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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Feb 26. 2016

어린이집에 갑니다.

3월 2일이 되면 둘째 쭉쭉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다름 아닌 어린이집에 가는 것이다.

두 돌이 지난 녀석은 돌 지나서 어린이집으로 보내졌던 언니와 달리 엄마,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뭐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면 적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첫째 때는 아내의 육아휴직이 종료되면서 곧바로 어린이집으로 보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어린이집에 보낼지 가 고민의 대상이었고, 집에서 가깝고 선생님이 좋으며(그런데 이는 쉽게 확인이 되지 않는다.)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는 아늑한 분위기를 가진 곳을 찾아다녔다. 이곳저곳을 방문하던 중 다행히 아이가 장난감에 반응하며 곧바로 놀았던 곳 있어 그곳을 택했다.   
  

벌써 9살이 된 첫째를 키우면서 시행착오도 겪었고, 이젠 아빠의 육아휴직이란 변수도 있어 둘째 어린이집에 대한 고민은 그 폭이 넓어졌다.     



1. 언제 보내는 게 좋을까?


물론 집에서 양질의 육아를 하면 좋겠지만 벌어서  먹고살아야 하고, 조부모 등 주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을 사는 나는 어린이집을 외면할  없다. 다행히 나도 육아휴직이 가능해 시기를 조금 늦출 수는 있지만 급속히 줄어드는 통장잔고를 생각하면 마냥 그럴 순 없는 노릇이다.    


보통 36개월까지는 주양육자와의 애착관계 형성이 중요하며, 올바른 애착관계 형성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물론, 자녀의 사회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굳이 이런 말이 아니어도 아이의 정서적 안정과 신체발달은 물론 생활습관을 익히기 시작하기에 조금이라도 더 부모가 돌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온종일 아이와 함께 하는 날이면, 특히 신체적, 감정적으로 힘든 날이  연이어지는 날이면 곧바로 아이와 지내는 시간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지, 하며 합리화를 시작한다.

절대적 시간 확보가 우선이라고도 하지만, 소위 독박 육아가 가져다주는 신체적 한계와 정신적 우울을 경험하면 생각이 흔들린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문화센터를 다니고 공동육아를 찾아보며, 보조 양육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때때로 스스로 버거워하며 아이에게 먹을 것과 TV를 안겨주는 현실에 젖을 때면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하며 후회가 밀려온다.    


또 하나. 아빠의 휴직 종료일에 우리를 기다리는 어린이집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 둘째가 태어나서 신청한 국공립어린이집은 아직도 100번이 넘는 순번이고,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도 대기 인원이 없는 곳을 찾기 어렵다. 그러니 2월 말에 들고나는 인원이 있을 때 등록해야 한다며 이유를 찾아냈다.    

그래서 보내기로 했다.



2. 어디에 보내야 하나?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마음먹는 데까지 시간을 많이 끌었다. 조금이라도 더 고민했다고 부모가 스스로 합리화하고 자위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국공립은 안 되고, 가까운 곳부터 검색을 시작했는데, 대기인원이 보통 10여 명이고 30명이 넘는 곳도 있다.     


너무 늦은 것인가?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같은 동 1층에 있는 어린이집에 대기 인원이 없음을 확인했다. 눈이나 비가 오더라도 걱정이 없고, 이동시간이 짧아 최적이다. 상담예약을 하고 아이들이 낮잠 자는 1시 30분에 방문했다. 운영방법과 추가 비용, 다른 아이들의 등 하원 시간 등을 확인하고 돌아가는 길, 다시 안개 속으로 걸어가는 느낌이다. 딱히 흠잡을 때는 없지만, 무언가 불편하다. 그러고 보니 유독 이곳만 대기자가 없다는 사실도 마음에 걸린다.


육아를 하면서 종종 느끼게 되는 막연한 불안감이  또다시 찾아온다. 전체 중 극히 일부의 일이라 믿고 싶지만, 가끔 TV나 신문 등을 통해 알려지는 어린이집 폭행사건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3. 보낼 수 있을까?


9살인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당시에도 경쟁률이 높았지만, 유달리 아이들이 많고 어린이집도 많은 지역에 살아서인지 그리 걱정은 없었는데,

이젠 늦어도 전년 12월에 3월 등록인원을 확정한다고 하니, 더 이상 부모가 보내고 싶다고 해서 언제든 보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1층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은 보류하기로 했다. 당장은 대안이 없지만 그래도 아직 휴직 기간이 남아있기에, 그 사이 이사 등으로 결원이 생기기를 바라면서 또다시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기로 했다.      


그리고 보름이 지났을까?    


한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사정이 생겨 등록하지 못하는 인원이 생겼고, 앞 순위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찾아서 간 상황이라 우리 차례가 되었다며 연락을 준 것이다.

이 말을 듣는데, 정말 아이가 대학을 추가 합격한 것처럼 같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로 파티를 열었을 정도였으니.

   



곧 입학이다.     


지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결정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엄마를 찾고, 여전히 대소변을 기저귀에 의존하며, 의사표현이 정확하지 못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최선이냐 물음은 아직도 아빠의 마음을 떠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이제 믿어 보려 한다.

아이와 선생님 그리고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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