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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Dec 27. 2015

내일 출근 안 하니까 괜찮아?

도대체 저에게 왜 그러시는 거예요!^^

육아휴직을 한 지도 2개월이 지났다. 이쯤되니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나에게 요일은 초등학 첫째가 등교하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로 구분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제 주부의 모습에 훨씬 가까워졌다.


엊그제는 크리스마스이고 해서 친척들이 모였다. 우리 집에서!
외식하고 주문한 음식으로 식사한다고 해도 집주인은 바쁘다.


좁은 공간에 여러 사람 있으니 신선한 공기를 위해 환기시키려면 금방 추워진다.
문을 닫았어도 30년 가까이 된 집이라 바람이 슝쓩 드나드는 것이 당연한데,
다른 사람 입을 통해 들으니 왠지 미안하다. 추운데 살아서 ㅠㅠ

주문한 요리를 가공해서 먹으면, 재료만 준비하지 않았지 그 후 과정은 같다.
조리를 하고 상을 닦고, 접시와 수저를 놓고, 밥을 퍼서 사람 수에 맞게 정렬한다.
맛있게 먹으면 천만다행. 혹 맛이나 재료에 문제라도 생겨 누군가 식사를 그만두면 또 미안한 마음이다.
그리고는 자연스레 설거지. 누군가를 위해 커피와 녹차를 타고, 과일도 함께 가져온다.

물론 많은 부분을 아내가 하기에 내가 불평하기엔 좀 민망하지만. ㅎㅎ

그러다 문득 한 어르신이 "괜찮아! 내일 출근하는 것도 아닌데. 출근하면 일찍 가야겠지만."하신다.
앞 이야기를 듣지 못해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1. 참석한 자녀들이 내일은 쉴 수 있으니 오늘은 좀 늦게까지 함께 있어도 된다.
2. 준비하는 자녀가 내일은 쉴 수 있으니 오늘은 좀 고생해도 된다.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만약 두 번째 의미였다면, 조금 다르게 말하는 것은 어땠을까?
예를 들어, "너희 덕에 맛있게 저녁을 먹으니 기분이 참 좋구나. 고맙다." 정도.


"괜찮아. 내일 출근하는 것도 아닌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출근을 하려면 오늘은 푹 쉬어야 하나?
내일 출근해서 에너지를 쏟기 위해서?
가족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출근해서 돈을 버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인가?
출근하지 않는 주부(나)의 일상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인가?
(이건 자격지심에 비약도 심한 듯하지만 ㅎㅎ 그냥 생각이 그런 거니까.)

출근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을 보내면 하루하루 아니 일분일초가 너무 정신없다.
아이를 챙겨서 등교나 등원 시키는 것은 어른이 출근하는 과정과 다르다.
씻기고 먹이고 입혀서 보내는데, 어르고 달래고. 목소리 톤의 변화만 수십 번이다.
그리고 나면 설거지, 빨래, 청소. 잠시 차라도 한 잔 마실까, 하면 곧 하교할 시간이다. ㅠㅠ

그런 중 나만의 일을 하지 않으면, 나를 위한 시간을 내지 않으면 내 삶이 없어지는 것 같아 한동안 끝없이 우울해지기도 한다.

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주부 빼고^^)
특히 남자인 나의 육아휴직을 보고는 '육아'는 빼고 '휴직'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 2개월 지났는데, "이제 그만 쉬고, 복직해야지."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 발끈 한 일이 생겼다.
누군가 "쉬셔야 하는 데 쉬지도 못하고 고생이 많으세요." 하며 내게 건넨 말에,
아내가 덥석, "괜찮아. 내일 출근하는 것도 아닌데." 한 것이다.

말을 건넨 이에게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터, 그 마음 이해하지만
"우리 남편 그 정도 체력은 있어. 이래 보여도 튼튼해." 아니면
"남편이 좀 자상해. 하하." 좀 닭살 돋는 멘트지만 그런 편은 어땠을까.



그대의 말처럼 내가 내일 출근하지 않더라도,
집에서 쉬는 건은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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