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지켜주고 싶었어.

첫째이기 전에 여덟 살이라고요!

by moonlight

오랜만에 사람들이 우리 집에 모였다. 아이들은 방 하나를 차지하고 웃음소리가 넘친다. 단조로운 어른들의 일상 나누기 중 21개월 막내의 역할이 돋보인다. 존재만으로도 움직임 하나하나가 이야기 소재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첫째 아이는 어른들의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동생이 태어나고는 나누어진 관심에 살짝 푹이 죽었다.

다행히 친가 쪽에서는 막내 순위 넘버 2를 지키고 있어, 언니들과 함께 하는 놀이과 행동의 결정 과정에 녀석의 선호가 반영되거나 선택의 우선권을 갖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이 녀석이 왕언니다. 제 동생 한 명을 건사하기에도 벅찬 여덟 살인데 제일 언니라니. 방에 들어가 있는 아이들이 살짝 걱정이다. 조마조마하던 긴장의 순간을 깨는 소리가 들린다. 으앙으앙!!!

한 살 어린 사촌동생이 운다. 방을 나와 엄마에게 안기며 서러운 눈물을 흘린다. 많이 속상한 모양이다. 그리고 웅성웅성. "왜 그래? 괜찮아? 그랬어?" 하는 물음에 다행히도 조카는 차근히 언니의 행동을 말한다. 다만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을 정리해 말하는 나이라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어쨌든 첫째의 스크래치 북이 있었고, 여기에 그림을 그리던 동생. 그 손에 쥐어진 스크래치 펜을 낚아챈 첫째. 그리고 사촌동생의 울음. 뭐 이 정도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어디선가 내 귀를 지나쳐 첫째에게 날아가는 소리

"언니가 동생에게 양보해야지~ 그래야 착하지!"

평소 같았으면 첫째를 타이르거나 불이익을 줄 거라고 말해 동생에게 양보를 강권했을 것이다. 그런데 평생을 둘째로 살아온, 그래서 어른들의 "동생에게 양보해야지."라는 말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내가 오늘은 말이 무척이나 거북했다. 분명 첫째에게도 사연이 있을 텐데, 이를 확인하지 않고 녀석의 감정을 보듬지 않고서 양보하라는 것 같았다.

으앙으앙과 동생에게 양보해야지,라는 소리가 흐르고 건너편 작은 방에는 첫째가 혼자서 긴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불편했던 나는 아이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를 본 아이는 잔뜩 경직된 아빠 얼굴이 더 불편했던지, 나의 손을 뿌리치고 방을 나서려 했다. 황급히 문을 닫고 녀석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꼬옥 안았다. 무릎 위에 앉히고 꼬옥 안았다. 웅크린 어깨가 살며시 흔들린다. 입에서 한 마디라도 말이 나오면 눈에선 눈물이 콸콸 쏟아질 것 같았다. 너의 목소리로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오늘은 묻지 못했다.

'안 돼. 쑥쑥아. 지금 밖으로 나가면 안 돼. 조금만 더 여기 있어. 아빠 품에 이렇게 조금만 더 있어'

너에게 다가올 관계, 책임, 평가, 강요, 이에 대한 너의 끊임없는 선택에서 아빠는 해줄 게 없구나.
그저 언제나 항상 변함없이 네 곁을 지키고 싶다. 그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