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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Mar 26. 2016

아빠의 육아휴직

아직은 소수자의 삶이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부는 주말이다.

고궁, 박물관, 동물원, 놀이동산에 가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아빠들을 쉽게 만난다.

슴으로 아이를 안고, 두 손으로 유모차를 밀고서 가족과 함께 하는 모습이 딱 봄이다!    


TV에서도 아빠들이 육아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사회적으로도 아빠의 육아 참여를 장려하니

점점 아빠들의 인식도 변하고 육아에 참여하는 이가 많아졌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아빠의 육아휴직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라니 참 반갑다.     




나의 육아휴직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긴 여행과 짧은 구경을 다니고, 수다와 놀이의 대상이 회사 동료에서 아이들과 아내로 변한 것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정신없는 일상의 연속이다.     


아이들과 일상을 공유하며,

잠시(?) 휴대폰에 빠진 아빠를 위해 거실등을 켜주는 예상치 못한 아이의 배려에 놀라기도 하고,

흥에 겨워 엉덩이와 어깨를 흔들며 맑게 웃는 작은 얼굴을 보며 함께 흥을 느껴보지만,

일상은 또 생활인지라 서로 부딪히며 상처를 내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직장이란 곳에서 덜컥 떨어져 나와 오롯이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늘어가는 빚과 복직의 불안함이 있지만 인생의 선택지에 넣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가끔 <아빠의 육아휴직을 권하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고민이다.

뭐라고 할까?


처음 육아휴직을 했을 땐 나와 가족의 관계가 급속히 회복되고,

앞으로는 육아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끊임없이 새로운 일들이 생기고,

아이가 자라면서 그 변화에 따라 부모의 역할도 변해야 하고,

육아를 지나 교육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기다리고 다.



친구들과 놀고 싶은 아이들이 놀이터로 향한다.

아빠는 주로 괴물이 되어 아이들을 잡으며 함께 놀지만,

때론 엄마들처럼 벤치에 앉아 육아 정보를 나누며 차도 마시고 싶다.

흰머리가 늘어나는 나이에 낯을 가리는 수줍은 성격까지 가진 남자인 나는

여자들만 가득한 곳엔 갈 용기가 없다.       



복직의 두려움도 마주해야 한다.

첫 번째 휴직에서 복직했을 때 ‘사람이 없어서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것이 내가 마주한 복직의 현실이다.

휴직기간보다 더 긴 시간의 후배들과 경쟁을 해야 하고,

‘남자’ 육아휴직자란 소개가 붙는다.       



엄마 없이 간 공원의 남자 화장실에서 기저귀 교환대의 부재에,

어린이집 앞에서 마주친 할머니가 내게 전하는 측은한 눈빛에,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이제 퇴근이냐’는 경비원의 인사에,

가끔 불쑥 또 다른 내가 튀어나와 ‘너 지금 뭐 하냐’는 물음에,    



나는 불편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빠의 육아휴직을 권하겠느냐는 물음에

아직 “예”라고 답하진 못한다.     


다만, 내가 느낀 소수자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선택했고,

나만의 방식으로 일상의 소중함과 행복을 깨닫고 있다.     


소수자의 삶이 불행을 뜻하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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