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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Feb 14. 2016

마음의 쿠폰을 찍어요!

아내의 외출이 반가운 이유?

지난달 아내가 친구를 만난다고 11시에 나가서 11시에 들어왔어요.
하루 종일 두 아이와 씨름하느라 힘들었는데,
다녀와서 하는 말이 그 친구와 5월에 제주도로 여행을 가겠다는 거예요.
혼자 사는 친구라 요즘 많이  힘들어한다며.
일단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어요.


이렇게 푸념하는 그의 입가엔 자신도 모르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어제. 아내는 첫째와 나의 귀가 시간을 3시로 정했다.
친구들과 <쿵푸펜더3>을 보려 했던 첫째는 정말 영화만 보고 집에 왔다.
돌아오니 둘째는 자고 있고 아내는 외출 준비를 완료했다.
약속시간이 5시 30이라  별생각 없이 “벌써 가려고?” 했더니, “왜? 일찍 가면 안 돼?” 하며 되묻는다.
끄응. 이왕 외출하는 거 원하는 대로 해야지 하며 목구멍을 꾹꾹 눌렀다.


30분이 지났을까. 첫째와 방에서 놀고 있는데, 살며시 들어오는 아내.
약속시간이 4시 반이 아니네. 호호호.

나도 어색해 따라 웃는다. 하하하.

(맞아. 모처럼 주말 약속이니 빨리 벗어나고 싶기도 하겠지? 아니 오랜만에 만나니 친구를 빨리 보고 싶은 거겠지!)    


아내의 외출이 잦아지면서(?) 요령이 생겼다.
이제는 둘째가 말을 알아듣고, 과자의 유혹에도 넘어가며, 뽀로로와 타요 같은 친구도 있으니 아빠는 든든하다.
대신 집안을 깨끗하게 치우겠다거나 설거지를 꼭 오늘 하겠다는 마음을 아내와 함께 외출시키는 여유도 생겼다.         



빵 한 조작과 팝콘으로 점심을 때운 첫째를 위해 일찍 저녁을 준비한다.
여느 때처럼 아이들은 티격태격하지만 6살이 많은 첫째에게 도와 달라 부탁하면 동생에게 밥도 주고 장난감도 챙겨주며 놀기도 한다.
그래도 둘째는 속상한 일이 생기는지 가끔 눈물과 콧물을 동시에 쏟으며 엄마를 애타게 부른다.


첫째와 아빠. 누구도 당황하지 않는다. 다만 아빠는 뽀로로 과자를 꺼내고, 아직 먹을 걸로 달래지는 시기임을 감사히 여긴다.
과거 뛰어놀고 일찍 재우려던 작전에 실패한 후 평소보다 늦게 이불을 펴려고 했는데, 첫째가 피곤했는지 스르륵 양치를 하고 온다. 오호~~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언니가 자고 싶어 하니, 함께 코 재우자며 둘째를 설득해 불을 끄고 모두 누웠다. 그리고 20분이 지났을까. 이쯤이면 둘째도 잠들었겠지, 하며 몸을 돌리는데, 바스락 소리에 벌떡 일어나 내 팔을 두드린다.
역시 자식은 부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다, 는 깨달음의 순간이다.    


다시 거실로 나와 부스럭거리며 노는데, 카! 톡! 카! 톡! 하며 생명의 소리가 울린다.

이제 집으로 출발한다는 아내의 메시지^^


결국 둘째는 아내가 귀가할 때까지 놀고 놀다가, 엄마 품에 안겨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마음의 쿠폰에 도장을 찍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쌓으면 나도 곧 공짜 쿠폰을 쓸 수 있겠지!!!
(아~ 캬~ 한 잔 해야지.)    


부부란 게 참 묘하다. 아낌없이 다 줄 것 같다가도, 이렇게 마음속으로 쿠폰을 찍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으음...
남편인 내가 커피가게 쿠폰을 찍었다면 아내는 아마도 중국집 쿠폰을 찍고 있었을 것 같다.

우리가 함께, 두 쿠폰을 동시에 사용할 시기가 오겠지.
그때를 기다리며. 오늘은 집에서 한 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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