지 못한 아이의 단호함에 아빠는 당황했다.
살짝 뒤로 한걸음 물러나 지켜보기로 한다.
천천히 둘러보고는 지우개 가루 치우는 롤러가 붙은 지우개를 하나 더 품에 안고,
스틱으로 그리는 스크래치 북도 함께 꼬옥 쥐었다.

계산대 앞으로 가서는 자그마한 분홍 손지갑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종이를 하나씩 꺼낸다.
계산하는 모습이 늠름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오늘은 꾹! 아니 뚝! 참는다.

오늘의 쇼핑은 온전히 첫째에 의해, 첫째를 위한, 첫째만의 것이었다.
아빠는 그저 보디가드였을 뿐, 쇼핑에 어떠한 간섭도, 영향도 미칠 수가 없었다.
강력한 아우라로 "아빠~ 오늘은 아무것도 묻지 마!"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보기엔 전혀 필요하지 않은 쇼핑이었지만, 돌아오는 첫째의 표정은 충만했다.
녀석에게는 아주 완벽했던 모양이다.

너만의 첫 쇼핑을 축하하며~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